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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망한다" 후분양제 도입에 벌벌 떠는 건설업계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17.10.16 06:31

정부가 아파트 시장에 ‘후(後)분양제’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민간 건설회사와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장관은 “공공부문의 주택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민간에서도 후분양제를 유도하는 내용의 ‘후분양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선(先)분양 제도는 통상 땅만 구입한 상태에서 아파트를 짓기 전에 건축 계획과 모델하우스만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미리 분양하는 방식이다. 현재 주택시장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건설사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선분양 제도는 건설사의 금융비융이 줄어 주택건설 자금을 확보하기 수월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주택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70~80년대에 정부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려고 허용한 제도다.

반면, 후분양 제도는 아파트를 지어놓고 분양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 나라에서는 후분양 제도가 일반적이다. 국토부는 아파트를 완공한 뒤 분양하는 방식보다 공정이 80% 수준에 도달한 이후 입주자를 모집하는 후분양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시에 후분양제를 도입하기 보다는 일단 로드맵을 만들어 공공부문부터 먼저 도입하고, 민간 주택은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도입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골조가 한창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


■“소비자는 환영…건설사는 타격”

소비자 입장에선 후분양제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소비자는 아파트가 거의 지어진 상태에서 분양받을 수 있어 건물 외관과 실내 구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살 수 있다. 부실 시공도 어느정도 예방하고 견본주택이 아닌 실제 아파트의 형태와 입지, 구조, 방향도 확인할 수 있다.

회사원 이모(43)씨는 “전 재산을 털어 집을 사는데 실물도 못보고, 준공 시점에 주택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집을 사는 것은 누가봐도 비정상”이라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후분양제를 도입할 시점이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주택시장 측면에선 청약 과열이나 분양권 투기 차단 효과도 기대된다.

후분양 제도가 도입되면 건설사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자금조달 측면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지을 때 계약금과 중도금을 미리 받아 건설 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스스로 건설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일반 시행사는 물론 재건축·재개발 조합도 공사비를 모두 자체 조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분양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건설자금 조달 과정에서 생기는 금융 비용을 분양가에 포함시킬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후분양 도입에 따른 ‘리스크’ 비용도 어떤 식으로든 분양가에 포함돼 가격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선분양 제도에서는 소비자들이 부담했던 금융 및 리스크 비용이 모두 분양가에 포함되는 것이다.

사업성이 악화되면서 주택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건설사나 시행사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럴 경우 주택 공급 물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풍부한 대형 건설사는 몰라도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사들은 주택 사업이 힘들어져 시장에서 퇴출되고 주택공급 부족 현상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장관이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후분양제 도입되면 소비자는 손해볼 것 없어”

적지 않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후분양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은 “1970~80년대처럼 주택이 절대 부족한 상황도 아닌데 당시에 건설사 편의를 봐주기 위해 도입한 선분양제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며 “분양가격이 다소 올라갈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원래 선분양받은 소비자가 부담하던 이자와 리스크가 분양가격에 반영되는 것이어서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손해볼 것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후분양제 도입 필수 조건으로 이에 맞는 금융 상품 개발과 제도 정비를 꼽는다. 선분양제에서 소비자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 형태로 집값을 2~3년간 나눠냈다. 하지만 후분양 제에선 계약부터 입주까지 최대 1년 이내에 수억원의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금융권에서 80% 정도 지어진 아파트를 담보로 한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만든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공급자인 건설사와 시행사, 조합 등이 건설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것이다. 후분양제가 의무화되면 건설사가 선분양제와 비교해 추가로 조달해야 하는 주택건설자금이 연 평균 4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결국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동산 펀드 등 아파트 건설 자금 조달원을 다변화하고 다양한 건설 보증상품과 대출 상품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후분양제가 일부 단점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도입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선 안된다고 말할 이유와 명분은 없다”며 “이미 각국 사례가 있는 만큼 이를 참조해 제도를 만들고, 점진적으로 도입하면 부작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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