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강모(44)씨. 2주택자인 그는 한 채를 월세로 놓고 있다. 최근 정부가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방안’을 내놓자, 임대사업자 등록을 고려했다가 마음을 접었다. 회사 인사 담당자로부터 “회사 허가를 받지 않고 겸직하면 징계 대상”이란 말을 들은 탓이다. 강씨는 “겸직 허가를 받으려면 회사에 내가 다(多)주택자라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딴짓한다’며 뒷말도 나올 것 같고, 세금 몇푼 아끼자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정부는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를 위해 각종 유인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땅집고가 취재한 결과, 다주택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인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이 주택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려면 소속 직장의 겸직 금지 조항을 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속 기관이나 회사 대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겸직 금지’ 규정에 사업자 등록 어려워
정부는 지난달 13일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소득세·건강보험료 감면 등 여러 혜택을 주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부부합산 2주택 이상을 소유하고 연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월세)이 발생하는 경우, 주택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소득세 절감 혜택을 준다. 다주택자들이 자발적으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도록 해 임대차 시장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임대사업자 등록은 집주인이 사업자이거나 퇴직자가 아닌 현직 직장인이라면 이용하기가 어렵다. 직장인이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주는 영리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겸직 금지’ 조항 때문이다.
현재 정부 부처, 공공기관, 대기업 등 상당수 기업에서는 예외없이 임대사업자 등록에 걸림돌이 되는 ‘겸직 금지 조항’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정부 부처 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 복무·징계 관련 예규에 따라 원칙적으로 겸직(사업자 등록 포함)이 불가능하다. 겸직을 하려는 업무가 담당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만 소속 기관의 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1~2채 정도 주택 임대사업을 한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따로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없어 일단 신청이 들어오면 개별적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임대 사업자로 등록하기 위해 이렇게 겸직 허가까지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겸직 허가를 받으면서 자칫 ‘업무에 소홀한 사람’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는데 반해, 그 대가로 얻는 소득세 감면 효과가 연간 최대 40여만원에 불과해 타산이 맞지 않는 탓이다.
공공기관에서도 이 같은 공무원 복무 관련 규정을 대부분 준용한다. 공기업 중 규모가 가장 큰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방안 발표 이후 사내에서도 관련 규정을 물어보는 직원이 가끔 있는데, 실제 등록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사기업 역시 대부분 겸직 금지 조항이 있다. 허가받으면 가능한 곳도 있지만 임대사업자 등록 자체가 징계 대상인 곳도 있다. 모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주택 임대사업은 허가받으면 가능하지만 사업자 등록 혜택이 지금보다 더 커지면 모를까, 1년에 세금 몇십만원 아끼자고 유·무형의 불이익을 무릅쓰면서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했다.
■탁상행정이 만든 ‘반쪽’ 활성화 방안
이뿐만 아니다. 직장인은 임대사업자 등록에 따른 건강보험료 감면에서도 은퇴자나 사업자에 비해 훨씬 적은 혜택을 받는다.
현재 직장이 없는 은퇴자의 경우, 2019년 소득분부터 임대소득 과세(課稅)에 따라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된다. 하지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건보료를 최대 123만원(8년 임대 평균) 감면받을 수 있다. 더구나 임대소득이 연 1333만원 이하라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도 있다.
반면 임대소득을 가진 직장 가입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불과 연간 8만원(8년 임대 평균)의 건보료를 줄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탓에 정부가 기껏 내놓은 임대사업 등록 활성화 방안이 직장인들의 외면을 받는 ‘반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부동산 자문위원은 “정부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겠다면서 정작 직장인들에게 적용이 가능한지 살피지 않은 것 같은데, 전형적인 탁상 행정으로 보인다”며 “업무에 별 지장이 없는 오피스텔이나 아파트의 경우 몇 채까지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가능하도록 하는 등 직장인 대상으로 한 임대사업 등록 가이드라인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