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3.3㎡(1평)당 1억원을 찍을 수도 있죠.”
사상 최고가 분양 아파트로 주목받았던 ‘나인원 한남’ 프로젝트. 남산과 한강 사이에 있는 서울 한남동 외인주택 부지를 고급아파트로 개발하는 이 사업은 분양가격을 3.3㎡당 6360만원으로 책정했다. 종전까지 최고가였던 서울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3.3㎡당 4750만원)의 기록 갱신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나인원 한남은 6개월째 분양가 심사의 벽을 넘지 못해 큰 위기를 맞았다. 발단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 1월 “분양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분양 보증을 거부한 것. 주택건설 업계에선 시행사인 ‘대신F&I’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땅을 너무 비싸게 샀기 때문에 시작부터 ‘스텝’이 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바로 길건너 한남동의 또 다른 초고가 아파트인 ‘한남더힐’에 비해 입지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에선 시행사인 대신F&I가 나인원 한남 사업에 발목이 잡혀 신용등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결국 대신F&I는 궁여지책으로 정상적인 분양 절차를 포기하고,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방법까지 고려 중이다.
■HUG에 백기든 나인원 한남, 임대 전환하나?
대신F&I가 나인원 한남에 대해 임대 후 분양하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분양가격을 통제하는 HUG가 분양 보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HUG의 분양 보증이 없으면 현재 선 분양 제도 하에서는 아파트를 분양할 수 없다.
임대 후 분양 전환은 분양가 규제를 피해 일단 임대주택으로 분양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서 입주자 등을 대상으로 분양 주택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한남더힐도 같은 방법을 동원했다.
나인원 한남은 지난해 12월 3.3㎡당 평균 6360만원에 분양보증을 신청했다가 HUG에서 승인 거절당했다. 당시 주력 면적인 전용 206㎡(107가구)와 244㎡(93가구)의 3.3㎡당 분양가를 5600만원으로, 전용면적 273㎡(43가구) 복층형 분양가는 3.3㎡당 6900만원으로 정했다. 펜트하우스 29가구는 3.3㎡당 분양가가 1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시행사 측은 이를 HUG에 위임했다.
하지만 HUG는 집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기존 최고 분양가격이었던 ‘아크로서울포레스트’의 3.3㎡당 평균 475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 때부터 아파트 분양 계획이 5개월 넘도록 중단돼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대신F&I측은 현실적으로 분양가격을 낮추기도 힘든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F&I는 2016년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를 LH로부터 6242억원에 사들였다. 3.3㎡당 토지 매입 비용은 2470만원이다. 현재 최고 분양가 기록을 갖고 있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1150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땅을 비싸게 사는 바람에 HUG가 제시한 3.3㎡당 4750만원에 분양하면 수익성이 크게 낮아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땅도 비싸게 산데다 고가에 분양도 못하고, 싸게 분양하자니 손해날 것 같고, 시간을 끌자니 이자가 늘고 있어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나이원한남의 입지가 경쟁 관계에 있는 초고가 아파트인 ‘한남더힐’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한남더힐은 언덕 위에 있어 한강 조망이 좋다. 반면, 나인원 한남은 평지에 있고 대로(大路) 바로 옆이다. 일반 아파트라면 대로변이 좋을 수 있지만, 수십억원짜리 초고가 주택 입지로는 부적정하다. 나인원 한남을 설계한 미국 SMDP의 스콧 사버 최고경영자(CEO)도 지난해 “한남동 외인주택 부지에서 약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최고급 조경과 커뮤니티 시설로 극복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속된 사업 지연에 결국 적자 우려”
분양 일정이 6개월 이상 늦어지면서 대신F&I의 이자 부담도 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7개월간 이 회사가 부담한 이자만 약 360억원에 달한다. 이자 부담이 늘면서 모기업인 대신증권이 명동사옥을 팔고 재임차 방식으로 내놓는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돌기도 했다.
신용평가사들도 대신F&I 신용등급을 주시하고 있다. 국내 3대 신평사들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신평사 관계자는 “분양가를 낮추면 개발이익이 줄고, 대책없이 계속 사업을 연기하면 이자만 나가 재무 구조가 나빠진다”며 “최근 거론되는 임대 후 분양 방식도 투자금 회수 시점이 늦어지는 것이어서 리스크가 커진다”고 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신F&I가 임대 분양으로 사업구조 변경을 추진 중”이라며 “이 경우 개발이익이 확정되는 사업종료 시점이 4년 지연되면서 불확실성이 장기화하고 영업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건설업계와 금융권에선 나인원 한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대신F&I와 모기업인 대신증권 측은 명확한 입장 발표를 늦추고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조만간 HUG가 제시한 수준으로 분양가를 맞출 것인지, 임대분양이나 후분양으로 전환할 것인지 큰 틀에 대해 결정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