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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더라도 공정하게 경쟁하겠다"는 GS건설의 '미련한 도전', 수주 문화 바꿀까?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7.10.13 16:18 수정 2017.10.13 16:24

한국에서 건설은 일반인들에게 부정과 비리 연관성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건설’ 하면 ‘비자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주를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사업을 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결판나기 때문에 선을 넘는 경쟁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 지역의 대형 재건축 사업이 잇따르는 와중에 이런 후진적인 건설 수주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업체가 있다. GS건설이다. GS건설은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이라 반포주공 1단지 수주 전이 한창이던 9월27일 주요 일간지에 “수주 전에서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뇌물 수수·과잉 홍보 등 불공정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광고를 게재했다. 한 마디로 “돈을 뿌리는 후진적인 수주전을 펼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깨끗한 건설 수주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선의(善意)’는 2조5000억원 수주전에서의 고배로 결론이 났다.

곧이어 서울 송파구 잠실동 미성·크로바 재건축 시공사 선정 수주전도 있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돈 뿌리지 않는 수주전”을 고집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껏 해왔던 사소한 식사제공이나 선물제공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다 보니 GS건설에 공사를 맡기기를 원하는 조합원들이 “GS건설은 공사를 딸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라며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상대방 건설사는 GS건설의 설명회 시간에 맞춰 인근에서 유명 가수 콘서트를 주최하면서 조합원들을 빼가기까지 했는데,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결과는? 역시 고배였다. 지난 11일 진행된 조합원 총회에서 진행된 투표 결과는 202표 대 118표로 GS건설의 압도적 승리였으나, 부재자 투표에서 618표 대 404표로 패한 결과가 합산되자 결과가 뒤집혔다. 통상 부재자 투표는 건설사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조합원들의 표를 매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부재자 투표 비율이 높으면 ‘클린 수주전’을 공표한 GS건설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주말인 15일 서울 서초구 신반포 한신4지구 재건축 시공사 선정이 있을 예정이다.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GS건설은 여기에서도 또 “돈 뿌리지 않겠다”며 현장 영업직원들에게 예전보다 훨씬 적은 영업 예산을 배정했다.

결과로 승부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선의’가 올바른 길일 수 있을까.

“단순히 선의만이 아닙니다. 수주할 때 뿌리는 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파트 품질이 나빠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수주할 때 돈 뿌리는 매표가 아니라 더 좋은 아파트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겁니다. 소비자들도 결국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미성·크로바 아파트 상가에 시공사 선정 경쟁에 참여한 GS건설과 롯데건설의 현수막이 붙어있다./심기환 땅집고 인턴기자


우직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는 몰라도 “수주 문화를 바꾸겠다”는 GS건설의 도전은 헛된 일만은 아니라는 조짐도 보인다. GS건설이 패한 2조5000억원 규모 반포 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투표의 부재자 투표율은 82%였다. 미성·크로바 시공사 선정 때는 72%. 그리고 이번 한신4시구 시공사 선정 투표를 이틀 앞둔 12일 현재 47.4%. 현지 부동산업소 관계자들은 “이 추세라면 부재자 투표 비율이 50%대에 머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GS건설과 롯데가 맞붙은 이번 수주전에선 양사 모두 과거보다 수주 영업 비용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린 수주 선언’이 오랜 업계 관행을 바꿔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가 달린다. 한 건설사가 아무리 깨끗한 경쟁을 하려고 해도 경쟁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단지 경쟁에서 패할 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신반포 한신4지구 조합 사무실에서 시공사 선정을 위한 부재자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심기환 땅집고 인턴기자


조합 공사의 경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투표로 시공사를 선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공 입찰 공사와 다르게 불법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조합원들이 어떤 건설사의 설계가 시공 능력이 우수한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고, 지자체나 정부도 불법 행위를 사실상 묵과해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관행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이 같은 불법을 저질러 온 건설사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GS건설 관계자는 “공사 품질이 아닌 당장의 금전적 이익 때문에 시공사 선정에 표를 던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조합원들 자신의 손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우리 역시 지금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대형 건설사로서 건설업 전체의 이미지나 사회 전체적인 질서를 위해 재건축 등 정비 사업의 입찰 문화가 하루빨리 선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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