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백악관도 애용하는 지중해 무명 장인의 의자

뉴스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
입력 2017.12.01 06:31 수정 2017.12.01 08:01

인류 역사와 함께한 나무는 가구 재료로 나날이 주목받고 있다. 특유의 친근함과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목가구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다음 세대에 대물림할 만큼 정이 든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와 함께 목가구가 우리 삶의 안식처로 자리잡기까지 거쳐온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본다.

[정은미의 木가구 에피소드] ⑧ 가구史에 정점을 찍은 초경량 ‘키아바리’

'캄파니노(Campanino)'의자와 지오 폰티(Gio Ponti)의 '수페르레제라Superleggera'의자. /F.lli Levaggi/www.levaggisedie.it, 밀라노 디자인 빌리지/Care of Cassina's Historical Archive.


어린아이가 손가락 하나로 의자를 들어올리는 광고로 유명해진 의자가 있다. 1955년 탄생한 ‘수페르레제라(Superleggera)’는 19세기 초 만들어진 가벼운 이탈리아식 의자인 키아바리(Chiavari)를 재해석한 것이다. 간결한 비례와 기능성으로 현대 가구의 원형이 된 키아바리 의자는 솔직함과 단순함이 기능성과 조합돼 아름다운 가구로 구현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구 역사에 정점 찍은 ‘수페르레제라’

'키아바리' 의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탈리아의 거장 지오 폰티와 카시나가 개발한 '수페르레제라'. /ⓒ밀라노 디자인 빌리지(Milano design Village)


‘키아바리’의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탈리아의 거장 지오 폰티(Gio Ponti)와 카시나(Cassina)가 수 년간 실험 끝에 만들어 낸 ‘수페르레제라’. 이탈리아어로 ‘초경량’이라는 뜻이다. 이 의자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견고함을 이끌어낸 기술적 성과로 꼽힌다. 1956년 전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이탈리아 ‘콤파소 도로(Compasso d’Oro)’상을 수상하며 가구 역사에서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 현재까지도 카시나에서 생산하고 있다.

■지중해의 낙천성이 낳은 가벼운 아름다움

키아바리 의자는 19세기 초반 이탈리아 지중해 해안지역 리구리아(Liguria)주의 키아바리와 인근 지역에서 장인들이 만들던 무명의 작품이었다. 이 의자는 1807년 가구장인인 쥬세페 데스칼찌(Giuseppe Descalzi)의 천재성과 집념에서 비롯됐다.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귀족이 파리에서 키아바리로 가져온 루이 16세 양식 의자의 리프로덕션(Reproduction)을 요청받았다. 버드나무끈을 엮어 만든 좌판에서 가벼운 의자를 창조하기 위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모델이 된 의자는 화려하고 부피가 컸다. 데스칼찌는 구조를 가볍게 하고 장식을 단순화해 탄력있고 견고한 경량의자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구조와 부피를 최소화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키아바리 의자의 출발점이 된 버드나무를 끈으로 엮어 만든 가벼운 좌판. /ⓒF.lli Levaggi, www.levaggisedie.it


1kg 이상 나가지 않는 의자도 있을 만큼 가볍다. 재료는 벚나무, 호두나무,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등 모두 리구리아 아펜니노(Apennino)산맥에서 벌목해 잘 건조된 나무들만 사용했다. 쥬세페 데스칼찌가 끈질기게 매달린 것 중 하나는 등과 어깨에 적합한 뒷면의 곡선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나무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견고하면서 가볍고 우아한 의자를 탄생시켰다.

'캄파니노(Campanino)'의자. 디자이너들과 실내장식가들 사이에서 진가를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키아바리의자'의 상징적인 모델이다. /ⓒF.lli Levaggi, www.levaggisedie.it


■견고함까지 갖춘 ‘키아바리나(Chiavarina)’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첫 번째 의자는 작고 귀여운 것을 애칭으로 부르는 이탈리아어 ‘이나(ina)’를 붙여 ‘키아바리나(Chiavarina)’라고 불렸다. 후에 ‘캄파니나(Campanina)’, ‘레제라(Leggera)’라는 다양한 이름을 얻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의자가 됐다. 쥬세페 역시 의자의 명칭을 따라 ‘캄파니노(Campanino)’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키아바리나는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조각의 거장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에게 “최고의 가벼움과 최상의 견고함을 융합시켰다”는 찬사도 받았다. 쥬세페는 이 의자를 테마별로 다양한 컬렉션으로 발전시켰다.

파리쥐나(Parigina) 의자. 중요한 회의장이나 전 세계 외교사무실에서 주로 선호하는 클래식한 모델. / ⓒF.lli Levaggi, www.levaggisedie.it


의자의 성공과 더불어 키아바리(Chiavari)와 주변 마을에 많은 공장이 생겼다. 데스칼찌 사망 무렵인 18세기 중반에는 대략 600명의 인력이 한 해에 2만5000개 가량 생산했을 만큼 키아바리나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독보적인 가구로 이름을 알렸다. 전 세계로 수출된 키아바리 의자의 성공은 인근 지역에 제조업체가 연이어 탄생하게 되는 혁신을 이뤄냈다. 특히 알프스 근처 비엘라(Biella)시의 코실라(Cossila) 지역은 오리지널 키아바리 의자와 동등한 품질의 의자를 생산해 유럽 각지로 수출하는 기지로 명성을 얻게 됐다.

20세기 후반 간단한 요소로 구성돼 쉽게 조립할 수 있는 미카엘 토네트(Michael Thonet)의 벤트우드 의자 등과 생산 경쟁에 밀려 점차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에 디자이너들과 예술가들의 관심을 받고 화려하게 부활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나무에 컬러 코팅을 하거나 소재를 바꾼 다양한 모델들이 생산됐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특유의 가벼움과 우아함으로 인해 웨딩홀, 강당 등을 비롯한 대형 상업공간뿐만 아니라 미국 백악관 등 중요한 회의 장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키아바리의 간결하고 우아한 형태는 어떤 스타일의 실내에도 잘 어울린다. /ⓒF.lli Levaggi, www.levaggisedie.it


정은미 상명대학교 겸임교수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는 상명대에서 목공예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도무스아카데미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목조형 작품인 얼레빗 벤치 ‘여인의 향기’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수록됐다. ‘정은미의 목조형 가구여행기’와 ‘나무로 쓰는 가구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리빙오브제(LIVING OBJET)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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