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짓는 임대주택 ‘나인원 한남’의 임차인 모집은 부동산 시장에서 ‘사건’으로 기록됐다. 임대 보증금이 최저 33억원에서 최고 49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임대주택이 모집 하루만에 평균 5.5대 1의 경쟁률로 전부 마감된 것. 청약자 1800명이 평균 40억원씩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무려 7조원의 자금이 몰려든 셈이다.
서울 용산 부동산 시장에서 조(兆) 단위 머니 게임의 막이 올랐다. 주한미군기지 평택 이전으로 외인아파트, 유엔사 부지 등 대규모 개발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것. 이 사업들은 조 단위가 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용산 일대에 향후 몇 년간 막대한 돈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또 이 프로젝트들이 모두 완공되면 용산이 강남을 뛰어넘는 부촌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 7조 끌어모은 나인원 한남, 최고가 아파트 ‘예약’
‘나인원 한남’은 4년의 임대 기간이 끝난 뒤 분양 전환하면 국내 최고가 아파트 자리를 넘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아파트는 애초 3.3㎡당 6000만원 넘는 분양가로 분양을 신청했다. 실현됐다면 국내 아파트 중 역대 최고가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 보증을 거절했고 결국 임대로 전환했다. 4년 임대 기간이 끝나면 40억~70억원 수준에서 분양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인원 한남은 용산에서 줄줄이 이어지는 ‘조 단위 머니 게임’의 신호탄이다. 이 아파트는 대신F&I가 2016년 용산구 한남동에 있던 외인아파트 부지(6만1000㎡)를 6242억원에 매입해 건축한다.
다음 차례는 한남동에서 멀지 않은 이태원동 유엔사 부지(5만1762㎡)다. 외인아파트보다 1년 여뒤인 작년 6월 부동산개발회사인 일레븐건설이 감정가 8000억원대의 이 땅을 1.3배 넘는 1조552억원에 사들였다. 일레븐건설은 아파트 600여 가구와 오피스텔 1000~1300실 규모로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재벌가 총수들이 점찍은 한남동
재벌가들은 과거부터 용산, 특히 한남동과 이태원동 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이태원동 ‘삼성 타운’이 대표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은 한남동과 이태원동 일대에 단독주택을 총 10채 소유하고 있다. 이 중 이 회장은 공시가격 261억원으로 국내 최고가 단독주택으로 이름을 올린 한남동 주택을 포함해 6채를 갖고 있다.
고(故)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 자택이 한남동에 많다.
부영도 한남동 땅을 점찍었다. 순천향병원 옆 공원 부지(2만7532㎡)를 2014년 취득했다. 원래 1970년대 후반 공원 용지로 지정됐지만 40여년간 조성계획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2년 후 공원용지에서 풀리게 된다. 이 경우 입지 등을 감안하면 나인원 한남 못지 않은 고급 아파트 건설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요진건설산업도 지난달 용산구 이태원동 캐피탈호텔을 매입해 고급 호텔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이다. 캐피탈호텔은 3성급 호텔로 객실이 287개다. 이태원 일대는 외국인 관광·숙박 수요이 비해 고급 숙박시설이 부족한만큼 고급 호텔로 개발하면 가치 상승이 클 것으로 보인다.
■ 역대급 개발 줄줄이…“강남 바통 이을 것”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용산에서 대기 중인 굵직한 프로젝트는 줄잡아 10여건에 달한다. 미군 기지에 조성할 용산공원은 현재 기본설계가 진행 중인데 국토부는 2010년 기본 계획에서 사업비로 1조2000억원을 추정했다.
용산역 철도정비창에 100층 이상 빌딩 등 고층 빌딩 수십채를 짓는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총 사업비가 30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불린다. 자금난 등을 이유로 2013년 한차례 무산됐다가 서울시가 작년부터 재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코레일과 함께 지난해 3월 용산 마스터플랜 연구 용역을 의뢰했고 올해 하반기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 신분당선 연결은 현재 용산의 약점으로 지목되는 강남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신분당선은 강남역에서 신사역까지 이어지는 구간(2.5㎞)이 2022년 개통할 예정이고, 이어 신사역에서 동빙고역을 거쳐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2단계 구간(5.2km)이 이르면 2025년 개통한다. 이렇게 되면 용산역에서 강남역까지 20분 내에 이동할 수 있다.
이밖에도 미군기지 이전부지인 캠프킴·수송부 부지도 각기 땅값만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될 예정이다. 한남뉴타운 재개발 구역은 작년 말 한남3구역의 대지지분 23㎡(7평)짜리 다세대주택이 7억3000만원에 거래되는 등 대지지분 3.3㎡(1평) 가격이 1억원을 넘어섰다.
이런 호재들을 반영해 용산구 땅값은 지난 1분기에만 평균 2.24% 올라 전국 시·군·구 중 동작구(2.25%)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용산 부동산 시장은 한정된 위치를 선점한다는 면과 개발로 인한 실질적인 가치 상승이 기대된다는 점 등 두가지 면에서 모두 유망하다”라며 “강남의 재건축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만큼 앞으로 강남구 압구정동과 함께 용산이 최고 부촌 자리를 넘겨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