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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려대까지 번진 '부동산 열공'

뉴스 이상빈 기자
입력 2018.03.16 06:31
고려대학교 부동산·금융학회 크레딧(KREDIT) 학생들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이상빈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경영관 건물. 강의실에 학생 열댓명이 모여 심각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원래 있던 집을 셰어하우스로 바꾸면 몇명이 들어와서 살 수 있을까. 수익률은 더 올라갈까.” “리모델링 비용은 얼마나 들지 좀 더 명확하게 계산해야 할 것 같은데….”

대학가에 있는 건물주가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두고 토론하던 이들은 고려대 부동산금융학회 크레딧(KREDIT) 회원들이다. 크레딧은 고려대 학생들이 ‘부동산’을 공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공부 모임. 이들은 부동산 투자 상품 분석과 부동산 금융 기법을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하고, 방 구하는 노하우 등 실전형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대학가에도 부동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대학에서 독학으로 부동산 공부를 하거나 학회를 만들어 부동산 스터디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미 대학생 때부터 부모 도움을 받아 이른바 ‘갭(gap)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부동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공교육 과정에선 부동산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생들이 자구책을 만들어 부동산 공부에 나선 것이다.

■부동산, 스스로 알아서 배우는 대학생들

서울대와 고려대엔 최근 부동산 학회가 활발히 활동 중이다. 서울대 ‘스누SRC’(SNU SRC)와 고려대 크레딧(KREDIT)은 부동산과 금융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모임이다. 2006년 서울대 도시계획대학원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설립된 스누SRC는 최근 학부생 위주로 활동을 재개했다. 고려대 크레딧은 올해로 활동 2년째다. 부동산학과가 있는 건국대에도 부동산 관련 학내 동아리 ‘SUN’이 있다.

이들은 매주 모여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서 부동산을 공부한다. 임대차보호법이나 양도소득세, 취득세 같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부동산 상식을 공유하기도 하고, ‘비즈니스’로 부동산 산업을 연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형 오피스 빌딩의 가치를 평가하고 모의투자제안서를 작성하는 것도 이들의 활동 중 하나다. 학회에는 건축이나 토목학과, 경제·경영학과 학생이 많다. 하지만, 지리교육과나 간호학과, 기악과 등 부동산과 전혀 관련없는 전공을 가진 학생도 있다.

고려대 크레딧 창립 멤버였다가 취업한 김동현(NH투자증권)씨는 “온 국민들이 부동산에 관심을 갖지만 실제로 부동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어 학회를 만들었다”며 “부동산 투자라고 하면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현실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학회 멤버들은 졸업 이후 금융회사나 건설사, 시행사, 신탁사 등은 물론 투자은행(IB), 부동산 컨설팅 회사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 자체가 부동산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학회에서 배우고 토론한 것이 실제 취업에도 적지 않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백남혁(26) 스누 SRC 학회장은 “학교에 부동산 학과가 없다보니 관련 지식을 배우고 직업 탐색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자 들어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크레딧 학회장 윤제호(26)씨는 “부동산 투자 회사에서 배우는 투자 방법론이나, 기업 부동산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기 때문에 실제 취업 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학원·스타트업도 성행…어른들 따라 ‘갭투자’ 하기도

‘은퇴자의 고시’라고 불렸던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에도 20~30대 대학생 위주의 젊은이들이 뛰어들고 있다. A공인중개사 학원 관계자는 “예전엔 중개사 자격증을 노후 준비와 은퇴 대비용으로 장년층이 따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20~30대 젊은층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개사자격증을 딴 이은지(27)씨는 “요즘은 기업에서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대해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여서 주변 친구들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세입자에게 복비를 안받는 '집토스' 관악본점. /심기환 인턴기자


부동산 분야에서 창업하는 대학생도 있다.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집토스’는 지난해 대학생들이 만들었다. 전·월세 매물을 중개할 때 임대인에게만 수수료를 받는 ‘수수료 반값’ 서비스로 화제를 모았다. 셰어하우스 사업을 운영하는 ‘코티에이블’은 대학생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다.

20대부터 최근 3~4년 사이 유행하는 ‘갭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갭투자는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 만큼의 돈만 투자해 집을 매입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부모 도움을 일부 받아 갭투자를 한 이모(28)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값은 오르는데, 나중에 월급 모아 집 산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것 같아 갭투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서른 먹고도 부동산 모르는 사람이 태반”

전문가들은 온 국민이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상황이지만 교육과정에서 부동산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학생과 기업의 수요는 부동산으로 쏠리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부동산학과 커리큘럼을 보유한 학교는 전체 고등교육기관(대학·전문대 포함) 430개 중 31개 대학(43개 학과) 뿐이다. 희소성이 있는 부동산 학과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입시경쟁률이 6~7대 1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지난해 부동산 관련 학과 지원자수와 합격자수. /커리어넷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들은 대학과 교육당국에서 ‘부동산=투기’로 보는 인식을 바꾸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동국대 겸임교수)은 “공교육 과정에서 부동산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없다보니 서른, 마흔이 돼서도 부동산을 제대로 모르고 여전히 ‘투기’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온 국민이 부동산을 모르고 살 수 없는 만큼, 대학 교양 과정에라도 부동산 교육 과정을 만드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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