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빌딩숲에 갇혀 병들었던 한옥집의 대변신

뉴스 양진석 건축가
입력 2017.12.03 06:31 수정 2018.01.22 18:36

집을 짓는다는 건 가족에게 맞춤옷처럼 딱 맞는 주거공간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공간으로부터 온전한 가족의 삶이 시작되는건 아닐까요. 가족과 집은 뗄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땅집고는 예능프로그램 ‘러브하우스’로 국내 인테리어, 건축 대중화에 앞장섰던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가 지난해 지은 집 여섯 채와 그 안에 담긴 건축철학,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양진석의 여섯 채의 집] ⑥ 서울 제기동 ‘빛이 드는 집’

오랜 세월 한약재 배달 일을 하던 아빠는 이제 은퇴해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데 다리를 다쳐 제대로 뼈가 아물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딸은 하루 종일 집에서 생활한다.

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전형적인 개량 한옥 형태를 띤 양옥이었다. 원래는 햇볕이 참 잘 드는 건강한 주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점점 빛이 들지 않고 주택은 병들기 시작했다. 집이 아프면 그곳에 사는 사람도 함께 아프기 시작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 집을 다시 건강한 집으로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L'자 형태의 개량한옥을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만들었다. /사진=이남선 작가


평면도. a 주방, b 보일러실, c 거실, d 욕실, e 방1, f 방2. /와이그룹


리모델링하기 전 제기동 주택 모습. /러브하우스


진입도로 문제 때문에 신축이 아닌 대수선으로 해야 했다. 대수선은 건축물 기둥과 보, 내력벽, 주계단 등 주요 자재와 구조물을 유지한 상태에서 외부 형태를 수선하거나 변경, 증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건축물의 면적을 지키는 선에서 자유롭게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약 60㎡ (18평)~66㎡(20평) 규모로 대수선을 통해 이 가족에게 밝고 희망 가득한 집을 만들어 돌려주고 싶었다.

■“채광과 프라이버시 동시에 확보”

제기동 집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을 수 없는 영구 음영(perpetual shadow) 집이었다. 천창을 만들고 남측과 동측에 최대한 넓은 개구부를 두어 빛을 오랜 시간 담아 놓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프라이버시(사생활) 보호를 위해 외부형 슬라이딩 가림막 문을 설치했다. 다른 집들이 사방을 에워싼 고밀집 지역에 자리한 도심형 주거의 핵심은 결국 채광과 프라이버시 확보다. 결국 제기동 집을 짓는 작업은 ‘빛과의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천장에 큰 창을 내 햇볕을 확보했다. /사진=이남선 작가


마당이 있는 ‘ㄴ’자 형태 집은 역시 한옥 공간 구성으로 귀결했다. 경사 지붕의 형태를 고쳐 남쪽으로 사면을 만들어 처마가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했다. 처마 아래에는 대청마루를 뒀다. 경사 램프를 활용해 높은 단차를 극복했다. 입구에 면한 방은 출입문 형태의 창을 크게 만들어 사랑채 공간으로 만들었다. 혹시 모를 2세대 주거를 위한 계획과 생계를 위한 임차도 고려했다.

환기가 잘 된다는 한옥의 장점을 살려 북측과 서측으로도 창을 내 십자형으로 환기될 수 있게 만들었다. 제기동 집은 한옥 형태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는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치수 감각, 공간 감각을 잘 계승해서 구현하고자 했다.

마당의 벤치역할을 하는 툇마루. 거실창호는 한화홈샤시 마스터 이중창를 썼다. 가격은 (4,650mmX2,300mm) 300만원대, (3,170mmX2,300mm) 200만원대. 주방발코니에는 'Brewell700'을 사용했다. 이 제품은 공기 중의 유해물질을 최대 90%까지 차단하고, 창문을 열지 않고도 실내공기를 환기할 수 있다. 가격은 (2,370mmX2,300mm) 300만원대 (※ 시공비 포함). /사진= 이남선 작가


■한옥 정서를 그대로 살렸다

별도의 출입문이나 현관 없이 마당이나 툇마루를 통해 진입하는 형태로 구성했다. 예전에는 집에 구들을 설치하고 방을 땅으로부터 조금 띄워서 습기를 차단하는 지혜가 있었다. 그래서 제기동 집도 대수선을 통해 기존 바닥을 보강하고 난방시설은 다시 설치했다. 구조 보강으로 자연스럽게 바닥을 높여 한옥의 정서를 그대로 살렸다.

마당과 집 사이에 툇마루를 설치해 마당 벤치이자 현관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하게 했다. 툇마루는 한옥에서 느끼는 매개 공간인 셈이다. 한옥의 방은 다목적이다. 한 칸짜리 방들이 이어지는가 하면 중간 문을 닫으면 독립적인 방이 되기도 한다. 방과 거실, 작업 공간 등 다양한 목적형 공간으로 변신한다. 제기동 집은 이런 한옥의 유연한 형태를 계승해 주방 거실 공간과 연결될 다목적 공간을 마련했다. 중간 문을 닫아 침실로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부엌과 다이닝룸. 채광을 위해 천창을 냈다. 이때 집안이 외부에 노출되는 단점은 미러 필름을 붙여 해결했다. /사진=이남선 작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음지가 음식 보관 장소와 창고로 기능했고, 때로는 작업 공간으로 이용됐다. 이미 한옥에는 수직으로 확장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측 다목적 공간을 활용해 한옥의 수직 확장 개념을 도입했다. 다락을 설치해 좁은 집에서 창고 기능과 다양한 목적형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다. 채광을 위해 경사 지붕을 적용했을 때 만들어지는 잉여 공간이 가족실 위에 위치한 다락이 됐다.

■구조 보강하고 공간 효율 높인 리모델링

제기동 집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았다. 심지어 이웃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집이었다. 그래서 대수선의 초점은 안전한 집짓기에서 출발해야 했다. 결국 구조 보강 작업 때문에 공사가 많이 늦어졌다. 구조 보강을 하고 다시 벽을 만들면서 채광창을 많이 만들어 집이 ‘튼튼해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문을 열면 거실이 되고 닫으면 독립된 공간으로 쓸 수 있다. 더울 때 문을 들어 올려 천장에 고정시킨 후 방과 마루를 통하게 하는 한옥의 '들어열개문'에서 힌트를 얻었다. /러브하우스


위에서 바라본 제기동 주택 전경. /사진=이남선 작가


과거 제기동 집은 바닥이 무너지고 난방 효과가 미약해 항상 냉골이었다. 결국 대수선 작업으로는 보기 드물게 바닥 공사까지 감행했다. 다시 난방을 설치하고 구조를 올릴 토대를 만들기 위해 바닥 보강 공사까지 했다.

대수선의 장점은 동일한 면적 안에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점을 활용해 마당에 있던 장독대와 화장실 창고를 철거했다. 그 면적을 주방 다용도실로 바꿔 집의 효율을 끌어올렸다. 수평으로 확장하고 이동해 대수선 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이 때문에 더욱 넓어진 마당은 또 다른 거실의 연장선이자 시간성을 기억하는 공간이 됐다.

주방과 연결된 거실은 다양한 목적을 지닌 공간이 된다. 거실에 한옥 대청마루 개념을 적용했다. 이 공간은 현관 역할을 하면서 때로는 식사나 가족실 공간으로 사용되고, 벽이 만들어지면 잠자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제기동 집 건축 개요]

대지 위치 :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대지 면적 : 131.6㎡­
건축 면적 : 57.14㎡
다락 면적 : 7.3㎡
건폐율 : 43.42% (법정 60%)
용적률 : 43.42% (법정 200%)
공사 기간 : 91일 (2016년 11월~2017년 2월)
구조 : 경량 철골구조
외부 마감 : 디자인 블록
내부 마감 : 석고보드 위 도배・도장
지붕 마감재 : 컬러강판
외벽・지붕 단열재 : 나등급 단열재
내벽・천장 단열재 : 나등급 단열재
창호재 : PVC 이중 창호 마감, 고내후성 데코시트
바닥재 : 강마루

양진석 건축가(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대표는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안양대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와이그룹 대표이며 건축교육프로그램 NA21과 파이포럼 주임교수로 있다. 그의 저서 ‘집 짓다 담다 살다’(컬쳐그라피)는 방송을 통해 지은 6채의 집을 그 계획부터 설계, 완성에 얽힌 이야기와 방송에서 만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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