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미분양 사겠다고 텐트 치고 밤새 줄서는 이유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8.07.06 04:00

서울에 사는 김모(40)씨는 지난달 20일 경기도 과천시 ‘과천 위버필드’(과천주공2단지 재건축) 아파트 잔여가구 추첨에 청약했다. 이 아파트 잔여 가구는 총 25가구였는데 4층 이하 저층이 18가구(72%)로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총 2만4000명이 몰려 청약경쟁률이 960대 1에 달했다. 59㎡A형(4가구)은 경쟁률이 3500대 1을 기록했다.

‘과천 위버필드’의 분양가는 59㎡ 기준 저층이 8억2000만원 정도, 고층이 8억6000만원 정도다. 이 단지 바로 앞 입주 10년차인 ‘래미안 슈르(2008년 입주)’ 저층 매물 시세가 8억원 후반, 고층은 9억원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천 위버필드’의 저층에 당첨돼도 5000만원 이상 시세 차익이 가능하다. 김씨는 “요즘 일반 분양을 흔히 로또에 비유하는데 당첨되려면 청약통장도 있어야 하고, 청약 가점도 높아야 하지 않느냐”며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미계약 물량 추첨이야말로 진짜 로또”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세종시의 아파트 견본주택 앞에서 잔여가구 청약에 접수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뉴시스


아파트 시장의 '진정한 로또'라고 불리는 미계약 잔여가구 추첨에 수요자들이 구름처럼 몰리고 있다. 잔여가구는 말 그대로 아파트 청약 과정에서 정규 당첨자와 예비 당첨자가 모두 계약하지 않아 미계약으로 남은 물량을 말한다. 당첨자들이 포기한 아파트에 왜 이렇게 청약 인파가 몰리는 걸까. 잔여가구를 잡으면 정말 '로또'에 당첨된 만큼 이득을 볼 수 있는 걸까.

■예비당첨자 40% 뽑아도 생기는 잔여가구

아무리 인기있는 아파트라도 당첨자 중 미계약분은 발생한다. 왜 그럴까. 1~2층 등 저층이나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동(棟)에 당첨돼 계약자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당첨자가 무주택 기간 등 청약 요건에 맞지 않는 부적격 당첨자로 드러나 당첨이 취소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당첨자 발표할 때 늘 예비 당첨자를 함께 발표한다. 예비 당첨자는 전체 당첨자 대비 40%를 선정한다. 미계약 발생 우려가 높은 경우에는 80%까지 늘린다.

세종시에서 공급된 아파트 미계약분을 사기 위해 청약을 신청하고 있는 수요자들. /조선DB


최근 1~2년 동안 각종 규제가 도입되면서 청약 제도가 복잡해진 것도 원인이다. 청약 자격을 잘못 알고 신청했는데 당첨될 경우 부적격 취소되고 그만큼 미계약 가구 수도 늘어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부적격 당첨이 2만1000여건 나왔는데, 전체 공급 가구수(약 23만 가구)의 9% 정도다. 청약 가점·무주택 여부 등을 잘못 입력하거나 과거 5년 내 당첨 사실이 있는데도 청약해 당첨한 경우(재당첨 제한) 등 이유는 다양하다.

미계약분이 발생하면 다음 기회는 예비 당첨자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예비 당첨자들도 계약을 꺼리는 경우가 생긴다. 미계약분은 대부분 저층이나 선호하지 않는 물건이 많은 탓이다. 예비 당첨자들마저 계약을 포기한 물건이 바로 ‘미계약 잔여 가구’가 된다.

■물량 적고 자격 제한 없다보니 경쟁률 치솟아

현재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미계약 잔여 가구에 대한 공급 규정은 따로 없다. 건설사 등 공급 주체의 자율에 맡긴다. 과거 건설사들은 모델하우스에서 ‘내집마련 신청’이란 이름으로 미계약분 사전 예약을 받는 방식을 활용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사전 예약제가 투기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8월부터 금지됐다. 현재는 미계약분이 발생하면 선착순이나 현장 추첨·인터넷 추첨 등을 통해 공급한다.

올해 인터넷 추첨으로 진행한 주요 아파트의 미계약 잔여가구 청약 경쟁률. /각 업체


최근 잔여가구 청약에는 매번 구름 인파가 몰린다. 지난 5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센트럴아이파크 잔여가구(8가구) 추첨에는 2만2400명이 신청해 280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세종시에서 지난 2월 공급한 ‘세종 한신더휴 리저브’ 잔여가구(40가구) 모집에 5만3000명이 몰려 경쟁률이 1347대 1에 달했다.

잔여 가구를 선착순 공급하는 경우 모집 며칠 전부터 텐트를 치고 밤샘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역 롯데캐슬 파크나인 2차’ 는 지난 13일 미계약 잔여물량 선착순 공급에 참여하기 위해 사흘 전부터 모델하우스 앞에 수십명이 길게 줄을 섰다.

잔여 가구에 인파가 몰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청약 규제 강화로 새 아파트 분양받기가 이전보다 어렵다는 점, 분양가 규제로 새 아파트가 시세보다 저렴해 잔여가구라도 사면 돈이 된다는 점 등이다.

■“가점 낮으면 노려볼만…공급 원칙 세워야”

실수요자 중에는 순위 내 청약을 포기하고 잔여가구 모집에만 ‘올인’하는 전략을 짜기도 한다. 특히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100% 가점제로 바뀌면서 가점이 부족한 3040세대는 잔여가구 모집 외에는 분양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잔여가구를 신청했던 직장인 신모(33)씨는 “지금 청약 제도로는 10년 지나도 당첨 가점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아 당첨될 때까지 미계약분 추첨에 계속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조선DB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청약 자격 강화와 분양가 규제로 미계약분 몸값이 높아졌다”며 “다만 정당 담첨자와 마찬가지로 분양권 전매(轉賣) 제한을 받고 저층 등 비선호 물건에 당첨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가급적 실수요자 중심으로 청약하는게 좋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잔여가구도 올 9월부터 금융결제원의 주택 청약시스템 ‘아파트투유(Apt2you)’를 통해 공급하는 제도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미계약분에 대한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고 공급 과정도 불투명해 명확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실수요자 우선 공급 원칙을 과도하게 내세우면 지방 아파트 시장 침체에 따른 미분양 문제를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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