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서 강남구만한 도시공원이 사라진다면…

뉴스 송원형 기자
입력 2017.11.05 22:24

[2020년 '공원 일몰제' 적용]

20년 이상 공원으로 묶인 사유지
정부나 지자체가 매입 안하면 공원 취소돼 땅 주인이 개발 가능

전국 1163곳 수원·안양 합한 면적… 서울만 매입 비용 11조7000억

"지난 50년간 남들은 제 땅에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공무원들은 땅 주인인 제게 말도 없이 제 땅에 물길을 내고 나무 계단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세금 꼬박꼬박 낸 저는 풀 한 포기 못 건드려요. 재산권이 보장되는 나라 맞습니까?"

박인숙(가명·70)씨의 아버지가 은평구의 야산 3300㎡를 산 것은 1963년. 박씨 가족은 이 땅에 집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지만, 곧 중단해야 했다. 정부가 '공원 부지'로 지정하면서 개발을 금지했기 때문. 이후 지금까지 박씨 땅은 사실상 '시민의 땅'이다. 주민들은 자유롭게 박씨 땅을 드나들며 체육시설과 약수터를 이용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박씨 가족은 상속세와 증여세를 냈고, 매년 재산세도 낸다. 박씨는 "사업 형편이 어려워져 요즘은 대출받아 세금을 낸다"고 말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서울시에 "박씨 땅에 대해 보상하라"고 권고했지만, 서울시는 "돈이 없어 못 주겠다"는 입장이다.

박씨 땅과 같은 전국의 '공원 부지'가 2020년 한꺼번에 부지 지정이 해제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땅을 시한 내 모두 사들일 형편이 아닐뿐더러, 사후 대책도 미흡한 상태다. 시민들이 평소 다니던 등산로나 산책길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철조망이 놓이는 등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매입비 24조원 마련 어려워

'D데이'는 2년9개월 뒤인 2020년 7월 1일이다. 박씨 땅처럼 20년 이상 공원 등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됐다가 정부나 지자체가 매입하지 않은 곳에 대한 공원 지정이 '무효화'하는 날이다. 헌법재판소가 1999년 "토지의 사적 이용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선 안 된다"고 결정하면서, "(법 제정 이후) 부지 지정 20년 이내에 보상이나 사업 시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정을 무효화한다"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2000년 이전에 지정된 공원 부지 내 사유지가 2020년 7월 공원 지정 해제 대상이다.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씨 사례 같이 2020년에 공원 지정이 해제되는 공원 내 사유지는 전국 1163개소, 186㎢로 수원시와 안양시 면적을 합한 규모다. 서울시 내 공원 사유지만 매입하는 데 11조7000억원, 전국은 24조4000억원이 예상된다. 서울시 올해 전체 예산이 29조원 정도다. 서울시의 경우 2002년부터 이런 땅을 사들이고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대상 지역의 12%만 사들였다.

D데이까지 지자체가 땅을 사지 않으면, 땅 주인은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지자체가 설치한 기존 공중 벤치나 운동기구 등을 철거하거나, 산책로 중간에 철조망을 설치할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상업시설 개발도 할 수 있다. 이미 서울시에 사용료를 요구하며 소송을 낸 공원 부지 주인 일부는 땅 경계선에 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수십년간 대도시 내 '허파' 역할을 해온 공간이 대거 사라질 수도 있다. 서울에서만 청계산·관악산 등 일몰제가 적용되는 공원 내 사유지가 71개소, 40.3㎢로 강남구 크기다. 청계산은 전체의 76%, 관악산은 44%가 사유지다. 부산 해운대·이기대공원, 대전 월평공원 등 지역 유명 공원도 마찬가지이다.

◇차일피일 미루면서 18년 허비

법 도입 이후 20년 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뭘 했을까. 전문가들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미루고, 지자체에선 공원 정책이 다른 정책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동안 시간만 흘렀다"고 했다. 박운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은 "법 적용 대상 대부분은 중앙 정부가 1970년대 지정한 것인데, 1994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에 업무가 넘어갔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정부가 재정, 사업 시행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더기로 공원으로 지정한 것도 문제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 사업자가 공원 부지 30%를 개발하고, 나머지는 녹지로 남겨두는 '민간공원 특례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경기도 의정부에서 실제 공사가 진행 중이며, 전국 80여곳에서 협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 대부분이 아파트를 제안해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지자체가 땅 주인과 일정 기간 임차 계약을 맺고 사용료를 내면서 예산을 확보하면 공원 부지를 매입하는 '임차공원제도'도 검토 중이다. 김세용 고려대 교수는 "예산 안에서 매입하고, 그럴 수 없는 곳은 땅 주인이 공익 목적에 맞으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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