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1m당 25cm 기울기로 해발 3454m를 오르는 기적의 열차

뉴스 송병관 전 건설산업硏 연구원
입력 2017.10.08 06:31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조선일보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하늘과 맞닿은 알프스의 종착역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알프스를 오르는 융프라우 등산열차. /조선DB


융프라우(Jungfrau·해발 4158m)는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알레취 빙하가 시작되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춰 유럽의 정상이라고도 불리는 알프스 최고의 영봉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융프라우 정상에 근접한 해발 3454m까지 철도가 놓여 혹독한 정상의 자연 속으로 인간의 발길을 닿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라켄(Interlaken)을 떠나 스위스 최고의 경관이라 불리는 베르너 오버란트의 중심 아이거-묀히-융프라우 3봉(峯)을 향해 올라가면 라우터브루넨(Lauter Brunnen)이라는 조그만 계곡 속 마을을 만나게 된다. ‘커다란 물소리’라는 의미처럼 빙하 폭포 소리에 잠겨 있는 이 마을이 바로 그린델발트(Grindelwald)역과 함께 융프라우역으로 향하는 등산 열차의 출발역 중 하나다.

라우터브루넨을 떠나 융프라우를 향해 올라가면 그린델발트에서 출발한 노선과 만나는 클라이네샤이덱(Kleines Cheidegg)에 도착하게 된다. 융프라우 철도가 건설되기 이전까지 가장 높은 역이었던 클라이네샤이덱역은 묀히와 융프라우에서 흘러내린 빙하의 끝자락에 있다. 일반 열차는 여기서 정차하고 진정한 융프라우 등산 철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융프라우 등산열차 운행 노선도, /스위스관광청 제공


■엔지니어 아돌프 구에르 첼러의 꿈

1893년 8월 융프라우의 산자락에 파묻혀 하이킹을 즐기고 있던 스위스의 섬유 사업가, 정치가이자 엔지니어였던 아돌프 구에르 첼러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경관을 일반인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융프라우 등산 철도의 설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 말 아돌프의 노력으로 사업 허가가 떨어지고 공사가 시작된다.

융프라우 등산철도를 최초 계획한 아돌프 구에르 첼러. /스위스관광청 제공

일반 철도의 종착역인 클라이네샤이덱에서 아이거 바로 밑인 아이거글레처까지는 지상에 건설되고, 그 이후부터 아이거-묀히-융프라우 역에 이르는 구간은 바위산 속으로 터널을 뚫어 철도를 놓는 방식이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토목 공사였다. 눈사태로 폭약 사용도 어려웠고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자연 조건, 기술적 한계, 천문학적인 비용 등이 사업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아돌프의 열정과 이를 이해한 스위스 정부의 노력은 1912년 8월 1일 스위스 독립기념일에 융프라우 철도가 개통되는 기적을 일구었다.

계획 당시 7년 기한에 1000만 스위스 프랑이 들어갈 것으로 예정됐던 사업은 무려 16년에 걸쳐 1500만 스위스 프랑이 투입됐다. 현재 환율과 물가를 감안하면 약 8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니 당시로서는 가히 천문학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돌프는 사재(私財)까지 털어 넣으며 바랐던 꿈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사업 시작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융프라우 등산철도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 /스위스관광청 제공


■과감한 신기술 적용과 치밀한 설계

당시 기술력에 비추어볼 때 융프라우철도의 터널 공사는 지금 생각해도 놀랄 만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자연 조건 등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데는 치밀한 설계와 빈틈없는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m당 25cm의 일정한 구배, 터널 내부의 정차역인 아이거반트역과 아이스미어역의 배치 등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사업 계획과 설계자의 치밀한 구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25cm의 구배는 고도 상승에 따른 인간의 적응과 열차의 상승 속도를 동시에 고려한 최적의 배치였다. 내부의 정차역은 공사 중에는 굴착한 돌과 흙을 배출하는 통로였다. 지금은 등산 열차 여행 중 아이거 북벽(Eiger Wand)의 절경을 관람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초기 설계 당시 에펠탑 건설에도 참여했던 건축기사 에드워드 로처는 2개의 직선 관로를 건설하고 압축 공기를 이용해 피스톤처럼 열차를 운행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높은 경사면 때문이었다.

등산 철도는 톱니바퀴식(rack)과 강삭식(cable)으로 나뉜다. 톱니바퀴식은 주행 레일 사이에 톱니 모양의 레일을 깔고 열차의 톱니바퀴를 맞물리게 하는 방식으로 480퍼밀(permil·1000분의 1)이 경사 한계이며, 강삭식은 케이블을 이용하는 것으로 경사 한계는 가장 높지만 직선에 가까운 구간에만 유리하며 열차의 연결에 불리하다. 특히 많은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융프라우철도에 케이블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융프라우 등산철도를 놓기 위해 알프스 바위 산에 터널을 뚫고 있는 노동자들. /스위스관광청 제공


■자연 친화적 시설과 에너지 절감 기술

융프라우철도는 자연 친화적이고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자연 친화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에너지와 오물의 처리 방식이다. 융프라우철도와 시설의 에너지 체계는 놀라울 정도다. 주요 에너지원은 태양열과 주변의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통해 얻고 있다. 둘 다 높은 수준의 자연 친화적인 에너지시설이다.

이것만으론 놀라울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행 열차에는 발전기가 달려 있어 내려가는 동안 생기는 전력을 상행 열차에 공급해 준다. 하행 열차 3대가 생산하는 전력은 상행 열차 1대를 정상으로 올라가게 한다.

융프라우요흐 최상부의 스핑크스 전망대 바로 밑에는 아이스 팔라스트라는 빙하를 깎아 만든 통로와 구조물이 있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없는 사실을 하나 발견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얼음으로 된 벽이 녹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 전혀 춥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이율배반적 상황의 비밀은 바로 곳곳에 숨은 열교환기와 통제시스템이다. 열교환기는 관광객의 인체에서 내뿜는 열을 흡수해 야간에 사용할 에너지로 축적하고, 적절한 통제를 통해 빙하의 벽이 녹지 않도록 관리한다.

융프라우요흐 정상의 스핑크스 전망대. /스위스관광청 제공


■건설 속에 녹아든 자연 사랑

스위스는 산악 국가로서 철도와 도로 대부분이 산중을 지난다. 그런데 어디에서든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내려서 주변을 바라보면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된다. 분명 지나왔지만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간에 도로나 철도는 보이지 않고 온통 푸르기만 하다. 스위스의 철도나 도로는 시각적으로 잘 보이지 않게 설계돼 있다. 도로가 넓은 경우에는 도로 중간에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어디에서 보아도 스위스의 산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처럼 보이게 해놓았다.

산등성이를 벌겋게 긁고 지나가는 한국의 도로와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놀랍고 부럽기만하다. 금수강산에서 살기에 뿌듯함을 느끼도록 교육받은 우리의 현실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융프라우철도는 우리가 후세에 어떤 것을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하도록 만들수 있는 좋은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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