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집을 내놓고 빈집이 된 지 벌써 1년 다 됐죠. 그런데 시세보다 5000만원 정도 낮춰서 내놔도 안 팔립니다.”
지난달 22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서 만난 H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요즘엔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 걸어서 5분쯤 떨어진 또 다른 H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공급은 많고, 정부 규제가 계속되면서 집값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아파트를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부산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부산의 ‘강남’이라는 해운대엔 집이 안팔려 비워놓는 경우마저 있다. 작년 상반기와 비교해 1년여만에 1억원 안팎 집값이 떨어진 곳도 있다. 도대체 부산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땅집고 취재팀이 부산을 직접 찾아갔다.
■곳곳서 한숨 터지는 부산 주택시장
지난해까지 부산 부동산 시장은 뜨거웠다. 집값과 땅값 상승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땅값 상승분을 반영하는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는 부산이 11.25% 올라 제주(16.45%)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했다.
“기본 경쟁률이 100대1”이란 말이 나올 만큼 신규 분양 아파트 시장에도 ‘청약 광풍(狂風)’이 불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부산 아파트값은 지난해 10월 30일 이후 8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반등할 기미가 없다. 지난달 기준 해운대구 아파트값은 1㎡당 351만원으로 대구 수성구(1㎡당 365만원)보다 낮아졌다.
실제 부산 부동산 시장에는 최근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 가장 타격이 큰 곳은 부산지하철 2호선 장산역 일대 해운대 신시가지다. 해운대 신시가지는 1990년대 후반 입주해 학군이 좋아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던 곳이다. KB국민은행 시세 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신시가지가 있는 좌동은 지난 1월 대비 집값이 2.2% 떨어져 하락폭이 가장 큰 축에 속했다.
해운대 바닷가 일대나 마린시티 인근도 냉기를 피하지 못했다.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우동 해운대아이파크 아파트 전용 126㎡는 지난해 8월 11억7000만원까지 거래됐지만 이후 10억3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우동 해운대한신휴플러스 전용 83㎡는 지난해 10~12월 6억~6억8000만원에 팔렸지만 올해는 5억2500만~5억8700만원에 거래됐다. 해운대 우동의 H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시세보다 3000만~4000만원 정도 떨어진 급매물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찾는 이가 없어 문을 닫는 부동산 중개업소도 나오고 있다. 해운대의 W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싸게 내놔도 집을 보러 오는 이가 없어 석달 동안 계약서를 한번도 못 썼다”고 했다.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장사가 안돼 문 닫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공인중개사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공급 과잉에 부동산 규제 강화…인구 감소까지 겹쳐
뜨거웠던 부산이 왜 이렇게 식었을까.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급 과잉을 지적했다.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부산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지난해 2만190가구에 이어 올해 2만3201가구, 내년 2만4864가구 등 매년 2만~2만5000여가구에 달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센터장은 “부산 주택 시장이 지난 2~3년간 호황을 이어오면서 입주량이 크게 늘었다”며 “적정 수요량보다 9000가구 정도 웃도는 물량이 3년 연속 입주할 예정이어서 가격 하락 압박이 심하다”고 했다.
해운대의 M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새 아파트가 늘면서 기존 아파트 가격이 떨어져 이사를 가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S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기존 아파트보다 싼 새 아파트가 계속 나오면서 수요자들은 분양 시장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며 “전세 수요도 새 아파트에 집중되면서 기존 아파트 전세는 싸게 줘도 안 들어온다”고 했다.
부산은 부동산 규제의 직격탄도 함께 맞고 있다. 해운대구는 2016년 말 청약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아파트값이 한동안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가 하향 조정됐다. 작년 11월 이후에는 입주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는 등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부동산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인구 구조의 변화도 부산 주택 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절대 인구 감소와 노령화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산시 인구는 2000년 381만여명에서 지난해 352만여명으로 10% 가까이 줄었다. 2045년 부산 인구는 2015년보다 47만명(13.7%) 감소한 298만명으로 떨어지고, 2015년 현재 43세인 중위(전체 인구 중 중간) 연령도 2045년 56.8세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부산의 주택 경기 침체가 단기간이 아닌 최소 2~3년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누적된 공급 물량 해소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규제가 풀리기도 힘들기 때문에 주택 수요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VIP팀 수석 부동산컨설턴트는 “부산은 앞으로 입주 폭탄이 터지면서 공급 측면은 물론 인구나 산업구조 측면에서도 좋은 시그널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