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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쪽방'으로 불린 초소형 아파트의 현재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18.06.17 05:00

“아무리 강남이지만, 그 좁은 집에 누가 살겠냐.”

2005년 5월 서울 송파구 잠실 잠실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리센츠’(5563가구)가 분양할 당시 전용 27㎡ 초소형 아파트가 포함됐다. 이 집을 보고 소비자는 물론 주택 시장 전문가들도 비아냥거렸다.

서울 강남 3구 중 한 곳인 송파구 잠실에서 분양한 이 초소형 아파트의 당시 별명은 ‘강남 쪽방’. 생긴 것도 ‘쪽방’ 느낌이 나기는 했다. 거실 1개, 방 1개, 화장실 1개로 구성된 전형적인 원룸이었다. 실제 다른 아파트는 대부분 1순위 청약이 마감됐지만, 이 쪽방은 미분양됐다. 당시 초소형 아파트 분양 가격은 1억9230만원이었다.

2005년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분양했던 리센츠의 전용 27㎡의 평면, 당시 이 아파트는 크기가 너무 작아 '강남 쪽방'이라고 불렸다. /네이버 부동산


이렇게 작은 아파트를 짓고 싶어서 지은 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는 전용 60㎡ 이하 주택을 20% 이상 지어야 한다는 ‘소형 평형 의무 비율’ 제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끼워넣었던 평면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 아파트 시세는 8억원(상한가 기준). 평균치를 봐도 7억6500만원쯤 된다. 2005년 5월 분양가 기준으로 3배쯤 올랐다. 2005년 이후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값은 대부분 올랐지만, 수익률로 따지면 이 정도 오른 아파트는 거의 없다.

리센츠 단지 내에서도 가장 많이 오른 주택형이 ‘강남 쪽방’이었다. 84㎡ 평균 시세는 16억원 정도로 분양가(6억2190만원) 대비 1.5배 정도 올랐다. 수익률만 따지자면 초소형 아파트가 거의 2배 정도 높은 셈이다.

■50대 이상, 초소형 아파트의 67% 싹쓸이

‘강남 쪽방’ 이야기는 부동산 전문기자인 김순환(문화일보)씨와 이정선(한국경제신문)씨가 함께 쓴 책 ‘부자들은 지금 초소형 부동산을 산다’(한스미디어)에서 소개된 사례다. 이 책에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초소형 주택 열풍을 분석한다. 초소형 주택이 인기를 끌게 된 인구학적 배경과 인구 구조의 변화, 수익률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등장한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형태의 초소형 주택을 사야하는 지에 대한 조언도 있다.


전용 40~50㎡ 크기의 주택을 구입하는 게약자 비율. /대우건설 제공


그렇다면, 초소형 주택은 누가 구입할까. 2017년 5월 대우건설과 건국대학교 산학연구팀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초소형 아파트의 거래를 주도하는 연령층은 50대 이상 ‘베이비 부머’들이다. 2010~2015년 수도권에서 분양한 29개 단지 총 2만629가구의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전용 40~50㎡ 초소형 아파트의 67%는 50세 이상이 계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이 사들인 초소형 주택 비율도 30%를 차지한다. 반면, 40대는 25.8%, 30대는 7.6%에 불과했다.

대우건설은 2004년에도 비슷한 조사를 했는데, 당시에는 초소형 아파트의 49%를 25~34세가 계약했다. 55세 이상은 9%에 불과했다. 저자들은 “10여년 전만해도 나이가 많을수록 중대형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엔 50대 이상이 투자 목적으로 초소형 아파트에 몰려 들고 있다”며 “초소형 주택은 시장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초소형 주택, 거래량·가격 상승률·임대수익률 모두 높아

저자 김순환씨는 “부동산 시장의 ‘큰 손’이라고 할 수 있는 50대 이상이 초소형 아파트로 몰려드는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며 “집이 작을수록 집값도 많이 오르고, 임대 수익률도 높고, 거래도 잘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선 가격부터 살펴보자. 초소형 아파트는 4~5년전부터 강세인데 지금도 가격이 쑥쑥 오르고 있다. 서울 종로구 교남동의 경희궁자이 아파트 전용 37㎡는 올 들어서만 1억원 정도 가격이 올라 시세가 6억원 안팎이다. 올 1월 5억 5000만원~6억 3000만 원 정도의 시세가 형성됐던 강남구 역삼동의 역삼아이파크 전용 28㎡ 역시 5월 기준으로 시세가 6억5000만~7억 원까지 올랐다.

서울의 면적별 주택 거래량. /한국감정원



거래량도 많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서울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주택형은 총 18만8400건이 거래된 41~60㎡ 초소형 주택이었다. 김씨는 “초소형 주택 거래량이 전통적으로 실수요층이 가장 두텁다고 알려진 61~85㎡ 중소형 주택의 거래량(18만 4859건)을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현재 주택 시장의 ‘메인 상품’이 중소형에서 초소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50대 이상이 초소형 주택을 사는 이유는 본인 거주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투자용인데, 집이 작을수록 임대 수익률도 높다. 도심과 강남권을 모두 오가기 쉬운 서울 성동구 센트라스 아파트의 경우 40㎡ 임대 시세는 보증금 5000만원·월세 130만원 수준이다. 분양가 3억 3000만원을 고려하면 연 5.6% 수익률이 나오는 셈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지역 59㎡ 이하 소형 아파트 임대수익률은 2.8%인 반면, 85㎡ 초과 아파트는 2.73%였다.

미국 맨해튼의 초소형 주택 카멜플레이스를 짓는 장면. 모듈형 공법으로 집을 하나씩 쌓아 올려 지었다. /뉴스위크



■최소 10년은 초소형 주택이 ‘답’

초소형 주택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1~2인 가구 위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 15.5%에서 2015년 27.2%로 급증했다. 저자 이정선씨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이어서, 초소형 주택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집은 한번 지으면 40~50년 이상 쓰는 물건이어서 수요가 변한다고 해서 시장에서 공급되는 상품 형태가 쉽게 바뀌지 않는 특징이 있다. 저자들은 “이미 지어놓은 아파트를 소형으로 리모델링하지 않는 이상 소형 주택 공급이 인구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초소형 주택 선호는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맨해튼에는 킵스베이라는 지역에 2016년 ‘카멜 플레이스’라는 초소형 주택이 등장했다. 30~40㎡ 55가구로 구성된 이 주택은 건축비를 낮추기 위해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리는 방식의 ‘모듈형’ 공법으로 지었다.

홍콩 디자인 박람회에 소개된 '캔 하우스' 모형. /Dezeen 홈페이지



도서 '부자들은 지금 초소형 부동산을 산다'.

지난해 12월에는 홍콩 디자인 박람회에 깡통 모양의 ‘캔 하우스’가 출품됐다. 길이 5m, 지름 2.1m쯤 되는 콘리트형 수도관처럼 생긴 공간이 집이다. 저자들은 “최소 앞으로 10년 간은 초소형 주택이 ‘정답’이 될 것”이라며 “전 재산을 부동산에 쏟아붓는 투자보다 초소형 주택에서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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