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헛발질 교육 정책에…비웃는 강남 집값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8.01.28 06:31

서울 마포구에 사는 대기업 임원 A씨는 요즘 강남구로 이사할 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그는 그동안 외국어고에 딸을 입학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자사고·특목고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다시 ‘강남 학군’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A씨는 “강남의 높은 집값이 부담되지만 자녀 교육이 최우선인 만큼 무리해서라도 이사하고 싶은 생각이 점점 커진다”고 했다.

정부가 최근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고강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집값 상승의 최대 요인 중 하나인 교육 정책은 거꾸로다. 강남 집값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열 높은 학부모 수요를 강북 등으로 분산시켰던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동산 중개업소. /뉴시스


■‘특목고, 일반고와 함께 선발’ 발표에 ‘강남 학군’ 수요 급증

지난해 11월 교육부는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일반고와 동시에 신입생을 뽑는다고 발표했다. 자사고나 외고 입시에 떨어지면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에 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던 ‘외고·국제고·자사고 폐지’를 위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발표가 나오자마자 ‘강남 학군’ 수요가 빠르게 증가했다. 강남구 대치동 일대 아파트들은 작년 12월 한달 동안 겨울 방학에 맞춰 이사하려는 문의가 늘었다. 일부 단지는 전세금이 급격히 뛰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삼성’ 전용 97㎡는 작년 11월 초 10억6000만~10억8000만원에 거래됐지만 12월엔 12억원에 전세가 나갔다.

2017년 11~12월 서울 지역별 매매가격 월간 상승률. /자료=한국감정원


작년 말 이후 강남 3구 등 학군 인기 지역의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아파트 가격은 작년 11월 한 달간 1.06%, 12월에는 1.24% 올랐다. 서초구·송파구도 한 달에 1% 안팎씩 가파르게 올랐다. 아파트 단지마다 1주일새 수천만 원씩 호가(呼價)가 높아지면서 매수대기자들은 “집값이 미쳤다”며 아우성이다. 대치동의 A 부동산 중개업소는 “최근 강남 집값 급등이 100% 교육 정책 탓은 아니겠지만 특목고와 일반고 동시 선발 정책이 발표된 이후 강남 집을 찾는 수요가 더 늘어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쉬운 수능, 선행학습 금지, 학종…강남 집중만 심화

강남 집값을 띄우는 교육 정책은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사교육을 없애겠다’, ‘경쟁 체제를 없애겠다’면서 교육부가 도입한 정책들이 오히려 강남 학군 선호 현상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입시에서 지역·고교 간 학력 격차와 사교육 의존을 줄이겠다는 ‘쉬운 수능’ 방침이다. 2000년대 이후 역대 정부가 수능 문제는 쉽게 출제하고 EBS 교재와 연계 출제하는 입시 정책을 펴왔다. 일반적으로 수능 난이도가 낮아지면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지만 고득점 학생의 강남권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

강남구는 수능 5000등 이내 일반고 학생 비중이 10년새 더 증가했다. /조선일보DB


실제로 2005년에는 서울 일반고 전체 수능 최상위권 학생 가운데 27%가 강남 출신이었지만, 2015년엔 31.1%로 늘었다. 수능 문제가 쉬워지면서 한 문제라도 덜 틀리기 위해 사설 학원에서 ‘실수 안 하기 연습’에 집중한 학생들이 유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4년부터 학교에서 정규수업이나 방과후 학교에서 선행·보충 학습을 금지한 ‘공교육 정상화’ 정책도 거꾸로 사교육 의존도를 높였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일수록 정규 수업 외 보충 학습에 대한 욕구가 높아 부족한 학습량을 학원에서 보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입 수시모집 확대, 그 중에서도 이른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중 확대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대학들은 전체 신입생 약 70%를 수시모집으로 선발한다. 특히 주요 대학은 수시 모집의 대부분을 내신 성적보다도 교내·외 다양한 활동을 보고 평가하는 ‘학종’ 전형으로 뽑는다. 하지만 학종은 ‘뭘 보고 뽑는지 모르겠다’는 뜻에서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판이 많다. 눈에 띄는 ‘스펙’을 쌓기 위한 전략과 정보에 빠른 사교육 업체가 모여있는 강남 학군의 주가를 높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서울대는 수시모집에서 100% 학종 전형으로 선발했는데 강남 3구의 합격자 수가 131명으로 전체의 32%에 달했다.

■강남 학군 있는 한 집값 못잡아…“국토부-교육부 협력해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김연정 객원기자


교육부가 현재 도입을 검토하거나 추진 중인 정책들에도 모두 강남 선호도를 끌어올릴 것들이 가득하다. 우선 교육부는 수능과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절대평가로 변별력이 없어지면 대학별 논술·면접 시험 난이도가 올라간다. 학생부종합전형 비중도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모두 사교육 의존도를 높일 우려가 있다.

오는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에 대한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하는 정책도 반대로 영어 사교육이 발달한 강남 선호를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 정책은 당초 유치원·어린이 집에도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학부모들 반대로 1년 유예됐다.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강남 집중화를 부추기는 교육 정책을 손보지 않고는 강남에 집중되는 주택 수요를 잡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강북의 신흥 주거지들도 교육 여건이 서서히 좋아지고 있지만 한동안은 강남에 집중되는 교육 수요를 분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토부와 교육부가 함께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강남 인프라의 핵심은 교육 수준인데 이를 끌어내리거나 분산시키려는 정책은 지금껏 아무 효력을 내지 못했다”면서 “공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해 다른 지역에 ‘제2, 3의 강남’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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