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지하철 이촌역 2번 출구을 빠져나오자 용산미군기지 담장이 보였다. 담장을 따라 기지 서쪽 끝자락에는 고층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고 40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인 ‘용산파크타워’. 이 아파트를 시작으로 고층 빌딩이 줄줄이 나타났다.
‘용산 아스테리움(32층)’을 거쳐 현재 터파기 중인 ‘효성해링턴스퀘어(43층)’ 현장까지 600여m를 더 이동하자, 이번엔 한강로 서쪽으로 올해 5월 입주한 ‘래미안 용산(40층)’과 ‘용산푸르지오써밋(39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 건너편에는 28층 규모 LS용산타워와 22층 규모 아모레퍼시픽 본사 신사옥이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었다.
서울의 심장부인 용산구 한강로 일대는 앞으로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할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한강대교에서부터 삼각지까지 이어지는 한강로 일대에는 이미 지상 30~40층짜리 마천루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스카이라인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라고 불리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중단된 이후에도 이곳 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아직 식지 않고 있다.
■멈춰선 국제업무지구…코앞에 다가온 ‘용산공원’ 조성
용산 한강로에는 초대형 프로젝트 두가지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하나는 미군기지에 조성하는 용산민족공원, 다른 하나는 용산 국제업무지구다.
당초 용산철도정비창 등 51만㎡ 부지에 수십개의 초고층 빌딩을 짓기로 했던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사실상 중단됐다. 이로 인해 용산 부동산 시장은 한 동안 암흑기를 맞았다.
반면 용산민족공원 조성 사업은 미군기지 완전 이전(2018년)이 가까워지면서 첫삽을 뜰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 공원은 총 243만㎡ 규모로 최초의 국가 도시공원이다. 현재 공원 조성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이며 토양정화, 건축물 철거, 공원 조성까지 앞으로 약 10년이 걸릴 전망이다.
용산민족공원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341만㎡)’와 비교되기도 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대형 도심 공원이 휴식공간과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인근 부동산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한다. 센트럴파크의 경우, 고급 아파트가 주변에 들어서면서 뉴욕의 대표 부촌(富村)을 형성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스카이라인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용산 한강로 일대에는 개발 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심재개발 사업을 통해 기존 노후 주거지가 30~40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로 탈바꿈하면서 한강로 일대는 강남 도곡동 못지 않은 고급 주상복합 타운으로 떠올랐다.
2008년 입주한 ‘용산파크타워’(888가구)가 대표적. 전용 100㎡(약 40평) 기준으로 매매가격이 14억원 전후다. 바로 옆에는 1년 먼저 지어진 ‘용산 시티파크’(421가구)와 2012년 입주한 ‘용산 아스테리움(128가구)’도 3.3㎡(1평)당 시세가 3400만원대에 육박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입주한 ‘래미안 용산’과 ‘용산 푸르지오 써밋’ 역시 고급 주택 수요를 노리고 지어진 랜드마크급 고층 주상복합이다. 앞으로도 계속 주상복합이 들어선다. 지상 43층 규모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가 올해 착공했다.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는 지난 7월 1평당 3700만원이 넘는 비싼 분양가에도 성공적으로 분양됐다.
한강로 일대에는 주거단지뿐만 아니라 업무·상업·관광·교통 시설도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용산 LS용산타워 옆으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올 하반기 준공한다. 용산역에는 HDC신라면세점이 2015년 12월 개점했다. 강남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신분당선은 2022년쯤 용산역으로 연결된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B노선(송도~여의도~용산~마석)도 예비 타당성 조사가 예정돼 있다. 용산역 서쪽 옛 용산관광버스터미널에는 6성급 호텔 서울드래곤시티(SDC)가 최고 40층 3개동에 1700실의 국내 최대 규모로 개장을 앞두고 있다.
■‘마지막 퍼즐’만 남았다…‘서울 1번지’ 될까
투자 관점에서 용산의 미래 가치가 매우 높다는 점에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부분 일치한다. 서울 중심부 입지인데다 각종 대형 개발 계획이 줄줄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용산이 강남을 넘어 미래 서울의 부촌 1번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하지만 개발 계획들이 가시화하려면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또 용산민족공원과 함께 용산 개발의 양대 축이자 ‘마지막 퍼즐’인 국제업무지구는 현재 백지 상태에서 계획을 다시 잡는 단계다. 서울시가 지난 2월 용역을 발주해 국제업무지구를 포함해 용산 지구단위계획구역(약 349만㎡)의 개발 방향을 연말까지 정하기로 했다.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재개되면 용산의 몸값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미 강남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부동산 가격이다. 한강로 옆 이촌동 일대 아파트 가격은 평당 3400만원 정도, 한남동의 고급 주택은 평당 4000만원이 넘는다. 용산역 인근 상가도 1평당 6000만원(1층 기준)으로 강남권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용산민족공원 주변으로 아직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재개발 지분 역시 평당 5000만원대, 재개발 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는 지역은 평당 7000만원 내외에 달한다.
현지 공인중개사들은 용산의 ‘미래 가치’를 볼때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용산일등 공인중개소’ 윤광정 중개사는 “가장 최근 분양한 ‘용산 해링턴 스퀘어’가 평당 3700만원 넘는 금액에도 금세 완판됐고 향후 용산이 강남을 넘는 서울 중심지가 될 것으로 본다면 아직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무산됐듯이 장래 개발 계획만 보고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이미 개발 호재가 어느 정도 가격에 반영된 만큼 앞으로는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개발 사업이 대부분 초기 단계여서 무리한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