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오르긴 했는데, 3억원 밖에 오르지 않아서…. 수서동 집값이 아직 잠실이나 압구정동 수준은 아니잖아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SRT(수서발고속철도) 수서역사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수서동 집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SRT수서역사 아래 쪽에 자리잡은 자곡동 쪽 분위기도 비슷했다. 자곡동에 있는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수서가 강남이지만 외곽이어서 집값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역세권 개발 얘기가 나오면서 요즘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며 “분양가의 2배 넘게 팔아 달라는 집주인도 있다”고 했다.
■규제 폭탄도 무시한 수서동 집값
양도소득세 중과에 이어 보유세 강화안까지 정부가 집값을 때려잡기 위해 강력한 무기를 쏟아내는 바람에 서울 강남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수서동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수서동은 행정구역상 강남구이긴 해도 서울 동남쪽 외곽이고,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시골’ 분위기가 물씬했던 동네다.
수서동 일대는 10여전 전부터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긴 했지만 집값이 강남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수서동 아파트 값은 3.3㎡(1평)당 2900만원 수준으로 강남 평균(3700만원)의 78%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 6월 초 기준 수서동 아파트 값은 평균 4330만원으로 강남 평균(4990만원)의 87% 수준까지 치솟았다.
최근 1~2년 강남 전체 집값도 많이 올랐지만 수서 집값은 말 그대로 수직 상승했다. 수서동의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정부가 보유세 강화 대책을 발표한 뒤로 강남 주택시장이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수서동에선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라며 “오히려 개발 호재가 많아 집값 상승 기대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1년새 수억원씩 오른 아파트도 적지 않다. 세곡 2공공주택지구의 민영 아파트인 래미안강남힐즈(2014년 6월 입주) 91㎡(이하 전용면적)는 작년 5월 9억 9500만원에 거래됐다가 지난달 14억 5000만원에 거래됐다. 분양가(7억2000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세곡2지구 한양수자인(2014년 3월 입주) 84㎡는 작년 말보다 3억3000만원 정도 더 오른 12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현재 이 아파트의 호가는 13억~14억원까지 올랐다.
수서동은 서울 외곽에 있지만 교통망이 우수해 인구 구성도 다양하다. 수서동은 강남·강북이 연결되는 서울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이 지난다. 2016년 개통한 SRT역에선 경부선과 호남선이 모두 출발·도착한다. 이 때문에 수서동은 서울 도심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은 물론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빈도가 높은 직장인도 몰려 ‘전국구’ 동네로 성장하고 있다. 자곡동의 B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처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는 강남에서 자녀 교육이 끝난 중년 부부가 많이 들어왔는데, SRT 역사 개통 이후에는 세종시 근무 공무원, 지방 혁신도시 공기업 직장인, 지방 대학교 교수들이 많이 이사온다”고 말했다.
■철도 교통망 확충이 집값 이끌어
수서역 집값을 끌어올린 최대 호재는 ‘수서역세권 개발사업’이다. SRT역사 옆 38만 6490㎡에 2021년까지 6700억원을 투입해 주거단지(신혼부부희망타운 620가구·행복주택1910가구)를 짓고, 연구개발(R&D)센터·유통판매시설·철도 환승센터를 만드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1월 SRT역사 주변 지역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올해 말까지 토지보상이 마무리돼 착공할 계획이다.
수서동 일대 교통망 호재도 이 지역 집값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SRT 수서역, 분당선, 지하철 3호선 외에 철도 노선이 추가로 2개 신설될 전망이다. 2020년 개통 목표로 건설 중인 삼성~동탄 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수서역에 정차한다. 수서~광주 복선전철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고 있다. 이 노선이 모두 완공되면 수서역에는 5개의 철도가 지나게 된다.
■임대주택 많고, 바로 옆 공항은 단점
수서동 집값이 크게 올랐지만 한계도 있다. 수서동 일대는 애초부터 보금자리주택지구였고, 그린벨트를 풀어 짓는 주택단지도 임대주택 비율이 높다. 전체적으로 수서동 일대 주택의 절반 이상이 임대주택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반경 3~4㎞에 서울공항이 있다는 점도 한계다. 공항 근처여서 동네 전체가 고도제한에 걸려 있다. 실제로 수서동에선 수시로 비행기가 아파트 바로 위로 저공 비행을 하고, 소음도 심하다.
하지만 부동산 업계에선 수서동이 단점보다 장점이 많아 가격 상승 여력이 더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강남구에서 보기 드문 새 아파트 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되고 있고, 녹지공간도 풍부하다. 게다가 전철 교통이 풍부한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수서동의 개발 호재는 저평가 요인들을 상쇄할만 해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여력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새 아파트 중심으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