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2개월이 지났지만 부동산 시세정보업체나 국가 공인 통계인 한국감정원 주택가격동향조사 등은 “아파트값이 여전히 오르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실거래 자료는 이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 강남 등 주요 재건축 아파트 중심으로 가격이 뚜렷한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많은 단지에서 매수 실종으로 인한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가격이 추가 급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 실거래가 1억 하락한 곳도…‘거래 절벽’ 심각
조선일보 땅집고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아파트 93㎡(이하 전용면적)가 지난달 중순 15억원(2층)에 매매됐다. 이는 8·2대책 여파가 본격화되기 전인 한달 전 최고가보다 1억원 이상 하락한 가격이다.
이 아파트 전용 93㎡는 올 들어 지난 5월에 15억원을 돌파했고, 8·2 대책 여파가 제대로 반영되기 전인 8월 하순에는 16억1000억원(6층)에 계약이 체결되기도 했다.
잠원동 신반포4차 아파트 105.89㎡(3층)는 지난달 중순 15억5000만원에 팔렸다. 이는 8·2 대책 발표 이후 처음 실거래 신고된 매물인데 지난 7월 실거래가 16억1000만원(9층)과 비교하면 6000만원 떨어졌다.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 50.38㎡는 지난 7월 14억5000만원(4층)에 매매가 이뤄졌지만, 9월에는 13억4000만원(5층)에 팔려 역시 1억원 이상 가격이 미끄러졌다.
영등포구 여의도 삼부아파트 역시 지난 8월에 92㎡가 9억1000만원에 실거래 신고됐다. 이전 고점이었던 지난 7월(10억6000만원)과 비교하면 1억5000만원이나 떨어진 것이다.
올 상반기까지 아파트값을 끌어올렸던 매수세가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에 따라 급격히 관망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가격이 급등했던 강남,여의도 등 재건축 아파트에서 ‘거래 절벽’ 현상은 더욱 뚜렷한 양상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84.49㎡는 지난 7월 17억9000만원에 거래돼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 하지만 8·2대책 이후로는 8월, 9월 두 달간 실거래 신고된 사례가 없다.
강남구 개포 주공 4단지는 올 7월 전체 단지를 통틀어 60건의 매매가 이뤄졌다. 하지만 8·2대책 이후 9월까지 단 한 건도 거래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개포주공4단지의 경우 8·2대책의 재건축 규제 중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규정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이 아파트는 사업시행인가일이 2015년 11월 30일이어서 사업시행인가 후 '3년 내' 착공하지 못할 경우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하도록 시행령 개정이 이뤄질 경우 내년 말까지도 거래가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강남구 청담동의 재건축 추진 단지인 삼익아파트 역시 지난 8월 중순 104㎡ 12층 물건이 18억4000만원으로 해당 면적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단지 전체를 통틀어 실거래 신고 사례가 한 건도 없다.
강북 지역도 아파트 실거래 가격이 중대형 중심으로 약세로 돌아서는 양상이다. 노원구 중계동의 경우 건영2차 84㎡(4층)가 지난달 3억8000만원에 거래돼 지난 7월보다 최대 6000만원 떨어졌다. 거래 건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중계무지개의 경우 지난 7월에만 39건이 실거래 신고됐지만 10월 10일 현재 8월 5건, 9월엔 0건에 그치고 있다.
다만,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호재가 있는 아파트는 여전히 강세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가 대표적. 지난 8월엔 전 주택형이 최대 1억원 이상 떨어졌지만 지난달에는 다시 7월 가격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76.5㎡는 지난 8월 14억원대까지 하락했지만 9월에는 최고 16억원(10층)에 거래됐다. 82.61㎡도 지난달 17억2000만원(11층)에 실거래 신고되며 이전 고점을 회복했다. 이 아파트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최고 50층 재건축 계획안 통과되면서 개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파트 시세, 呼價 기준 조사…“하락장 반영 늦어”
실거래가 조사에서 나타나는 이런 모습은 주기적으로 아파트 가격을 조사하는 민간 부동산 시세정보업체나 한국감정원의 발표와는 상반된 결과다. 이 같은 차이는 왜 나타나는 걸까.
우선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 조사를 보면, 8·2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9월 말 기준으로 약 두 달 동안 평균 0.37% 올랐다. 8·2 대책 발표 직전 두 달 간 매매가격이 3.67% 오른 것에 비하면 상승 폭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승세다.
한국감정원 조사에서도 지난달 서울의 주택(아파트,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 포함) 매매가격은 전달 대비 평균 0.07% 올랐다. 상승폭은 전달(0.45%)에 비해 줄었지만 8·2 대책 이후에도 집값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실거래 조사 결과가 이 같은 아파트값 조사보다 가격 하락 폭이 크고, 매매 절벽 현상도 두드러지는 이유는 아파트값 조사가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한 호가(呼價)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부동산114나 KB국민은행 등 민간조사업체들은 호가 기반으로 공인중개사가 불러주는 결과를 수집해 아파트 시세 통계를 작성한다. 한국감정원은 실거래 사례, 유사 거래 사례, 매수자·매도자 동향 등을 전문 조사자가 조사한 '거래 가능 가격'을 기준으로 통계를 낸다.
전문가들은 매도자들이 아직 가격을 낮추지 않고 버티고 있지만, 매수세가 급감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매도 호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아직 가격 하락이 명확히 나타나지 않은 아파트 단지들도 이 같은 ‘거래 절벽’이 지속되면 가격 하락은 시간 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금은 매수 문의가 급감하면서 소수의 매수자가 가격이 싼 매물을 골라 잡아 매매가 이뤄지는 ‘매수 우위’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인데, 매도자 입장에서 가격을 조사하는 아파트값 조사는 이런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