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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라켓을 꼬아놓은듯…안팎이 없는 건축물

뉴스 국형걸 이화여대 교수
입력 2018.02.07 06:50

[국형걸의 건축레시피] ⑥ 기하학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마술

파르테논 신전(좌), 시드니오페라하우스. /HG-Architecture 제공


건축은 고대 기하학에서 시작됐다. 기본적으로 건축물은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계산된 구조를 갖춰야 하고, 거대한 스케일을 효율적으로 시공하기 위한 수학적 정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수학적 기준이 미적으로 완벽한 비율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건축과 기하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피라미드, 파르테논신전 등 고대 건축물부터 현대 첨단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에 적용된 기본적 기하학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순수 기하학적 공간의 구체화 과정(좌)과 디지털 제작 솔루션. /HG-Architecture


‘다이나믹 릴렉세이션’은 ‘트레포일 낫(trefoil knot)’이라는 3차원 기하학에서 영감을 얻은 조형물이다. ‘삼각함수로 정의되는 기하학적 곡선이 현실 속 물리적인 공간이 된다면 어떨까?’, ‘단순히 아름다운 조형물을 넘어서 사람이 들어가고 올라탈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이 구조물은 2015년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의 ‘야외프로젝트 S’라는 공모 당선작이다. 전체 9.5m, 높이 3.2m의 이 거대한 스틸 구조물은 수학과 기하학에 의해 설계됐다. 정삼각형 단면을 가진 7개 타입, 21개 모듈로 구성된 이 구조물은 디지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앞마당에 설치된 다이나믹 릴렉세이션. /사진=신경섭


올림픽공원의 역동성을 나타내는 다이나믹 릴렉세이션은 낯설면서도 친숙하다. 만화나 영화에서 본 듯 한 느낌과 현실에서 마주친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을 동시에 준다. 소마미술관 앞마당 언덕에 설치된 이 조형물은 마치 테니스 라켓이 꼬인 것과 같은 독특한 모습 덕분에 올림픽공원의 아이콘이 됐다.

3차원 기하학을 활용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역동적인 조형물. /사진=신경섭


다이나믹 릴렉세이션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3가닥의 파이프가 교차하며 엮인 이 구조물은 디딤돌 역할을 하는 세 지점을 통해 지면에 고정돼 있다. 모듈 자체가 3차원 트위스트 방식으로 제작됐다. 전세계 최초로 강관(내부가 빈 봉 형태의 철강 제품)을 기하학에 적용한 디자인이다. 이러한 기하학적 형태는 스케일에 따라 작은 조형물뿐 아니라, 건축물까지 적용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스틸 구조체와 그물면의 조합으로 내부와 외부가 하나가 되는 모습. /사진=신경섭


강관 파이프를 따라 펼쳐진 그물 면은 하부에는 그늘을, 상부에는 사람들이 올라탈 수 있는 해먹 역할을 한다. 내부 공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외부가 서로 뒤바뀌는 공간으로 안팎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바닥과 벽, 천장이 하나로 이어지는 3차원 공간이다. 이는 단순히 관람용이 아닌 체험 가능한 조형물로 사람들에게 올라타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역동적인 구조체. /사진=신경섭


구조물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마치 살아듯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생물의 근육처럼 튀어나온 강관은 곡선을 따라 흐르며 역동성을 내뿜고, 지면에 고정되기보다는 잠시 안착한 듯한 모습이다. 이 곡선면은 주변 공원의 녹지 풍경을 새롭게 프레임화하고 곧 자연의 일부가 된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다이나믹 릴렉세이션. /사진=신경섭


다이나믹 릴렉세이션은 많은 사람이 올라탈 수 있도록 전문가의 구조 검토를 받은 안전한 구조물이다. 전시 기간동안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어른들에게는 신기한 관람 대상이었다. 놀이기구이면서 조형물, 조형물이면서 놀이기구이인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놀이터 시설물로 개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몇 개월간 전시하고 안전 문제 때문에 철거됐다.

인피니트 엘리먼트(Infinite Element) by 국형걸+신수경 . /사진=김정현


이후 다이나믹 릴렉세이션은 2016년 광주비엔날레 폴리 전시에서 재탄생했다. 구조물의 기하학적 뼈대는 재활용됐고, 3차원 면은 미디어 아트를 만나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인피니트 엘리먼츠(Infinite Elements)’로 과거, 현재, 미래로 무한 반복되는 시간 속의 거대 생명체를 표현했다. 무한궤도 형태의 역동적인 구조체 안에서 반짝이는 LED 선들은 마치 DNA 속 나선구조처럼 변화무쌍한 하나의 생명체가 됐다. 인피니트 엘리먼츠는 2016년 광주비엔날레 광장에 전시된 이후 지금까지도 밤마다 주변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기하학은 낯설고 특이한 형태를 실제로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하학을 활용해 탄생한 새로운 구조물들은 예술 작품으로 사랑받고, 국제 특허로도 등록되는 등 지적 재산이자 디자인 발명품이다. 재생산과 맞춤형 개발을 통해 상품성을 지닌 건축 디자인으로서의 잠재력도 발휘하고 있다.

국형걸 이화여대 교수.

국형걸은 미국건축사(AIA)로 이화여대 건축학전공 교수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사를, 미국 컬럼비아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뉴욕 와이스/맨프레디 아키텍츠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2년부터 HG-Architecture 건축디자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016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본상을 수상했고 2017년 젊은건축가상을 받았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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