땅집고

8개월째 수익 0원…투자자 무덤된 호텔 분양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8.07.20 06:00

직장인 A(31)씨는 2015년 8월 인천시 중구 운서동의 ‘골든튤립 인천에어포트 호텔&스위트’ 호텔을 분양받았다. 이른바 ‘분양형 호텔’로 분양가는 1억7000만원. 시행사가 준공 후 5년간 매월 90만원씩(연 수익률 7%) 수익금을 지급한다고 약속하고 ‘확정 임대수익 지급보증서’까지 써줬다.

작년 10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인천시 중구 운서동 ‘골든튤립 인천에어포트 호텔&스위트. /독자 제공


이 호텔은 작년 10월 완공됐다. 하지만 A씨를 포함한 분양계약자들은 아직 한번도 월 90만원의 수익금을 받지 못했다. 시행사 측은 “객실 수익이 나지 않아 수익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지급 보증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A씨는 “당시 시중 금리가 연 2%도 안되던 때여서 7%를 확정 수익률로 준다는 약속에 혹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4~5년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분양형 호텔은 호실 별로 분양받아 개별 등기가 가능하고 전문 관리업체에 맡겨 객실 운영을 통해 얻는 수익을 돌려받는 상품이다. 호텔 시행사들은 대부분 연 7~10% 투자수익률을 지급한다는 약정서를 써준다. 이 때문에 많은 투자자가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했다. 하지만 분양형 호텔이 본격 운영되기 시작한 지난해 이후 수익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전국 120곳 대부분 수익금 지급에 어려움”

분양형 호텔 투자 개념도. 사진은 2016년 경매로 나온 제주의 한 분양형 호텔. /지지옥션·땅집고


분양형 호텔은 사업주체(시행사)가 개별 객실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분양한 후, 분양계약자들이 다시 전문 운영사에 호텔 운영을 위탁한다. 운영사는 객실 운영 등을 통해 번 수익금으로 경비를 충당하고 남는 돈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한다. 따라서 객실 가동률이 높아지면 수익률도 높아진다. 분양형 호텔 대부분이 인천국제공항 주변이나 제주도·강원도 등 인기 관광지 주변에 자리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완공 후 당초 기대대로 운영되는 호텔이 많지 않다는 것.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 중이거나 공사 중인 분양형 호텔만 120여 곳에 달한다. 이 중 서울 일부 레지던스형 호텔을 빼면 대부분이 약속한 수익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곳곳에 비슷한 호텔이 난립해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로 인한 중국과의 마찰 탓에 중국 관광객마저 감소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관광 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호텔들. (해당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올 1월에는 제주도에서 함덕호텔을 운영하던 운영사가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 호텔은 투자자들에게 연 11% 수익을 약속했다. 하지만 수익금을 지급하지 못해 분쟁을 겪다가 채권자 측 신청으로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제주에서는 이처럼 분양형 호텔 관련 소송이 여러 건 진행 중이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시행사와 운영사 상대로 분양대금 반환을 청구하거나 미지급 수익금을 청구하는 소송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청주시의 한 분양형 호텔도 작년 4월 운영에 들어간 후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10% 이상의 수익률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지난 3월 청주시청 앞에서 호텔 영업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수익 보장’ 약속 책임지는 사람 없어

인천 '골든 튤립' 호텔의 분양 계약서에는 완공 후 5년간 확정 수익률 7%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독자 제공


분양형 호텔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약속했던 수익금을 받지 못했을 때 이를 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확정 수익을 약속한 시행사는 분양이 끝나면 없어진다. 운영사가 수익금 보장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파산하면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심지어 일부 시행사는 파산할 작정을 하고 공사비를 부풀리거나 운영사를 설립한 이후 운영까지 맡으면서 투자자들에게 갈 이익을 빼돌린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분양형 호텔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K 변호사는 “운영사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인건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면서 ‘운영비가 많이 들어 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해도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분양업체들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동산 신탁회사를 시행사로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신탁회사는 기존 토지주로부터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고 호텔 공사가 완료된 후 분양 계약자들에게 매도하는 ‘법률상 시행자’가 된다. 하지만 신탁회사가 시행해도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막상 수익금이 미지급돼 문제가 생기면 신탁회사는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태생부터 문제…제도 보완 시급”

투자자들이 약속된 수익금을 받지 못해도 현재로서는 달리 구제할 방법이 없다. 운영사 상대로 분양대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지만 호텔 매각 외에는 대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운영도 잘 안되는 호텔이 시장에서 팔리기는 어렵다. 호텔 운영권을 달라며 소송을 거는 방법도 있지만 분양대금 반환을 원하는 소유자들이 더 많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분양형 호텔이 ‘태생부터 문제가 있는 상품’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아파트의 경우 계약자 보호를 위해 분양보증서 등 보호 장치가 있지만 호텔에는 이런 제도조차 없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일부 부도덕한 시행사는 지킬 생각도 없는 수익금 보장을 약속하고, 운영사는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익금을 빼먹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투자자 보호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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