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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에 극장이 뚝딱…플라스틱 건축의 마술

뉴스 이지은 인턴기자
입력 2017.11.28 06:55

[국형걸의 건축 레시피] 플라스틱 파렛트를 활용한 이색 공간 만들기

건축은 기본적으로 여러 개의 작은 부분을 조합해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순수한 어린 아이가 자유롭게 쌓고 만들어가는 레고 블록같이, 작은 요소들을 반복적으로 서로 끼워 맞추고 쌓다보면 어느새 형태가 되고 공간이 된다.

현대 도시에는 무대, 극장, 전시, 휴식, 집회 등 수 많은 이벤트 공간이 있다. 이런 공간은 곧 철거되고 다시 만들어져야 하기에 소모적이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된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쉽게 설치하고 해체할 수 있도록 재활용 자재를 활용해 임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레고 블록처럼, 같은 모듈이라도 장소와 목적에 맞춰 항상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 파렛트 제작 도면. /HG-Architectural 제공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건축 작업물을 소개한다. 모두 재활용 자재인 ‘플라스틱 파렛트’ 모듈을 활용한 작품들이다.

플라스틱 파렛트는 단위면적당 단가가 3만원 이내로 굉장히 저렴하면서도 가볍고 튼튼하다. 단기 임대할 경우엔 고작 5000원 정도 든다. 산업용으로 대량 생산해 지게차가 옮기고 쌓기 좋도록 규격화된 자재다. 2~3일이면 7~8명의 단순 인력으로 파렛트 1000개짜리 작품을 뚝딱 만들어낼 만큼 효율성이 좋다. 표면 패턴과 색상은 각양각색이어서 일종의 벽돌같은 기성품이다.

■전시1:바이래터럴 시어터 I (Bilateral Theatre I)

서울시립미술관의 종합극장(Interlaced Dialogue) 전시에 쓰인 플라스틱 파렛트. /HG-Architectural 제공 (사진 : 신경섭)


2014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종합극장(Interlaced Dialogue)이라는 전시다. 건축가들이 참여해 각자의 재활용 자재로 극장 공간을 조성했다. 전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파렛트가 전시공간을 만드는 모듈로 활용된 전시다. 1000개의 파렛트는 벽돌쌓기처럼 수평적으로 쌓이며 양쪽으로 벌려진 극장 공간을 만들어냈고, 중앙에 양면 스크린을 두고 파렛트로 만들어진 양쪽 언덕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고 기대어 영화를 보는 새로운 극장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전시2: 바이래터럴 시어터 II (Bilateral Theatre II)

대구미술관의 애니마닉 비엔날레(Animanic Biennale) 전시. /HG-Architectural 제공 (사진 : 신경섭)


2015년 대구미술관에서 애니마닉 비엔날레(Animanic Biennale)라는 애니메이션 전시 행사가 있었다. 이곳에 서울시립미술관 종합극장 전시와 같은 종류의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동선과 공간을 구분해가면서 1000개의 파렛트를 쌓아 새 극장을 만들었다. 빛과 시야를 투과하는 스크린 벽으로서 파렛트의 가능성을 활용해보기 위해 수직적 쌓기 기법을 새롭게 시도해 공간을 구분했다.

■전시3: 텍토닉 랜드스케이프(Tectonic Landscape)

대구미술관 중앙에 플라스틱 파렛트로 휴식과 놀이를 위한 공간을 조성한 모습. /HG-Architectural 제공 (사진 : 신경섭)


2015년 대구미술관의 중앙 공간을 휴식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파렛트로 방문객들의 휴식과 놀이를 위한 다양한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의 기획전시가 한국의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네오산수(Neo-Sansoo)전이었기 때문에, 한국적 산수가 표현된 수묵화처럼 연속된 언덕을 만들었다. 여기에 스크린 벽을 크게 세워 시각에 따라 다채로운 자연광이 떨어지도록 해 공간에 다양성을 줬다. 플라스틱으로만 만들어진 이 공간은 전시 기간 중 아이들 놀이터이자 어른들 쉼터로 사랑받았다.

■전시4: 노적 아렘(Nojeok Ahrem)

경기 안산 단원미술관 앞마당에 플라스틱 파렛트로 이벤트 공간을 만들었다. /HG-Architectural 제공 (사진 : 신경섭)


2016년 경기 안산 단원미술관으로부터 텅빈 미술관 앞마당에 파렛트로 이벤트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으로 야외에 설치하는 파렛트 공간이었다. 여기에는 998개의 파렛트를 쌓아 미술관 외부와 동선을 구분하면서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휴식과 놀이, 이벤트가 가능한 다목적 공간이다. 한쪽에는 자연스럽게 변형된 언덕 공간을, 다른 한쪽에는 병풍처럼 늘어선 스크린이 만들어주는 그늘 공간을 조성했다.

■전시5: 콤팩트시티(Compact City)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에는 엮어쌓기 방식으로 7m가 넘는 거대한 3차원 미로를 만들었다. /HG-Architectural 제공 (사진 : 신경섭)


2016년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내부 로비에 파렛트로 공간을 조성했다. 웅장하고 거대한 공간에 맞춰 새로운 쌓기 방법을 더 연구한 결과, 엮어쌓기 방식으로 7m이상 되는 거대한 3차원 미로를 만들었다. 다른 보조구조체 없이 파렛트 자체만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내부에는 폭포를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가 숨겨져 있어 공간 자체가 경험적 전시가 되는 효과를 얻었다.

■전시6: 서울건축문화제

서울시 건축문화제 전시 공간. /HG-Architectural 제공 (사진 : 신경섭)


최근 을지로지하보도를 서울시 건축문화제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파렛트를 활용했다. 서울시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으로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건축가들과 동주민센터를 개선해왔다. 2016년 한 해 동안 개선 완료된 동주민센터 203개의 사진들을 총 3km에 이르는 을지로지하보도에 한 달간 전시했다. 임시로 설치하는 전시 공간이자 일상적 공간임을 감안해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면서도 친환경적인 모듈인 재활용 파렛트를 활용해 성공적인 전시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플라스틱 파렛트는 극장, 무대, 전시, 휴식, 놀이 등 실내외 가릴 것 없이 이벤트식 공간 조성에 유용한 자재다. 파렛트 1개가 무게 1t을 견딜 수 있어 안정성까지 갖췄다. 더 나아가 반영구적인 인테리어 소품이나 파티션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지금은 실험적으로만 쓰고 있지만 플라스틱 파렛트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현재 전선용 케이블 타이로 파렛트를 고정하고 있는데 더 효과적이고 디자인이 좋은 고정 조인트가 개발된다면 플라스틱 파렛트의 활용 폭이 한층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국형걸 이화여대 교수

국형걸은 미국건축사(AIA)로 이화여대 건축학전공 교수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사를, 미국 컬럼비아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뉴욕 와이스/맨프레디 아키텍츠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2년부터 HG-Architecture 건축디자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016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본상을 수상했고 2017년 젊은건축가상을 받았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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