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신혼희망타운 3200가구 공급이 예정된 진접2지구(진접읍 연평리·내각리 일대)에서 서울 시내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이곳에선 반경 7km 이내에 전철역이 없어 배차 간격 20~30분인 버스를 타야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는 73번과 707번. 각각 서울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과 7호선 상봉역으로 연결된다. 버스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서울 광화문까지 2시간 넘게 걸렸다.
남양주는 경기도에서 미분양 주택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지난 5월말 기준 1434가구에 달한다. 신혼부부가 살만한 전용면적 60㎡ 내외 아파트 가격이 1억5000여만원으로 수도권에선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진접읍 내각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모씨는 “남양주에 신혼희망타운이 5000가구 넘게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며 “경기도에서 수 년째 미분양 1위로 꼽히는 지역인데, 신혼희망타운 물량까지 공급되면 집값 폭락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신혼희망타운은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해 정부가 신혼부부들에게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으로 분양하는 공공주택이다. 정부는 ‘청년이 집값 걱정 없이 살게 하겠다’며 지난해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발표한 물량(7만 가구)에서 더욱 늘어난 10만 가구를 2022년까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혼희망타운 대상지에 남양주, 평택, 김포 등 아직도 미분양이 많은 지역이 대거 포함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가 ‘공급 물량’ 확대에만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집값이 저렴한 미분양 지역 위주로 대상지를 선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남양주, 화성, 울산…미분양 지역에 공급 쏟아져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모(여·32)씨는 지난 5일 정부가 발표한 신혼희망타운 공급 예정지 목록을 보고 “서울에 가려면 2시간이 꼬박 걸리는 곳들 투성이인데, 젊은 신혼부부들이 들어와서 살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신혼희망타운 60곳 중 서울은 단 두군데다. 수도권 중에서도 교통이 열악해 서울 출퇴근이 어려운 지역이 대부분이다.
신혼희망타운은 올해 12월 위례신도시(508가구)와 평택 고덕신도시(874가구) 등지에서 처음 분양에 들어간다. 수도권 전체 예정지 40여곳 중 서울에 직장을 둔 신혼 부부가 살고 싶어할 만한 곳은 위례, 평택 고덕, 서울 양원지구, 서울 수서역세권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신혼 희망타운 대상지에 미분양이 심각한 남양주, 평택, 김포 등이 대거 포함된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월말 기준 전국 미분양은 총 5만9836가구다. 이 가운데 경기도는 8600가구이며 특히 미분양이 많은 남양주(미분양 1434가구)에만 신혼희망타운 5172가구(진접2지구·별내·진건)가 공급될 예정이다.
지난 5월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21차 미분양 관리지역’에 포함한 김포(1295가구)와 화성(740가구)에도 신혼희망타운이 각각 1326가구, 2000여 가구가 지어질 예정이다. 지방까지 보면 조선해양산업 침체로 빈집이 늘고 있는 울산(1004가구)에도 1500가구가 들어선다.
화성 동탄2신도시의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과잉 공급으로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은 단지도 생겨나는 상황인데, 신혼희망타운까지 들어서면 아무래도 집값 하락 압력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값 싼 곳 골라 10만 가구 지은들…
근본적으로 집값 자체가 저렴한 경기도 외곽 지역에 꼭 세금을 들여 신혼부부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국토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남양주 진접읍 내각리 한신아파트 84㎡는 지난 4월 1억8175만원에, 연평리 ‘원일궁의문’ 아파트 88㎡는 2억6000만원에 팔렸다. 이 외에 군포 대야미(1300가구)와 의왕 고천(887가구) 등 신혼희망타운이 들어서는 수도권역 집값도 3.3㎡당 700만원 대에 불과하다.
군포시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사장은 “안 그래도 집값이 싼 지역이라 돈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너무 멀어서 안 들어오는 곳인데, 여기에 시세보다 20~30% 저렴한 아파트를 짓는다니 의아하다”며 “이 주변에 직장이 있는 이들은 좋다고 하겠지만, 젊은이들 주거 문제 해결에는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오래 전부터 신혼부부 대상으로 공공 분양 아파트를 공급했지만 수도권 외곽에서는 상당수가 미분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신혼부부에게 미분양된 공공 아파트는 저소득층 등 다른 대상자들에게 순번이 넘어간다. LH 관계자는 “경기도 외곽의 공공분양 주택은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신혼희망타운도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토부는 정확한 수요 조사 없이 “신혼 부부 특화 주택으로 지으면 어찌됐든 팔릴 것”이란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분양 지역이라고 해서 신혼부부 주택 수요가 적다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신혼 부부들의 편리한 육아를 위해 모든 단지에 특화 설계를 적용하기때문에 신혼희망타운 수요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청년 주거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부의 의도는 좋지만 전국적으로 아파트를 신축하는 데 드는 비용 대비 정책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책이 양적 목표에 치우쳐 수요와 공급이 ‘미스 매치’되면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주거 안정이 절실한 서울권 신혼부부들에게 지원금을 집중하거나 빈집을 활용하는 등 좀 더 효율적인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