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한 집이 두 채로… 대형아파트, 월세 버는 효자됐다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17.12.08 03:00

[애물단지 큰 아파트의 변신]

대형 평수 개조해 둘로 분할, 작은 집에 세 놓고 짭짤한 수입
정부는 임대주택 늘리는 효과… 엄격한 인허가, 주민 동의 거쳐야

"53평이나 되는 집에 나와 아내, 딸까지 세 식구 밖에 안 사는데, 딸 아이마저 곧 독립하니 멀쩡한 방 2개가 쓸모없어질 상황이죠. 월세 50만원은 충분히 받을텐데, 빈방으로 놀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경기 김포 운양동 e편한세상 아파트 176㎡(53평)에 사는 정용희씨. 그는 지난달 ‘세대 구분’ 공사를 해 집을 둘로 나눴다. 방 4개 중 현관 옆에 붙은 방 2개와 욕실, 발코니 확장 공간을 합치고 별도 출입문을 달아 전용 50㎡ 투룸 주택을 만들었다. 임대용 투룸은 침실과 주방 겸 거실, 욕실을 갖췄다. 공사비는 2000만원쯤 들었는데, 월세를 놓으면서 보증금을 받아 절반 이상 충당이 가능하다.

소형 주택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대형 평형 아파트 소유자 사이에서 세대 구분 사업이 관심을 받고 있다. 세대 구분이란 대형 아파트 내부를 고쳐 큰 집과 작은 집 2채로 나누는 것이다. 통상 큰 집엔 소유주가 살고, 작은 집은 세를 놓아 월세 수익을 올린다. 소유주 입장에서는 대형 아파트에 현금 수익을 발생시켜 주택 가치를 올리고, 국가적으로는 정부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임대주택을 단기간에 대폭 늘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빈 방 있는데"…두달 새 2000건 문의

세대 구분은 이미 6~7년 전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그동안 명확한 기준이 없어 실제 공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7월 국토교통부가 '세대 구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대형 아파트 소유주 사이에서 관심이 늘었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부동산 플랫폼 '땅집고'와 세대 구분 전문 회사 얼론투게더가 10월 말 시작한 세대 구분 '투-하우스' 사업은 두 달여 만에 2000건이 넘는 상담 신청이 몰렸다. 최한희 얼론투게더 대표는 "대형 아파트가 많은 경기도 용인, 고양 일산, 안양, 김포는 물론이고 서울 강남 지역에서도 문의가 많다"고 했다.

지난달 초 세대 구분 공사가 완공된 경기도 김포시 한강신도시 e편한세상(176㎡)의 전후 평면도와 내부 사진. 현관 오른쪽 방 두 칸과 욕실이 임대용 주택이다. 주택 내부에 집주인과 세입자를 위한 별도의 현관문(철제 방화문)을 설치하고, 세입자용 방에는 주방 시설을 설치했다. /얼론투게더 제공

‘투-하우스’ 사업의 1호 주택 소유주인 정씨는 “큰 집이 저평가된 이유는 쓰지 않는 공간이 많기 때문인데, 집 쓰임새가 좋아지면 집값도 오르지 않겠느냐”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60대 주부는 “곧 결혼할 딸과 함께 살 목적으로 세대 구분 사업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에어비앤비(숙박공유업)에 활용하기 위해 큰 아파트를 나누고 싶다는 상담 문의도 적지 않다.

세대 구분 사업은 일반 인테리어 공사보다 훨씬 엄격한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고 주민 동의도 받아야 한다. 공사 기간은 1주일 정도로 짧은 편이다. 이렇게 원룸이나 투룸을 만들어 월세를 놓으면 보증금 1000만~2000만원에 월세 40만~70만원 정도(서울, 수도권 대도시 기준)를 받을 수 있다. 사업비는 주택 상태와 구조에 따라 2000만~3000만원 정도가 든다.

◇세대 구분, 애물단지 대형 주택 해법 될까

대형 주택 소유자들이 세대 구분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데에는 최근 대형 아파트 시세가 약세를 보이는 이유도 있다. 2~3년 사이 수도권 집값은 일제히 강세를 보였지만, 대형 주택은 예외였다. 용인 기흥구 B단지 중형 아파트 가격은 4~5년 사이 7000만원가량 올랐지만, 같은 단지 295㎡(89평) 주택은 매매가격이 1억원 이상 내렸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국적으로 지은 지 10년 이상 된 130㎡(약 40평) 이상 대형 주택은 290만 가구에 달한다. 재건축도 리모델링도 힘든 주택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내년 이후 수도권 집값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면 대형 아파트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아파트 시장 침체가 노년층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김종학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 과장은 "세대 구분 사업이 집 한 채가 전(全) 재산인 노년층에게는 훌륭한 노후 대책이, 젊은 층에는 양질의 소형 임대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묘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공동주택 세대 구분 사업
이미 지어진 대형 아파트를 나눠 두 가구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중소형 주택 2채로 만드는 것. 주택 내부에 집주인과 세입자 가구를 위한 별도 현관문을 추가로 설치하고, 경량 벽체를 세워 생활 공간을 분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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