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누구 맘대로 싸게 팔아", 또 시작된 집값 담합

뉴스 고성민 기자
입력 2017.11.10 06:50
서울시 영등포구 A아파트에 부착된 게시물. /고성민 기자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아파트 입주민들의 집값 담합 움직임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녀회 중심으로 아파트를 팔 때 일정 가격 이하로 내놓지 못하도록 주민들을 부추기고,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도 낮은 가격에 거래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 집값 급등기에는 가격을 부풀리기 위한 담합이 성행했다면, 최근엔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집값 하락 위기감이 높아지자 가격 하락을 최대한 막아보려는 담합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집값 낮춰서 팔지 마세요”

지난 10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A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명의로 “우리의 소중한 재산! 이럴 수가 있나요!”라는 글이 각동 입구 엘리베이터 주변에 나붙었다.

입주자대표회장은 이 글을 통해 ▲당산래미안 8억8000만원 ▲당산현대5차 7억원 등 A아파트보다 집값이 높은 주변 단지들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파트값은 5억7800만원에서 거의 변동이 없다”며 “아래의 표(당산래미안 등 집값 현황)를 보면 우리 아파트가 얼마나 저평가받고 있는지 속 터지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입주민대표회장은 이어 지난 10월 24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종합대책을 언급,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우리 아파트 가격은 5억7000만~5억8000만원에 고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나중에 피눈물 흘리지 않으시려면 소중한 재산 절대 함부로 하시면 안 된다”며 “우리의 재산, 제값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격 후려치는 부동산 사무실에 절대 매물 주지 맙시다”라고 했다. 매도 호가(呼價·부르는 값)를 낮추는 일부 부동산 중개업소 탓에 집값이 오르지 못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최근 일부 단지에서 부녀회 등을 중심으로 집값 담합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조선DB

그러나 A아파트 주변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값이란 게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호가를 낮추기 때문이라는 건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A아파트는 10여년 전에도 특정 부동산 중개업소를 지목해 호가를 과도하게 낮춘다면서 물건을 내놓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번에도 똑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린다고 집값이 오르겠느냐, 주민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입주민대표회의나 부녀회 중심으로 이뤄지는 집값 담합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2006년 서울·수도권에서만 58건의 집값 담합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되는 등 10여년 전부터 사회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응해 일부 집주인들이 집값 하락을 막아보려는 수단으로 담합의 유혹에 빠지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인 지난 9월에는 위례신도시 B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장 명의로 “우리 스스로 아파트 가치를 낮춰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건물마다 나붙어 문제가 됐다.

■“집값 담합 처벌하긴 힘들어”

그렇다면 집값 담합은 처벌이나 제재가 가능할까. 법조계와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 담합을 처벌할 법률적 근거가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실제 2002년과 2006년에도 정부는 집값 담합행위를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법인격이 없는 아파트 부녀회 등의 행위를 처벌할 근거가 없고, 담합에 따른 피해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무산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부녀회가 앞장서 아파트값을 올리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담합 행위의 주체를 사업체나 사업자 단체로만 규정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전문위원은 “인위적인 가격 떠받치기로는 수요와 공급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어차피 오래 가지는 못한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실수요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주택 거래 과정에서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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