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마당에 다른 회사 로고가 박힌 아파트를 매일 봐야 한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미성·크로바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을 위한 조합원 투표가 예정된 11일 오후. 막판 표밭다지기에 한창이던 롯데건설 임원은 “우리는 정말 절박한 심정”이라며 이같이 털어놨다.
송파구 신천동 미성아파트(1980년 준공)와 크로바맨션(1983년 준공)은 지난해 통합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공동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기존 11개동 1350가구가 지하 2층~지상 35층짜리 14개동에 총 1888가구 규모 대단지로 탈바꿈한다.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도 오는 15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재건축 시공사를 뽑는다. 한신4지구는 신반포8~11·17차에 녹원한신아파트와 베니하우스빌라 등 공동주택 7곳과 상가 2곳을 통합해 재건축한다. 기존 2898가구에서 3685가구가 새로 들어선다.
공교롭게도 두 사업 모두 롯데건설과 GS건설이 벼랑 끝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양사 최고 경영진이 사실상 현장에 상주할 만큼 총력전 양상이다. 물론 사업 규모가 간단치 않다. 미성·크로바는 5000억원대, 한신4지구는 1조원대에 달한다. 요즘 건설 일감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 비춰보면 군침이 돌만한 사업장이다.
하지만 이번 수주전이 양사 모두에게 절박한 숨은 이유가 있다. 자칫하면 두 회사가 큰 망신을 당하며 내상(內傷)을 크게 입을 수 있는 탓이다.
우선 롯데건설에겐 두 사업장의 위치가 부담이다. 송파구청사거리에 있는 미성크로바는 대각선 남쪽으로 롯데의 최근 새 심장부가 들어선 롯데월드타워와 마주보고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만약 수주에 실패하면 매일 아침 회장실에서 다른 회사 로고가 박힌 아파트를 내려다봐야 한다”면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한신4지구의 위치는 더 절묘하다. 한신4지구는 전쟁으로 치면 양사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다. 롯데건설 본사는 한신4지구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10분도 안되는 롯데복지센터 빌딩에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한신4지구에 경쟁사 깃발이 꽂힌다면 롯데건설 본사를 옮겨야 할 만큼 치욕이 될 수도 있다”면서 “국내외 최고의 전문가 그룹을 총동원해 랜드마크 단지로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고 했다.
한신4지구는 GS건설이 자이 브랜드를 사실상 세상에 알린 ‘반포 자이’와 마주보고 있는 위치다. 신축 아파트 규모 역시 반포자이 못지 않게 크다는 점에서 반드시 수주해 제2의 반포자이로 만들어야 할 곳으로 꼽힌다.
이뿐만이 아니다. GS건설의 속사정이 간단치 않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GS건설은 이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에서 현대건설에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그만큼 이번 수주전 승리로 명예회복과 실리(實利)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고 경영진이 매일 현장에 나와 전략을 짜내며 수주전을 진두지휘할 만큼 총력전을 펴고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반포주공1단지 수주전에서 ‘클린 경쟁’을 선언하면서 스스로 손발을 묶고 뛰고 있는 셈”이라며 “수주에 성공하지 못하면 클린 경쟁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했다.
한 정비사업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보면 GS건설은 브랜드면에서 유리하고, 롯데건설은 자금력면에서 낫지만 반포1단지에서 본 것처럼 결국 조합원에게 누가 더 이득을 줄 수 있느냐가 승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