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인근에 위치한 지하철 DMC(디지털미디어시티)역. 6호선·경의중앙선·공항철도가 지나는 속칭 ‘트리플 역세권’으로 서울 서북부 교통 중심지 중 하나다. 2번 출구로 나와 작년 말 입주한 한샘 본사 맞은편으로 가니 높은 펜스로 가려진 넓은 땅이 눈에 들어왔다. 5년째 개발이 중단된 롯데복합쇼핑몰 부지다. 펜스 안쪽으로 잡초들이 밖에서도 보일만큼 무성하게 자랐다.
난지도 쓰레기매립장 인근 버려진 땅이었던 상암동은 2001년 월드컵경기장이 지어지고, 서울시가 2002년부터 미디어 산업단지인 DMC를 개발하면서 급격히 발전했다. DMC에는 공중파 방송 3사와 TV조선 등 관련 기업 400여개가 입주해 4만명이 넘게 근무하고 있다. 2003년부터 입주한 ‘월드컵파크’ 아파트(총 5000여가구)는 초기 분양가가 2억원대였지만 2~3년만에 두배 가까이 오를만큼 한때 열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상암동의 ‘핵심’으로 불리던 대규모 개발 사업들이 올스톱되면서 주민 불만이 높아졌다. 롯데몰·랜드마크빌딩·월드컵대교는 상암동에서 멈춰선 3대 숙원 사업으로 꼽힌다.
땅집고 취재팀은 상암동 DMC를 찾아 이 프로젝트들의 진행 상황을 점검해봤다.
■5년째 땅도 못판 롯데몰…사업여부 불투명
상암동 주민들의 속을 썩이는 대표적인 개발 사업은 DMC역 인근에 계획된 롯데복합쇼핑몰이다. 서울시는 5년 전인 2012년 12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2번 출구 인근 2만644㎡ 부지를 롯데쇼핑에 팔았다. 이후 2014년 10월 서울시와 롯데는 대규모 복합쇼핑 시설을 짓기로 합의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완공을 바라볼 2018년 현재까지도 이 땅은 비어있다.
가장 큰 이유는 망원시장 등 주변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대. 상인들은 “롯데몰이 생기면 장사를 접어야 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쇼핑몰을 지으라”며 부지를 팔았던 서울시는 사실상 말을 바꿔 “상인들과 합의가 우선”이라며 인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롯데는 작년 말 3개 필지 중 1개를 사무실 등 비 상업시설로 짓겠다고 제안했고 서울시도 긍정 검토하고 있지만, 상인들 반대가 여전해 사업시행 여부가 불확실하다.
상암동 주민들과 롯데 측은 서울시가 “땅만 팔아먹고 말을 바꿨다”고 비판한다. 롯데는 작년 4월 서울시에 점포를 열어주거나 매각 대금을 돌려달라며 행정소송까지 냈다.
주민 2500여 명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 ‘서부지역발전연합회’는 지난해 서울시에 쇼핑몰 허가를 내주라고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신종식 서부지역발전연합회장은 “스타필드 하남 등 사례를 보면 대형 상권이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켰다”며 “소수 상인들의 매출 감소 우려로 쇼핑몰 개발이 거부된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업자 못구한 랜드마크 빌딩…5년 늦어진 월드컵대교
벌써 10년째 사업자 선정도 못한 ‘랜드마크 빌딩’은 더욱 어려운 상태다. 서울시는 2008년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F1·F2블록 총 3만7262㎡ 부지에 지상 133층(640m) 초고층 빌딩을 짓고 호텔·업무시설 등을 유치하기로 했다. 당시 계획된 640m 건물은 부르즈칼리파(800m)에 이어 세계 두번째였다.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지금쯤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타워(123층·555m)를 뛰어넘는 한국의 랜드마크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당초 사업자로 선정됐던 서울라이트타워 컨소시엄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땅값을 내지 못했고 서울시는2012년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중국 뤼디(綠地)그룹, 중국건축공정총공사(SCCEC) 등 국내외 여러 기업들이 물망에 올랐고, 최소 100층 이상을 지어야 한다는 조건도 없앴지만 아직까지 사업자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16년에도 매각을 시도했지만 입찰자는 한 곳도 없었다.
사업자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이 땅의 용도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제한된 탓이다. 아파트 등 주거시설을 많이 넣어야 사업성이 있는데 주거부분 비중이 전체의 20% 이하로 묶여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토지 용도나 매각 조건을 바꿔서 팔지, 리츠 등 다른 방식을 도입해야 할지를 놓고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월드컵대교도 골칫덩이다. 2010년 착공했지만 7년동안 교각만 놓았다가 작년 12월에야 겨우 상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재 공정률은 46%로 개통은 당초 계획보다 5년 늦은 2020년 8월로 잡혀 있다. 상암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연결하는 월드컵대교는 성산대교 인근 만성 교통난 해소가 목적이다.
월드컵대교 공사가 늦어진 이유는 예산 확보에서 매년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산 상황이 좋지 않아 그동안 월드컵대교에 예산을 많이 배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준공 시점을 늦출 계획은 아니었다”고 했다.
■“상암동은 서북부 핵심인데…균형 개발 어디갔나”
상암동의 현재 모습은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상암동에서 5년째 살고 있는 박모(40)씨는 “처음 이사올 때만 해도 아파트값이 마포 공덕동과 비슷했는데 이제는 공덕동의 70% 수준도 안된다”고 했다. 실제로 공덕동과 상암동의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비교해 보면, 5년 전인 2013년에는 매매가격이 7억원 내외로 비슷했다. 현재는 2억원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공덕동 일대 신축 아파트는 10억원대로 오른 반면 상암동 일대 아파트는 7억원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주민들은 유독 상암동 개발 사업이 서울시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점에서 박탈감이 큰 상황이다. 상암동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롯데몰을 반대하는 망원시장 상인들 표만 보는 것 같다”면서 “랜드마크 빌딩도 주거시설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빨리 사업자를 찾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주민 이모(43)씨는 “예산 배정도 안되는 월드컵대교는 말할 것도 없다”며 “말로만 강남·북 균형 개발을 외치지 말고, 이미 진행중인 사업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