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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관통로·광장… 잠실5단지 설계안 논란

뉴스 이송원 기자
입력 2018.06.04 22:40

73%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반대 주민들 "사유권 침해"

"공공성만 강조한 당선작은 사유재산 침해다. 정작 아파트 주인인 주민은 소외되고 서울시가 주인이 된 느낌이다."(잠실주공5단지 A 조합원)

"당선작은 아이디어 차원으로 최종 설계안은 협의 후 변경할 수 있다. 논란을 마무리하고 재건축 사업을 속히 진행해야 한다."(잠실주공5단지 조합)

국내 재건축 단지 처음으로 국제 설계 공모를 진행한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의 당선작 설계안이 채택됐지만, 조합원 간 갈등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잠실주공5단지 조합은 지난 2일 열린 주민 총회에서 국제 설계 공모 1등 당선작인 조성룡 도시건축 대표의 작품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안건에 대해 조합원 2899명 중 73.8%인 2139명이 찬성 의견을 내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반대표는 593명, 기권은127명이었다.

◇잠실5단지 설계 당선작 논란 속 채택

잠실주공5단지는 1978년 준공된 15층, 30동 3930가구 규모의 기존 아파트를 헐고 최고 50층의 주상 복합과 아파트 6500여 가구로 탈바꿈하는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차별화되고 미래 지향적 도시 경관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국제 설계 공모를 조합에 제안했고 공모, 심사, 당선작 선정까지 주관해 진행했다. 조합은 설계 용역비 30억원을 댔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국제설계공모 1등 당선작인 조성룡 도시건축 대표의 설계안에 담긴 단지 조감도(위 사진). 송파대로와 접한 잠실역 인근에 50층 초고층 복합단지를 배치하고 잠실 사거리에 ‘잠실광장’을 배치했다. 지난주 잠실주공5단지에“당선작이 주민 편익을 무시했다”며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아래 사진). /잠실주공5단지 조합원 제공

하지만 일부 주민은 "당선작이 주민의 주거 편의와 사유재산권을 무시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조성룡 건축가의 설계안은 송파대로와 접한 잠실역 인근에 50층 초고층 복합 단지를 배치하고 올림픽로와 접한 면에 공공시설, 호텔과 중고층 아파트, 판매 시설 등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단지 앞 잠실 사거리에는 '잠실 공간'이라는 이름의 광장도 배치했다.

반대 주민들은 당선작대로 아파트가 지어진다면 단지를 대각선으로 관통한 지상 도시계획 도로로 인해 주민 생활공간이 분리되고, 단지 앞 잠실 사거리에 조성한 광장 공간이 시위 공간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파트 외관이 애초 설계 목적으로 내건 '차별화된 미래형 디자인'에 부합하지 않게 네모반듯해 실망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부 조합원 "사유재산 침해당했다"

반대 주민들은 "서울시가 공공성만 강조해 생긴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도 '공공성'을 공모 설계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하다 보니 이에 가장 부합한 작품이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밝힌 설계 공모 지침에는 '전체 단지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조화롭게 구성하는 건축 계획' '건물과 공공 공간 사이에 걷고 싶은 거리가 조성되어야 한다' 같은 조건이 제시돼 있다. 1등 당선작인 조성룡 건축가의 작품에는 '잠실 광장'에 대해 '민주적으로 열린 공공 마당이자 주변 경관을 즐기는 무대'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핏줄처럼 갈라져나온 골목길들은 재래시장처럼 크고 작은 상점의 생태를 담보하며 도시적 보행성과 연결성을 높인다'는 내용의 공간 설계도 있다. 조합원 사이에서 "사유지에 '민주광장' '재래시장'이 웬 말이냐"는 반발이 나온 배경이다.

조합 측은 "당선작 가운데 아파트 외관 등은 이미 선정한 설계 업체인 토문과 당선자가 협업하고 협의 후 수정 가능하다"며 다음 사업 진행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채택된 당선작을 바탕으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소위원회에 자료를 제출하고 향후 건축 심의 등 다음 사업 진행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깜깜이 공모' 주민 불만 키워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깜깜이 공모'가 조합원들 간 갈등과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말 서울시의 공공 건축물 설계 공모 전용 홈페이지에 당선작과 1, 2등 작품을 설계한 팀의 번호만 공개했을 뿐 조감도, 디자인 등은 밝히지 않았다. 작품의 주요 이미지와 내용은 정비 계획 수립을 위한 초기 구상이기 때문에 향후 정비 계획 수립이 완료되면 공개한다는 게 서울시의 방침이다. 모든 조합원은 주민 총회를 2주일여 앞둔 지난달 중순에야 주민 총회 안내 책자를 통해 당선작에 대한 조감도와 구체적 정보를 접했다.

공공 건축물이 아닌 민간 단지 설계 공모인데도 심사위원단에 건축학과 교수 등만 참여하는 등 조합원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조합원 김모씨는 "아무리 서울시가 주관한 설계 공모라고 하지만, 조합이 심사 과정에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단지 설계 공모 취지와 절차는 조합과 이미 충분히 합의했고, 당선작 수행 여부는 조합과 작품 당선자가 협의해 진행할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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