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재건축 사업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수주 과정에서 무상 제공하기로 한 5000억원을 공사비에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조합원들이 1인당 2억원 넘는 부담을 추가로 지게 될 수도 있어 반발이 예상된다. 현대건설이 강남 고급 재건축 시장 선점을 위해 의욕적으로 수주한 사업에 도리어 발목을 잡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무상 제공’ 5000억원, 알고 보니 공사비에 포함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는 총 사업비 10조원, 공사비 2조6000억원 규모로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린다.
현대건설은 이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GS건설을 이기기 위해 대규모 출혈 경쟁을 벌였다. 아파트 건축 사상 유례없는 고급 특화 설계비용과 가구당 7000만원의 이사비 등 5026억원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현대건설이 약속했던 무상 특화 계획은 수입 주방가구 등 건축 특화비 2483억원, 이사와 입주 지원 등에 1852억원, 보이스 홈 등 전기 특화와 미세먼지 시스템 등 기계 특화에 각각 279억원 등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특화 설계비용 5026억원은 모두 총 공사비(2조6363억원)에 중복 포함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무상으로 해주겠다던 특화 설계비를 공사비에 포함해서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조합원의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토부의 점검에서는 이처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한 사항을 실제로는 유상으로 처리한 건설사가 5곳으로 조사됐다. 적발된 공사비 총 5424억원 중 현대건설의 반포주공1단지 중복 계산이 5026억으로 전체의 93%를 차지한다.
국토부는 현대건설을 비롯한 건설사들의 재건축 수주 과정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사과정에서 조합이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등 수주 과정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작년 매출의 15%, ‘독이 든 성배’ 되나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은 지난해 9월 수주 당시부터 현대건설에 ‘독이 든 성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강남구 압구정동을 비롯해 대규모 고급 재건축 단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라지만 지나친 출혈 경쟁으로 이익이 많지 않으리란 것이었다.
현대건설은 무상 특화와 이사비 제공뿐 아니라 일반분양 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더라도 조합이 제안한 최저 일반분양가를 보장하고, 미분양이 발생하면 현대건설이 이를 인수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수주전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조합원들에게 고급 호텔 코스요리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이렇게 홍보마케팅 비용으로만 30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는 말도 나왔다.
특히 가구당 7000만원의 이사비 제공도 아직 논란 거리로 남아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9월 과도한 이사비를 지급하기로 제시하는 행위가‘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배된다고 보고 시정을 지시했다. 현대건설은 이로 인해 무산된 이사비 지원을 어떤 방식으로든 조합원 혜택으로 돌리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공사비 2조6000억원은 지난해 현대건설의 매출(16조8500억원)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다. 애초부터 큰 출혈을 감수하면서 수주한데다 수사나 소송 등으로 이어질 경우 타격이 커질 수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매출 16조8544억원, 영업이익 1조119억원, 당기순이익 3743억원을 기록해 업계 최초로 3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을 기록했다. 겉으로는 양호한 실적이지만 매출이 전년 대비 10%, 당기순이익은 48%나 줄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무상 제공 항목을 공사비에 포함시킨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5000억원 무상 제공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며 공사비 산정과 관련한 이견에 대해서는 국토부와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