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낡은 1루수 글러브를 닮은 20세기 걸작 의자

뉴스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
입력 2017.11.24 06:31

인류 역사와 함께한 나무는 가구 재료로 나날이 주목받고 있다. 특유의 친근함과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목가구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다음 세대에 대물림할 만큼 정이 든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와 함께 목가구가 우리 삶의 안식처로 자리잡기까지 거쳐온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 본다.

[정은미의 木가구 에피소드] ⑦ 강하고 탄력있는 가구를 제작한 임즈 부부

'NO.670' 임즈 라운지 의자(Eames Lounge Chair)와 오토만(Ottoman). /ⓒHerman Miller/www.hermanmiller.com/asia


세계대전 중 유럽과 미국의 항공 분야에서 이뤄진 기술의 진보는 가구에선 ‘복합곡선’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며 우리 삶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 그 중 비행기 프로펠러의 연구 과정에서 나온 접착력이 우수한 인공수지의 개발은 여러 겹의 단판을 붙이고 압축해 만드는 플라이우드(Plywood)의 제작에 매우 유용했다.

그것을 주형틀에 넣어 찍어냄으로써 우드 프레임으로도 강하고 탄력 있는 3차원 곡면 가구 제작이 가능했다. 그 중심에는 미국의 찰스 임즈와 레이 임즈(Charles & Ray Eames)부부가 있었다.

'NO.670' 임즈 라운지 의자(Eames Lounge Chair)와 오토만(Ottoman). /ⓒHerman Miller / www.hermanmiller.com/asia


■부목(Splint) 생산 노하우가 만들어낸 견고하고 자연스런 가구

모터싸이클에서 포즈를 취한 임즈 부부. 유쾌하고 재치넘치는 모습의 홍보 사진을 많이 남겼다. /ⓒ Eames Office LLC / www.design-museum.de


핀란드에 알바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찰스 임즈와 레이 임즈 부부가 그들이 만든 곡선형 가구의 영향을 받아 또 다른 성과를 이뤄냈다.

자신이 디자인한 라운지 의자 'NO.670'과 오토만에서 포즈를 취한 찰스 임즈. /ⓒEames Office LLC / www.design-museum.de


임즈 부부는 미국의 크랜브룩 아카데미(Cranbrook Academy)에서 동료로 만났다. 건축가인 찰스와 예술가인 레이의 결혼으로 세계 최강 디자인팀이 탄생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중 항공기 합판 주형분야 기술 연구에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전쟁 기간 동안 부상한 해군을 위해 들것을 비롯한 15만 개가 넘는 다리부목(Leg Splint)도 생산하고 납품했다. 부상한 인체를 지지해주는 안정된 뼈대 역할을 하는 부목은 견고하면서도 이동이 쉽도록 가벼워야 했다. 이들은 합판을 소재로 인체의 자연스러운 모양을 따라 3차원 곡면 형태로 개발했다.

임즈 부부는 해군에 납품한 다리부목(Leg Splint) 생산을 통해 합판의 복합곡선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를 터득했다. /ⓒwww.1stdibs.com


■좌판 등받이가 따로 성형된 ‘LCW’ 라운지 의자

전쟁 후에는 부목을 제작하면서 축척한 노하우를 저렴하고 단순한 형태의 합판 의자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로 활용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했다. 이들은 합판을 눌러 찍는 기계도 발명했는데 그것은 전후·좌우 이중으로 휠 수 있는 복합적인 기복을 만들어냈다. 이들을 토대로 에반스 프로덕트(Evans Products Co.), 허먼밀러(Herman Miller)사와 협업해 현대 가구 역사에 획을 긋는 가구들을 잇달아 생산해낸다.

임즈 부부가 1941~1945년에 실험한 성형합판 쉘(Shell). /ⓒVitra Design Museum, Photo Thomas Dix


그 중 하나가 1946년 좌판 등받이가 각각 따로 성형된 ‘엘씨더블유(LCW)’ 라운지 의자다. 그들은 실험 과정에서 좌판과 등받이를 한판으로 찍어내는 경우 합판이 찢어지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두 부분을 따로 성형하고 여기에 구부린 합판으로 연결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때 각 연결 부위에 미국 크라이슬러사에서 개발한 고무 완충 마운트를 삽입해 보강함으로써 견고함을 살리고 인체의 충격에 탄력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임즈부부가 1946년 제작한 '엘씨더블유(LCW)' 라운지 의자. 전후 세대를 위해 아름답고 저렴하면서 실용적인 합판가구를 만들겠다는 노력의 결정체이다. /ⓒHerman Miller /www.hermanmiller.com/asia


임즈 부부의 라운지 의자와 오토만. 허먼밀러사에서 현재까지도 대량 생산해 현대 디자인의 영원한 아이콘이 됐다. 엘씨더블유 라운지 의자처럼 각 부분의 연결부위를 고무완충마운트로 고정했다. /ⓒHerman Miller /www.hermanmiller.com/asia


■영원한 현대 디자인의 아이콘 ‘NO.670’

오랜 연구 끝에 1956년 완성한 ‘NO.670’ 라운지 의자와 오토만(Ottoman·발걸이로 쓰이는 등받이 없는 쿠션 의자)은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콘셉트가 재밌다. 오래 사용한 1루수 야구 글러브의 친숙한 느낌을 담은 19세기 영국식 사교 클럽 의자의 현대화였다. 두 요소를 감각적으로 결합해 안락하고 품위 있는 라운지 의자로 만들었다. 성형한 합판과 금속, 가죽이라는 이질적인 재료의 결합도 독특하다.

장미목으로 성형한 세 개의 쉘(Shell) 위에 가죽 커버가 씌워진 쿠션이 얹혀 있다. 의자의 회전축은 다섯 갈래의 주조 알루미늄 받침대로 지지되고 등받이와 머리 받침대는 두 개의 연결쇠가 고무 완충 마운트로 고정돼 있다. 라운지 의자와 발받침대가 세트로 구성됐다.

1956년 소개된 이후 시중에 많은 모조품을 낳은 이 의자는 우아하고 쾌적하게 쉬고 싶은 남성들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합판 제작기술과 성형기술의 발전은 2차 세계대전 직후 가구 대중화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또 유럽 여러 나라의 곡선형 가구 제작에 기여함으로써 가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조각 수준에 버금가는 3차원 곡면 가구들이 연이어 탄생했다.

집과 스튜디오로 꾸며졌던 임즈하우스의 리빙룸. /ⓒHerman Miller /www.hermanmiller.com/asia

정은미 상명대학교 겸임교수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는 상명대에서 목공예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도무스아카데미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목조형 작품인 얼레빗 벤치 ‘여인의 향기’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수록됐다. ‘정은미의 목조형 가구여행기’와 ‘나무로 쓰는 가구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리빙오브제(LIVING OBJET)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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