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강북에서 분양한 A 주상복합 아파트. 전용면적 84㎡ 분양가격이 14억원이 넘는 고가(高價) 주택이었다. 서울 전 지역의 분양권 전매를 금지한 지난해 ‘6·19 부동산대책’ 이후 분양됐기 때문에 등기 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이 아파트에서는 작년 말부터 암암리에 분양권 전매 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땅집고 취재 결과 드러났다. 최초 계약자 중 일부는 3000만~4000만원대 웃돈까지 받고 분양권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분양권 불법 전매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다. 하지만 단속권을 가진 B구청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 문제가 없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분양권을 넘긴 최초 계약자, 새로 취득한 매수자, 그리고 이를 중개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모두 법망에 걸리지 않도록 교묘하게 설계한 신종 편법 거래였기 때문이다.
■교묘한 ‘3자(者) 거래’…사실상 불법 전매
A 주상복합의 편법 분양권 전매에는 배경이 있다. 정부는 작년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전 지역과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의 아파트 중도금 대출에 대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40%로 낮췄다. 특히 신규 주택이 8·2 대책 이전에 분양됐더라도 시행사와 금융기관이 중도금 대출 약정을 맺기 전이라면 소급 적용했다. 다만, 무주택자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A 단지 역시 중도금 대출 40% 제한 규정이 소급 적용됐다. 이렇다보니 당초 60%까지 대출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계약했던 유주택 당첨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진 것. 개별적으로 거액의 중도금을 마련하든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취소해야 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몇몇 계약자들과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편법을 찾아냈다. 이 아파트에 청약했다가 떨어진 수요자들 가운데 분양권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아 중도금 마련이 어려운 분양권 매물을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전매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들이 찾아낸 묘수(?)는 시행주체(조합)를 설득해 기존 계약은 위약금 없이 취소하는 대신 계약 취소 물량은 분양권 매입 희망자에게 넘기도록 하는 것이다.
조합측도 이 방식에 동의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합 측은 아파트 분양에 앞서 ‘중도금 60% 무이자 대출’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로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해지면서 분양계약자들에게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던 것이다. 계약자들은 이미 집단행동에 나섰다. 자금 여력이 있는 시공사가 대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2차 계약금(중도금)을 내지 않겠다며 시위를 벌이던 상황이었다.
결국 조합과 시공사, 계약자간 3자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A단지에서는 편법 전매가 이뤄졌다. 기존 계약자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모집한 매수자가 새로 계약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위약금을 물지 않고 분양 계약을 해지했다. 이 과정에서 3000만~4000만원의 웃돈을 받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 측도 계약 취소분에 대한 추가 분양 부담을 덜게 됐다.
■양도세 탈루인데…구청은 “문제없다”
하지만 이런 거래 방식은 분양권 전매 금지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시킨 사실상 불법적인 거래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문제는 결국 웃돈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거액의 양도세가 탈루됐다는 사실이다. 만약 4000만원의 웃돈을 주고 분양권 전매가 이뤄졌다면 양도세(세율 50%)와 주민세(양도세 10%) 등 2200만원 정도를 내야 했다.
관할 구청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A 아파트가 속한 B구청은 신고를 받고 이 같은 거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지만,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B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계약 해지 요구자에 대해 신규 계약자를 조합에 알선하는 조건으로 일반 분양계약자의 계약금을 반환하는 내용이 있었다”며 “(하지만) 분양 계약 당사자가 계약을 해지하고 조합과 신규 계약자 간에 새로 계약을 체결한 것은 분양권 전매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설령 기 분양자와 신규 계약자 간 사적 금전 거래가 있었다 해도 그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아파트에서 편법 전매가 이뤄진 것은 특수한 경우이지만 조건만 맞을 경우, 비슷한 편법 전매가 앞으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청약 경쟁률이 높았던 단지에서 정당 계약기간에 미계약분이 나오면 예비 당첨자에게 기회가 돌아가지만 이처럼 정상 계약 이후 취소한 분양권은 시행사가 누구에게 넘기든 제한이 없다”며 “시행사가 계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을 받지 않거나 전매에 따른 이익이 위약금보다 많으면 언제든지 이 같은 편법 전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거래가 불법인지 여부에 대해 “해당 관청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불법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계약 취소 후 재계약은 실질적으로 불법 전매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이런 행위를 눈감아주면 비슷한 편법 거래가 계속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시장 질서 유지를 위해 엄격한 단속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