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열된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대책을 쏟아낸 결과 서울과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세수(稅收)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주택 매매시 거래 금액의 1~3%를 납부하는 취득세는 지자체의 세수 항목 중 가장 큰 비중(28%)을 차지한다.
문제는 8·2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의 주택 매매 건수가 과거에 비해 3분의 1토막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취득세도 급격히 줄고, 지자체의 세수도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오히려 내년 예산안을 1조 9418억원(6.5%) 늘어난 31조 7429억원으로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예산 대부분이 복지 분야 예산이다.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내년에 수도권 부동산 경기(景氣)가 위축되면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 복지 예산도 타격을 받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 거래가 급감했을 때에도 지자체마다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계획했던 사업이 중단되거나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방 예산 좌우하는 취득세, 거래량 따라 급감
취득세 징수액은 주택 매매 거래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취득세는 기존 주택을 매매하거나 신규 분양으로 취득·증여하는 등의 경우에 납부하도록 돼있다. 세율은 주택 금액에 따라 6억원 이하는 1 %, 6억원 초과 9억원 미만은 2%, 9억원 초과는 3%이며 여기에 추가 0.1%를 지방교육세로 납부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6년 전국 취득세 징수액은 21조7000억원으로 지방세 전체 징수액(75조5000억원)의 28%를 차지한다. 2011년 13조원이었던 취득세 징수액은 최근 몇 년간 주택 경기 호황에 따라 급격히 불어났다. 복지 증대를 비롯해 지방 재정에 단비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 기간 취득세 징수액이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은 주택 거래량 증가다. 2012년 주택 거래량(매매·신축·증여·상속 등)은 100만건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62만건이 늘어난 162만 건에 달했다.
서울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른 것도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됐다. 예컨대 전용 84㎡ 주택 가격이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오를 경우 취득세(지방교육세 포함) 징수액은 660만원에서 1540만원으로 배 이상 크게 늘어난다. 이 때문에 2013년 취득세율이 인하됐는데도 전체 징수액은 급증했다.
문제는 8·2대책이 발표된 이후 주택 거래량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것. 지난 10월 기준 전국 주택 거래량은 6만321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이나 5년 평균치에 비해 각각 41.8%, 34.3% 감소했다. 특히 각종 규제가 집중된 서울의 감소폭은 훨씬 컸다. 부동산리서치회사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계약일 기준 서울의 지난 8월 거래량은 5136건으로 전월(1만4978건) 대비 65.7%나 급감했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강력하게 규제하려는 정부 정책이 지속되면 내년 거래량은 침체기였던 2010년대 초반 수준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집값도 소폭 하락하거나 제자리걸음할 전망이다. 이 경우 13조원에서 20조원으로 급증했던 취득세 징수액이 다시 원위치할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지자체 예산…세수 감소는 ‘몰라’
세수가 줄어들 것이 뻔한 상황에서 지자체들의 내년 예산은 오히려 더 증가했다. 올해 지방 예산 규모는 총 283조원으로 지난해 대비18조원 증가했다. 이선화 한국세무학회 연구위원은 “지방 예산은 복지 예산 증가에 따라 중앙 정부 증가 속도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는 물론 저출산·고령화 현상까지 이어진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점점 지자체의 재원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취득세 세수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자체임에도 내년 예산안으로 올해보다 1조 9418억원(6.5%) 늘어난 31조 7429억원을 편성했다. 서울시의 늘어난 예산 중 1조 504억원이 복지 예산으로, 만 5세 이하 아동에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등 총 9조 8239억원이 배정됐다.
서울시는 내년 부동산 취득세 징수 예상액을 올해 징수 추정액보다 10% 정도 줄어든 4조4000억원 규모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올 8월 이후 서울시 주택 거래량이 ‘절벽’ 수준으로 급감한 것을 고려하면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서울시가 부동산과의 전쟁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말고’식 예산 편성 아니겠느냐”고 했다.
중앙정부도 지자체 예산안이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들도 지난 여름부터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 이후 나타난 거래 절벽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도소득세 중과세, 신(新) DTI 등의 각종 규제가 내년부터 시행되면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세수 감소폭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올해는 상반기에 거래가 활발해 큰 걱정은 없지만 문제는 내년부터”라며 “지방 재원이 부족하면 지방교부세 등 국세로 보완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국가 재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