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다운계약 무더기 적발했지만, 국세청은…

뉴스 김리영 인턴기자
입력 2018.03.02 06:31

지난해 말 경기 광명시 광명역세권 인근의 아파트의 분양권을 구매하려고 부동산을 찾았던 A씨는 고민 끝에 매입을 포기했다. 인근 부동산들이 하나같이 실제 거래 가격보다 낮은 금액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다운계약’을 하지 않으면 거래가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A씨는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가 다운계약 단속을 강화한다고 해서 좀 사라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며 “웃돈이 붙은 아파트 분양권은 다운계약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권 다운계약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파트 분양권 다운계약은 ‘웃돈(프리미엄)’이 붙은 아파트 단지에서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했다고 정부에 신고하는 행위다.

다운계약을 하면 50% 안팎에 이르는 양도세 등을 덜 낼 수 있어 명백한 불법 탈세 행위다. 하지만 분양권 거래 시장에선 일상 다반사가 됐다. 지난해 무더기 다운계약이 문제가 됐던 부산 동래구의 아파트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통상 20~30%씩 다운해 계약서를 쓰는 것은 일반적”이라며 “프리미엄이 많이 붙은 인기 분양 단지에선 소위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까지 가세해 1억원까지 낮춘 계약서를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운계약이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국토부가 공개하는 분양권 실거래가 정보 역시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 한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분양권 거래 전체(212건)가 다운계약 의심 사례로 경기도청에 의해 적발됐다.

땅집고 취재 결과, 이 단지 분양권은 실제 거래 금액보다 8000만원 정도 낮춰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다운계약으로 확정돼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는 현재까지 단 3건에 불과했다.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에 입주를 앞두고 공사 중인 아파트. /김리영 인턴기자


분양권 거래가 활발한 지역에서 다운계약이 성행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작년 한 해 부동산 불법거래 단속을 위해 각종 대책을 연거푸 쏟아냈지만, 다운계약 근절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정부의 다운계약서 단속 방식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부동산 불법거래 단속 방안. /국토교통부


■친인척 계좌 추적이 필수…지자체 권한 없어

그렇다면 다운계약은 왜 관행처럼 자리잡았을까. 땅집고 취재팀은 부동산 중개업소와 단속 담당 공무원 대상으로 그 원인을 취재했다. 통상 분양권 거래는 일반적인 부동산 중개와 마찬가지로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에 중개업소가 알선한다. 이 과정에서 다운계약에 대한 ‘노하우’는 중개업소에서 알려주는게 일반적이다.

경기도 신도시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B씨는 “다운계약을 할 때 서류상 금액 외 다른 돈은 통상 친인척이나 친구 등 주변 인물을 통장을 이용해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규정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불법 거래 의심 정황을 발견해도 주변 인물 계좌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지자체 단속팀은 거래 당사자 또는 공인중개사에게 거래계약서, 거래대금 지급증명자료 등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단속을 예상하고 자신의 계좌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이를 잡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동산 중개업소가 밀집한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조선DB


국토부는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에서 법을 개정해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이 부동산 불법거래 당사자에게 경찰관 동행 없이 긴급체포·영장집행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다운계약’단속에는 별 효과가 없다. 일례로 특별사법경찰은 불법 계약이 의심되는 공인중개사에 대해 압수수색 등 수사를 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당사자들 및 관련자에 대한 ‘계좌추적·압수수색’ 등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부동산 특별사법경찰제도 운영 방안. /국토교통부


■국세청 “거래가격 낮다고 계좌추적은 불가능”

다운계약이 판치는 또 다른 이유는 국세청의 소극적 단속이다. 국세청은 지자체가 ‘다운계약이 의심된다’며 자료를 제출하면 거래 당사자나 그 주변 인물 계좌를 추적해 적발한다. 여기서 ‘의심 사례’란 주변 시세보다 명확히 낮은 금액에 거래가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국세청은 지자체가 보내온 ‘다운계약 의심 사례’에 대해 대부분 계좌 추적 등 조사에 대해서 미온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올라온 의심 사례는 신고 가격이 시장 가격과 다르다는 점 말고는 다운계약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명확한 증거 없이 함부로 개인의 금융 자료를 조회할 수 없게 돼있다”고 했다.

결국 국토부와 지자체는 “다운계약 의심사례를 대규모로 적발해 국세청에 통보했다”며 일종의 면피(免避)를 하지만, 국세청은 “그것만으로는 조사할 수 없다”며 방치하는 바람에 다운계약 단속은 일종의 ‘쇼’로 전락했다.

■다운계약 단속에 무기력한 정부…‘법 지키는 사람만 손해’

정부는 거래 당사자가 다운계약했다는 사실을 지자체에 자진 신고하면 과태료를 100% 감면받을 수 있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지난해 도입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는 매수자가 정부나 지자체가 조사하기 전 다운계약 사실을 자진 신고하면 과태료를 전액 면제해주고, 조사 개시 이후 증거 자료 등을 성실히 제출할 땐 과태료의 50%를 감면받게 해준다.

하지만 매수자로서는 과태료를 면제받는다 해도 과소 신고분에 대한 가산세를 내야 해서 선뜻 자진 신고에 나서기 어렵다. 예를 들어 실제 거래가격보다 7000만원을 낮게 신고했을 경우 과태료(최대 3000만원)는 면제받더라도 신고불성실 가산세 등으로 내야 할 돈이 보통 100만원 이상이다.

정부가 눈에 뻔히 보이는 불법 탈세행위인 다운계약은 방치한 채 투기꾼과 집값을 잡겠다며 위헌(違憲) 논란까지 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같은 초강력 대책을 쏟아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엉뚱한 규제를 마구잡이로 도입해 시장과 전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다운계약 단속만 잘해도 과열된 시장이 안정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다운계약을 불법이라고 해 놓고, 단속 방법이 없다고 방치하면 결국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본다”며 “실효성 있는 단속 방법을 찾아 내지 않는다면 지금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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