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초라해 보이는 이 건물, 입구부터 깜짝 놀라

뉴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입력 2018.03.06 06:50 수정 2018.03.06 07:48

건축은 인류 역사와 함께 수천년을 공존해 왔다. 건축이 없는 인간 삶은 상상 불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건축에 대해 잘 모른다. 땅집고는 쉽게 건축에 다가설 수 있도록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와 함께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담긴 국내외 건축물을 찾아간다.

[양진석의 교양 건축] ④ 평범한 주택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박물관으로

서울 마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와이즈건축 제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꽃다운 나이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겪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지어진 공간이다. 이 건물은 와이즈건축의 장영철과 전숙희, 두 젊은 부부 건축가의 작품이다.

서울 마포구 주택가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네이버지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주택가 한편에 위치한 조그만 주택을 리노베이션해서 만들었다. 이곳은 여느 박물관처럼 큼직한 출입구, 넓은 로비 공간도 없다. 그저 구석에 위치한 작은 철문 하나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박물관이라 하기에는 참 초라해 보이는 이 건물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로비 왼쪽 철문을 열면 6m 높이의 담벼락 옆에 좁은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벅저벅 소름 돋는 소리가 나는 자갈길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좁은 자갈길 위에서 일제시대 우리가 겪었던 슬픈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거친 바닥을 밟으며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좁은 자갈길이 나온다. /와이즈건축


예산 문제 때문에 공사비를 그리 넉넉하게 쓰지 못했다고 하는 이 박물관은 입구부터 남다르다. 벽에 그려진 소녀의 어두운 그림자와 꽃으로 이미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높은 벽 왼쪽에 있는 검은 실루엣의 소녀 안에는 꽃나무가 있다. 이 이미지는 꽃다운 나이에 희생당한 일본군위안부들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소녀를 만나면 누구나 일순간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면 실제 인물의 얼굴을 그대로 본뜬 조각이 있어서 할머니들이 바로 곁에서 속삭이며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지하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거친 벽돌을 통해 지하에서 느꼈던 아픈 감정이 이어지도록 했다. /와이즈건축


이 골목을 통과해 바로 먼저 접하는 곳이 지하 골방이다. 일본군위안부의 삶을 재현해 놓은 방이기도 한 이곳은 소녀가 느꼈던 극도의 공포와 절망감을 표현한 전시장이다. 이 전시장에 가면 슬라이드를 볼 수 있는데, 별 다른 장치 없이도 사람들을 역사적 사실에 몰입하게 한다. 지하를 나오면 곧바로 1층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2층으로 이어진다. 긴 동선을 둘러싸고 있는 거친 느낌의 벽돌은 단순한 장식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겁니다.” 벽돌에 적힌 할머니들의 말과 그림에 하나하나 집중할 수 밖에 없게 한다.

추모의 벽에는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과 사망일이 적혀 있다. /와이즈건축 제공


벽돌에 새겨진 글을 읽으면서 계단을 지나 2층 전시 공간에 도착하면 비로소 외부의 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다. 2층 외부 벽면은 틈을 가진 벽돌 패턴이 사용돼 있다. 틈 사이로 꽃들이 있는데, 전쟁 피해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추모의 벽에는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과 사망일이 적혀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할머니들은 30명에 불과하다. 이제 머지않아 박물관 추모의 벽 구멍들이 다 채워져 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벽이 될 것이다. 이 틈이 있는 벽은 이 박물관 외관의 주요 특징이자 추모의 벽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건축 요소 중 하나다.

중정을 중심으로 전시관들이 연결돼 있다. 무엇보다 주택을 개조한 박물관이어서 자칫 답답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한다. /와이즈건축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면 드디어 탁 트인 유리문을 통해 정원으로 나올 수 있다. 어둡고 거친 세계를 벗어나 자연과 빛을 마주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일상적인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주며 ‘아, 이곳이 주택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박물관은 예전에 주택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들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곳이다.

보통 건축이라 하면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화려한 외관을 한 건물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건물의 형태적 표현보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동선과 공간의 변화로 원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젊은 건축가다운 역발상, 소박함과 겸손함에서 나온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곳이다. 벽돌 한장 한장에 역사의 의미를 담은 이건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대표는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안양대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와이그룹 대표이며 건축교육프로그램 NA21과 파이포럼 주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교양건축’, ‘건축가 양진석의 이야기가 있는 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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