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불패' 절반의 진실] [中] 물량 앞엔 장사 없다… 재건축 촉진하고 공급 늘려야
- 분당의 교훈, 시장의 교훈
20억까지 치솟던 분당아파트… 판교 들어서니 13억5000만원
- 잡으면 뛰는 역설엔… 역발상으로
아파트 지을 땅 더는 없는 서울… 결국엔 재건축·재개발이 필요
재건축 추진 중인 강남 아파트… 시장에 절반만 풀려도 집값 안정
경기 분당 신도시 정자동 A아파트는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돌던 2007년, 전용면적 139㎡형 가격이 20억원까지 치솟았다. 10년 뒤인 지난 30일 오후 단지 앞 공인 중개 사무실에 붙은 광고 전단에는 해당 면적 가격이 '13억5000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변 B아파트 같은 평형도 한때 16억원이던 가격이 10억원으로 내려와 있었다. 공인중개사 이모씨는 "절대 안 내릴 것 같던 가격이 2009년 바로 옆 판교에 3만 가구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거짓말처럼 폭락했고 이후론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결국 물량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각종 정책이 쏟아지는데도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 값이 계속 치솟자 '강남 불패(不敗)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의 교훈'을 활용한다면 강남 집값을 진정할 정책은 얼마든지 있다. 더군다나 강남의 초고가 주택은 뉴욕 등 외국 주요 도시 고가 주택과 달리 임대료가 뒷받침을 하지 못해 '거품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다.
◇"재건축 촉진책이 강남 집값 해법"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 매매가격은 지난달보다 0.86% 올라 2008년 7월(0.91%)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견인차는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였다. 강남구가 2.72%, 송파구가 2.45%, 서초구가 1.8%로 서울 25구 중 1~3위를 싹쓸이했다. 시장에서는 규제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목소리가 높다. 다주택자를 옥죈 탓에 '강남 집 한 채' 열풍이 일었고, 재건축을 옥죈 탓에 '한동안 강남권 새 아파트가 안 나올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했다는 것이다. 지난 30일에는 국회에서도 "정부의 재건축 연한 연장 검토 발언으로 서초동 내 집값이 올랐다"는 국회의원 발언이 나왔을 정도다.
이는 역으로 정책을 제대로 쓴다면 집값을 내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역시 '공급 정책'이다. 다수 전문가는 "정부가 강남권 재건축·재개발을 묶을 게 아니라 발상을 전환해 촉진책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용적률이나 재건축 연한 등의 규제를 낮춰서 소비자들에게 '지금이 아니라도 새 아파트를 살 기회는 계속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서울에는 어차피 재건축 외에 새로 집을 지을 땅이 없다"며 "대신 임대주택 비율 상향, 기부채납 강화 등으로 개발 이익을 사회에 환원토록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일 현재 강남 3구 내 정비 구역이면서 관리 처분 계획 인가(認可) 신청을 하지 않은 초·중기 재건축 아파트는 60여 단지 4만7000여 가구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건축 사업을 통한 일반 분양분을 감안하면 7만 가구 정도의 새 아파트가 대기 상태인 셈"이라며 "그 절반 정도만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내면 아무리 콧대 높은 강남 새 아파트값이라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급락 전세가율, 강남 집값 거품 징후?
강남 집값의 또 다른 변수는 '임대료'이다. 임대료가 동반 상승하지 않는 집값 상승은 거품 가능성을 보여준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집값이 급등했는데 임대료가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 집값은 조그만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며 "매매에는 '가(假)수요'가 있지만, 임대에는 가수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인 '전세가율'은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기준 69.3%로 2015년 6월 이후 처음으로 70% 아래로 내려갔다. 지난 1년간 서울 전체로는 5.4% 떨어졌는데, 강남·서초구는 9.5%, 송파구는 9.7% 떨어졌다.
강남권에서는 집값만 가파르게 올랐다는 의미다. 서초구 반포동 대표 단지인 E 아파트는 월세가 260만원인데 매매가는 15억8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뉴욕 맨해튼에서 비슷한 가격대 아파트 월세(약 5100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미국계 기업 지사장은 "강남은 월세 대비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글로벌 기준으로는 거품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로 저성장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올해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3757만4000명으로 작년(3762만명) 대비 감소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인구 구조만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016~2025년 연평균 1.8%에서 2026~ 2035년에는 0.4%까지 급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일본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부동산도 결국 전체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하게 마련"이라며 "경제 전망이 어두운 상태에서 강남 집값만 독야청청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1990년대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면서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일본은 지방은 물론 도쿄 등 대도시도 여전히 20년 전 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