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덮어놓고 집 짓더니…삼성 떠난 구미시 '와르르'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8.04.30 06:31
구미확장단지에서는 곳곳에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한상혁 기자


지난 20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확장단지 A 아파트 앞. 부동산 중개업소 외부에 주택형별로 분양가 대비 1000만원까지 떨어진 이른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붙은 매물 표가 걸려 있었다. 이 아파트는 입주지정기간이 끝난지 3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890가구 중 70여 가구가 비어있다. 단지 바로 옆에는 내년 2월 입주하는 다른 아파트(615가구)가 추가로 건설 중이었다.

구미확장단지는 곳곳에 아파트와 상업시설 건설이 한창이어서 공사판을 방불케했다. 이곳은 구미국가산단 4단지를 확장하면서 근로자들에게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 개발한 일종의 신도시다. 2015년 이후 분양했거나 분양 예정인 아파트는 8개 단지, 8000가구에 달한다. 옥계동 한샘부동산 관계자는 “구미시에 이렇게 한꺼번에 아파트가 지어졌던 적이 없었다”면서 “지역 경기도 안 좋은데 물량이 집중되니 한동안 시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T(정보기술) 생산 공장이 집중된 제조업 기반 도시인 구미시 주택 시장이 과잉 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건설 경기가 좋았던 2010년 이후 3~4년간 건설사들이 물량을 집중 공급한 탓이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긴 여파로 지역 경기마저 침체에 빠지면서 주택 수요 기반이 약해져 한동안 ‘소화 불량’ 상태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4년간 기존 아파트 25% 맞먹는 공급 쏟아져

구미시는 산업단지에 근무하는 젊은 근로자들로 이뤄진 도시로 평균 연령이 37세에 불과하다. 그동안 아파트 공급이 많지 않아 근로자 소득 수준에 비해 살만한 집이 부족했다. 더구나 국가산업단지 5단지를 개발하면서 아파트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런 여파로 구미시 아파트값은 2010~2014년에 49%(국민은행 조사 기준) 수직 상승했다.

주택 경기가 절정이던 2013~2016년 4년 동안 봉곡동·문성리 등 구미시에 공급된 아파트는 총 2만1000여가구. 2013년 기준 구미시에 이미 지어진 기존 아파트(8만5000가구) 4분의 1 수준이다. 이렇게 공급한 아파트가 줄줄이 완공되면서 입주자를 찾지 못해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금이 약세다.

연도별 구미시 아파트 3.3㎡당 매매가격과 신규 공급량 추이(단위: 만원, 가구) /땅집고


현재 구미시에서는 2014년 최고가 대비 최대 15% 정도 하락한 아파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구미확장단지와 인접한 옥계동 ‘현진에버빌엠파이어’ 아파트 전용 98㎡는 2014년 최고 3억1000만원이었지만 올 2월 2억6000만원으로 4년새 5000만원 떨어졌다. 오래된 아파트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옥계동 ‘동우대백’ 아파트(1994년 입주) 전용 59㎡는 4년 전 1억원 정도에 매매됐지만 올해에는 5000만원에 거래돼 가격이 반토막났다.

구미시 옥계동 일대 원룸 외벽 기둥에 세입자 구하는 광고 문구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한상혁 기자


젊은 근로자를 겨냥해 우후죽순 들어섰던 원룸은 공실이 속출하고 있다. 이날 구미시내에는 전봇대나 건물 외벽에 원룸 세입자 구한다는 안내문이 붙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B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원룸에 살다가 결혼하면서 아파트로 이사하는 근로자가 많다보니 통근버스를 타기 어려운 곳이거나 지은지 오래된 원룸은 월세 10만원에도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 20% 이상이 빈 곳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공장 이전…지역 경제도 휘청

경북 구미시 삼성전자 제2캠퍼스 정문. /한상혁 기자


이런 가운데 구미 경제의 핵심이던 삼성전자 휴대전화 연관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 경제도 침체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이후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이전했고, 구미산업단지 내 협력업체 수백 곳이 폐업하거나 업종을 바꿨다. 구미산단 생산액도 2014년 48조원에서 2017년 44조원으로 감소했다.

구미시 인동네거리 앞 상가 건물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한상혁 기자


구미 삼성전자 캠퍼스와 인접한 인동동네거리 일대는 비어있는 상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상 11층 건물은 2·3·6·8층이 동시에 비어 임차인을 구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인동동 S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월 500만원 받던 상가 임대료가 1년새 400만원으로 20%나 내린 곳도 있다”며 “장사가 안되니 식당, 술집,병원 가리지 않고 폐업하는 경우도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구미시 “산업 침체, 심각한 수준 아니다”

연도별 구미산업단지 내 근로자 수와 생산액 추이. /구미시청


구미시 주택 경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잉 공급이다. 구미 인구는 지난 3월 기준 42만여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주택보급률이 122%(2016년 말 기준)를 기록해 전국 평균(102%)을 크게 웃돌고 있다. 특히 전체 19만여 가구 중 원룸(6만6000가구) 비중이 33%에 달한다. 미분양 주택도 올 2월 기준 1625가구나 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작년 9월 이후 5개월째 구미를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과잉 물량이 해소될 때까지는 집값 하향 조정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공급 과잉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변 지역 인구 유입으로 구미시 인구(지난 3월 기준 42만 여명)가 계속 늘고 있고 가팔랐던 아파트 공급 속도 역시 조정되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해 구미에는 아파트 공급이 한 채도 없었다. 올해 3000여 가구가 분양될 예정이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구미시도 구미산단 위축이 크게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최동문 구미시 투자통상과장은 “구미 인구나 기업체 근로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고 아파트가 많이 지어진만큼 주거 여건도 개선돼 구미 경제의 미래 자체를 암울하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구미뿐 아니라 경북 전체에 내년까지 입주 대기 물량이 많고 지역 경기 침체로 구매력도 떨어진 상태여서 전형적인 조정 국면에 접어드는 모습”이라며 “앞으로 공급량이 줄어 자연스럽게 조절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서울을 겨냥한 보유세 등의 규제가 지방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안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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