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땅집고 취재팀이 찾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1980년 입주해 올해 37살 먹은 이 아파트는 재건축을 위해 주민 이주가 한창이다. 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3~4 개동에 한 대 꼴로 사다리 차가 이삿짐을 부지런히 실어내렸다.
단지 내 상가는 벌써 썰렁했다. 은행이나 병원은 이미 문을 닫았다. 그나마 부동산 중개업소 10여개만 남아 가게를 지켰다. D부동산 관계자는 “남은 세입자들은 애들 학교 문제 때문에 근처로 이사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저렴한 전셋집을 알아봐달라고 성화인데도 주변에 매물이 씨가 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강동구 고덕동 ‘고덕 래미안힐스테이트’ 아파트 앞. 올 3월부터 입주한 이 아파트 내 상가에는 역시 부동산 중개사무소 10여곳이 운영 중이다. 중개업소마다 붙여 놓은 시세표에는 전용 59㎡ 전세금이 6억원 전후, 전용 84㎡는 7억원 전후였다. 입주 당시보다 각각 1억원 넘게 올랐다. G 부동산 직원은 “얼마 전 입주가 끝나면서 전세 매물이 거의 없는데도 여전히 새 아파트를 찾는 전세 수요자가 많아 두 세달 만에 시세가 급격히 올랐다”고 했다.
최근 서울 강동구 전세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규모 재건축 이주가 시작된데다 인기좋은 새 아파트로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금이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들어 강동구는 전세금이 무려 10.07% 올라 서울에서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2위인 서대문구(4.45%)보다 배 이상 높다.
조선일보 땅집고는 서울 강동구의 전세금 상승 요인을 분석하고 이 같은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분석했다.
■재건축 역사상 최대 규모 이주
국내 재건축 역사상 최대 규모인 둔촌동 주공아파트는 현재 주민 이주율이 64%를 넘으면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내년 1월까지 6개월 만에 5930여가구가 한 번에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주변 주택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크다. 특히 재건축 이주의 경우 원래 살던 곳 근처에서 집을 구하려는 성향이 강해 주변 전·월세 시장이 출렁거리기 마련이다.
둔촌동 주공아파트는 전용 80㎡ 전세금이 2억5000만원 정도였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주가 시작되면서 비슷한 가격의 인근 빌라와 소형 아파트가 극심한 전세난을 겪고 있다. 주로 보증금 3억원 전후 빌라나 보증금 4억원 전후 소형 아파트가 가격 급등과 매물 품귀 현상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둔촌동이나 성내·명일동 일대 ‘나홀로’ 아파트 전세금 상승폭이 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강동구 둔촌동 둔촌하이츠 전용 59㎡는 이달 초 3억8000만원에, 명일동 삼익가든아파트 전용 66 ㎡는 3억8000만원에 각각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이는 올 3월보다 5000만원 정도 높은 금액이다.
그나마 강동구 아파트 전세금이 더 오르지 않은 것은 둔촌 주공아파트 이주 수요 중 상당부분을 주변 빌라에서 흡수한 덕분이다. 최근 몇 년간 성내동 일대에 신축 빌라와 다세대 주택이 대거 들어섰다. 이 집들의 전세금이 전용 35㎡ 기준 2억5000만원 정도여서 둔촌 주공아파트 기존 전세금과 비슷하다.
둔촌동 T부동산 대표는 “둔촌동에는 재건축 이주 수요를 예측하고 전세금보다 2000만~3000만원 정도 높은 가격에 빌라를 분양받아 세를 놓는 방식의 ‘갭(gap) 투자’도 성행했다”고 했다.
■새 아파트 인기…고액 전세도 가파른 상승
강동구의 전세금이 급등한 또 다른 이유는 올해 입주한 새 아파트 때문이다. 올해 강동구의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은 고덕동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3658가구)’를 포함해 5411가구에 달해 서울에서 가장 많다. 통상 새 아파트가 대규모로 입주하면 매물이 한꺼번에 나와 전세금이 일시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입주가 마무리되면 매물이 사라지고 새 아파트를 선호하는 전세 수요자들이 몰려 다시 전세금이 오르는 일종의 ‘요요현상’이 나타난다.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전용 84.9㎡는 올 3월에만 50여건이 전세나 보증부월세(반전세)로 계약됐다. 전세보증금은 최고 4억9000만원이었다. 하지만 입주가 마무리된 지난 9월엔 전·월세 계약이 단 2건에 그쳤고 전세보증금은 6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6개월새 1억6000만원 뛴 것이다.
대단지 새 아파트의 전세금 상승 효과는 주변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바로 옆 ‘배재현대’ 아파트 전용 59㎡는 지난달 4억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올 3월 최고가(3억6000만원) 보다 4000만원 올랐다. 2011년 입주한 ‘고덕 아이파크’ 역시 이달 초 전용 84㎡가 6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돼 6개월여만에 1억원 상승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강동구에는 2019년 9월 ‘고덕 그라시움(4932가구)’이 완공할때까지 입주 물량이 전혀 없다. 박합수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전문위원은 “강동구 일대 전세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했던 하남 미사강변도시와 위례신도시도 올해로 입주가 대부분 끝난다”면서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여파로 주택구입 수요가 전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전세난이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