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공릉동 삼익아파트는 지하철 7호선 공릉역에서 걸어서 12분 정도 걸린다. 845가구 규모 단지다. 1995년에 입주해 아직 재건축을 할 수 없고, 주변에 특별한 개발 호재도 없다.
이 아파트는 ‘8·2 부동산 대책’ 이후 거래가 뚝 끊기고 가격도 약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초 전용면적 51㎡가 2억1500만원에 1건 팔렸다. 올해 거래된 13건 중 가장 낮은 금액이다. 지난 6월에 거래된 최고가 2억5000만원과 비교하면 넉달만에 3500만원(14%)이 떨어진 것이다.
공릉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공릉동 삼익아파트는 돈있는 투기꾼들이 아니라 주로 실수요층이 내집 마련 차원에서 대출끼고 매입하던 곳”이라며 “대출 가능 금액을 줄여버리니 살 사람이 없어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8·2 부동산 대책’은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에 대한 투기 수요를 걷어내고 집값 과열을 막아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발표됐다. 두 달여가 지난 현재 일부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최고가보다 1억~2억원씩 집값이 떨어진 단지도 있다. 하지만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강북 등 이른바 비인기지역 대부분이 최대 10%씩 가격이 급락하면서 유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랐던 집값, 8·2대책 후 원위치”
공릉동 삼익아파트 전용 51㎡의 경우 2013년 2억원 전후에 거래되다가 올 초까지 5000만원 정도 가격이 올랐다. 이 기간 강남권에서는 비슷한 면적의 아파트 값이 3억~4억원씩 올랐던 데 비하면 속칭 ‘새발의 피’였다. 그런데 상승기에 가격이 덜 오른 단지일수록 침체기에 떨어지는 속도는 오히려 더 빨랐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동양엔파트 아파트 전용 84㎡는 8·2 대책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 7월 올 들어 최고가인 5억5000만원에 매매됐다. 이는 지난해 최고가인 5억1000만원보다 4000만원 오른 것.
8·2대책이 발표된 이후 상승세는 바로 꺾였다. 이 아파트는 8월 한 달간 거래가 아예 끊어졌다가, 지난달에는 2000만원 떨어진 5억3000만원에 한 건이 팔렸다. 또 한 달 후인 이달 초에는 최고가보다 3200만원 낮은 5억18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다. 1년간 올랐던 집값 상승액이 단 두 달만에 제자리로 돌아간 셈이다.
노원구 뿐 아니라 서울 외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대문구 홍은동 유원아파트 전용 64㎡는 올 최고 거래가격이 3억800만원이었는데, 지난달 이보다 2800만원(9%) 떨어진 2억8000만원에 팔렸다. 한 달에 2~3건씩 거래가 이뤄지던 다른 주택형은 9월 이후에는 아예 거래도 끊어졌다.
경기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양 비산동 평촌신도시 관악타운 아파트 전용 84㎡의 경우 지난 8월 3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 6월(3억9800만원)과 비교하면 2000만원 정도 내린 것. 거래도 크게 위축된 상태다. 지난 5~7월 3개월에만 총 28건이 거래됐는데, 8월 이후에는 딱 1건만 팔렸다. 고양 일산신도시 문촌마을 뉴삼익아파트 전용 84㎡(2층)는 지난 8월 4억3000만원에 실거래 신고됐다. 같은 2층이 지난 5월에는 4억4900만원에 팔렸다.
8·2대책 이후 가격이 떨어지는 아파트는 공통적으로 서울 외곽과 경기도 지역에 있고, 매매 가격이 저렴하고, 지하철역으로부터 멀거나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8·2대책 이후 올해 최고가보다 2000만원 내린 3억55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진 도봉구 도봉동 ‘도봉파크빌 3단지’(전용 84㎡), 2500만원 내린 은평구 갈현동 ‘갈현현대’(전용 59㎡) 등이 모두 이런 아파트들이다.
■“투기꾼 겨냥했는데 서민 부담 가중”
정부는 8·2대책을 발표하면서 ‘실수요자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주요 규제의 타깃도 서울 강남4개구를 비롯해 노원·강서·성동·마포·양천·영등포·용산구 등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으로 중복 지정된 집값 급등 지역이다. 하지만 정작 집값 하락 효과는 재건축 아파트가 많은 강남3구를 제외하면 외곽 지역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9월 한달간 아파트값 상승률은 마포(0.44%)·용산(0.41%)이 여전히 높았다. 반면 노원(-0.07%), 도봉(0.09%), 은평(0.18%) 등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은 지역에서 더 낮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두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각종 규제로 투기 수요가 억제되면서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지역의 집값부터 내리고 있고, 이 같은 하락세가 전반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값 상승기에는 투자 가치가 높은 지역부터 오르고, 하락기에는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지역부터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입지 좋은 곳의 신축 아파트와 입지가 떨어지는 곳의 구형 아파트로 극단적인 양극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이들이 주로 매입하던 저렴한 아파트 시세가 떨어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로 제한되면서 비싼 집을 사는 고소득·자산가보다 저소득·서민이 더 큰 피해를 보는 ‘역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노원구의 대상공인중개사무소 이윤상 대표는 “돈 많은 투자자들은 그냥 가격이 오를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며 “결국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서민들만 월세나 전세로 전전하면서 고통스러워질 뿐”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8·2대책 발표 이후 주택 시장은 강남·강북 등 지역에 따른 큰 차이 없이 집값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통계 수집 방식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저가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서민 실수요자 입장에서 주택 구입 부담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므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