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도시재생이 달랑 40가구 짓는 '동네 집장사'?

뉴스 진중언 기자
입력 2017.10.23 22:45

[대규모 개발로 도시 경쟁력 높인 일본서 배워야]

- '서울형 저층마을' 상도동 가보니
뉴타운 해제 대안이라더니… 수천 가구 밀집한 낙후지역
고작 10채 철거해 40가구 공급 "마을 가꾸기 수준의 전시행정"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244번지 일대.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비탈길이 70m 정도 이어진 골목에 단층집 10여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기와지붕을 슬레이트로 보수했거나 담장 곳곳이 갈라진 집도 있었다.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장마철이면 비가 새서 수백만원을 들여 지붕을 수리한 집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일대는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대규모 철거 방식의 재개발 대신 '서울형 저층 마을(자율주택정비사업)'을 조성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처음 선보이는 곳이다. 기존 주택 10여 채를 허물고 1351㎡(약 408평) 부지에 40가구를 새로 짓는다. 주민 김모(57)씨는 "몇 집 고쳐 새로 짓는다고 동네가 확 바뀌겠느냐. 차라리 재개발해서 새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SH공사가‘서울형 저층 마을’40가구를 조성할 예정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244번지 일대 모습. 소규모 임대주택 공급에 치중하는 소극적인 도시 재생이 아닌 일본 도쿄의‘도라노몬 힐스’처럼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대형 사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완중 기자

서울의 도시재생 사업이 '마을 가꾸기' 수준의 동네 정비와 소규모 임대주택 건설에 한정된 '반쪽 사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폭적인 규제 완화와 대규모 부동산 개발로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일본 도쿄의 도시재생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일본의 도시재생은 적지 않은 사업이 철거형 재개발 사업을 포함하는데, 우리나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수복(修復)형 마을 만들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비용은 많이 드는데 사회적 실효성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수복형 방식은 전면 철거를 지양하고, 대신 지역 내 노후·불량 요인만을 점진적으로 제거하는 소극적 도시개발을 뜻한다.

◇서울형 저층 마을 조성, 실효성 의문

SH공사는 상도동 노후 주거지 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5층 이하 저층주택 40가구를 짓기로 했다. 이 중 11가구는 기존 토지 소유자가 재입주하고, 나머지 29가구는 청년·신혼부부 등을 위한 공공임대 주택으로 공급한다. SH공사는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에 따라 저층 주거지 도시재생 모델을 개발했고, 기존 대규모 재개발 사업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SH공사 한 직원은 "도로도 제대로 없는 뉴타운 해제 지역에 수천 가구가 밀집해 있는데, 기존 단독주택 10가구 철거해 고작 40가구 짓는 게 '동네 집 장사'지 '도시재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초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출구 전략'을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서울 361곳에서 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됐다. 시는 전면 철거식 개발로는 도시 재정비에 한계가 있다며 소개발 위주의 도시재생 모델을 강화했다. 그러나 소규모 모델은 외부 관광객이나 유동인구의 편의를 위한 시설 개선에만 집중돼 노후 주택 정비는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SH공사가 상도동에 처음 선보인 자율주택정비사업은 내년에 4개 사업이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뉴타운 사업지서 해제된 수만 가구 노후 주택 중 내년에 잘해야 40~50가구 철거해 수백 가구 짓는 게 서울시 도시재생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처음 도입한 도시재생 사업인 '서울가꿈주택'도 수혜 대상이 너무 적어 전시행정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이 소유한 낡은 단독·다가구주택의 리모델링 비용을 최대 1000만원(내부공사는 300만원)까지 지원하는 것인데 사업대상이 1년에 40가구에 불과하다.

◇"랜드마크 개발로 도시 경쟁력 높여야"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도 소규모 주거환경 개선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국가나 도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외국의 대규모 도시재생 정책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2014년 6월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들어선 52층짜리 주상복합건물 '도라노몬 힐스'는 일본 정부가 성공적인 도시 재생모델로 내세우는 사례이다. 낡은 저층 목조주택이 밀집한 도라노몬은 도쿄 도심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이었다. 그러나 중앙 정부가 건물 밑에 도로를 뚫는 입체도로를 허용하는 등 규제를 완화해 도라노몬 힐스가 들어섰고, 이후엔 도쿄의 관광·쇼핑 거점으로 급부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역의 문화관광·경제·일자리 창출 등을 이끌어내는 대형 랜드마크 사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왕건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연구단장은 "유럽 구시가지처럼 노후한 주택이나 도시 인프라를 소규모로 보수하고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게 도시재생의 맞는 방향"이라며 "계획 수립이나 민간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데 국내에선 너무 급하게 도시재생의 성과를 내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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