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있지도 않은 '자전거래' 찾는다며 헛힘 쓰는 정부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8.02.02 06:50
지난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이지은 인턴기자


“불법 거래나 투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게 아니잖아요. 부동산 단속한다고 오를 집값이 안 오르겠습니까.”

지난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 A씨는 목청을 높였다. 평소 같으면 한창 영업할 시간이었지만 이날 목동 일대 중개업소들은 대부분 셔터를 내렸다. A씨는 “얼마 전 단속반 5명이 들이닥쳤다. 계약서와 관련 서류를 다 복사해 갔다. 나는 걸릴 게 없어 괜찮지만 주변에서는 ‘혹시 털어서 먼지라도 나올까’ 우려해서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면서 최근 부동산 불법 행위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경제부처 수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 11일 “투기 수요 근절을 위해 무기한 최고 강도로 현장 단속을 하겠다”고 말한 뒤 나온 조치다. 서울시는 한술 더 떴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되는 날까지 무기한으로 강력 단속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부의 단속 강화 조치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집중 단속이 집값을 잡는데 얼마나 효과를 낼 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불법 단속은 투기꾼 색출과 거래 투명화에 꼭 필요하다”면서도 “단속은 상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집값을 잡는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단속하면 집값이 잡히나요?”

이번 집중 단속 타깃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법 행위다. 청약통장 불법거래, 실거래가 허위신고, 분양권 불법 전매(轉賣), 불법 중개행위 등 4가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불법 행위는 당연히 단속해야 하지만 현재 집값 상승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게 문제다.

불법 중개행위란 ‘임시 중개시설물’(속칭 떴다방)을 설치하거나 법정 요율 이상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집값 상승과는 관련없다. 청약통장 불법 거래와 분양권 불법 전매는 투기 수요를 끌어들여 부동산 과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 신도시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집값 상승을 촉발했던 시절에나 통하던 논리다. 재건축과 기존 아파트 중심으로 집값이 뛰는 현재 상황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서울시가 밝힌 부동산 단속 중점 수사 사항. /자료=서울시




실제 거래가 없는데도 높은 가격에 팔린 것처럼 꾸미는 속칭 ‘자전(自轉) 거래’, ‘뻥거래’도 이론적으로나 가능하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국토부는 시세보다 과도하게 높은 매매거래는 이상 거래로 간주해 실거래가 집계에서 제외한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런 거래를 해서 취득세를 추가 납부하면서까지 집값을 올리려는 경우는 없다”면서 “만약 없는 거래를 신고하면 9억원짜리 주택 기준 4000만원 가까운 취득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엔 지역 중개업소들끼리 매물 공유시스템이 잘 돼 있어 어떤 매물이 나와있고, 누가 어떤 집을 거래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면서 “중개업소들끼리 담합하지 않는한 자전거래는 어렵다”고 했다. 국토부가 사실상 불필요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실거래가 신고 허위 여부도 부동산 중개업소 단속만으로는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단속 공무원들도 이를 인정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매계약서에 기재한 거래가액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판단하려면 거래당사자들에게 증빙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해야 한다”며 “현장 단속에서 이를 밝혀내기는 사실상 어렵고, 단속 목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금조달계획서 허위 여부 판별도 불법 행위 단속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3억원 이상 주택 매매시 자금조달계획서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정부는이 계획서의 허위 여부를 집중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현장 단속사항이 아니고 단속해도 불법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에서 받은 실거래가 신고 내역과 자금조달계획서를 바탕으로 국세청이 자금 출처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불법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수요-공급 무시했던 노무현 시즌 2 우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오종찬 기자


불법 행위 단속으로 중개업소들이 문을 닫으면 엉뚱하게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당장 봄 이사철을 앞두고 집을 구하려는 실수요자들은 매물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땅집고가 확인한 결과, 지난 11일부터 서울 목동뿐 아니라 강남구 개포동, 서초구 반포동, 송파구 잠실·가락동, 성동구 금호동 등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상당수 중개업소들이 집중 단속을 피해 ‘개점 휴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호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면 급하게 집이 필요한 사람은 매물이 없어 더 비싸게 집을 사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는 불법 행위 단속으로 거래가 투명해지면 집값 안정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영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단속을 통해 집값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투명화하고 안정화해 투기 수요 유입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2017년 5월 이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 주가 변동률. /자료=부동산114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재 집값 상승이 수요-공급 때문이라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집값 상승이 투기 탓이라고 보고 각종 규제 정책을 밀어붙여 결국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던 노무현 정부 때 상황이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설령 투기나 불법으로 가격이 오른다 해도 최종 수요자가 비싸다고 느끼면 가격은 다시 내려간다”며 “가격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있으니 단속과 규제 일변도 대책만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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