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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말리는 개표 중 "막걸리나 먹자"던 현대건설, 이유 있었다

뉴스 고성민 기자
입력 2017.09.28 10:41 수정 2017.09.28 13:46
지난 27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원 총회에서 시공사 선정 투표를 하기 위해 모인 조합원들. /김리영 인턴기자


지난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아파트 시공사 선정 총회장은 예상 밖으로 평온했다. 그간 ‘혈투’로 표현할 만큼 현대건설과 GS건설이 치열한 경쟁과 상호 비방전을 벌였지만, 긴장감조차 느끼기 어려웠다.

이날 총회장에 나온 양사 직원들 표정도 묘하게 엇갈렸다. 현대건설 직원들 얼굴엔 투표 시작 전부터 여유로운 표정이 묻어났다. GS건설 직원들은 투표 결과를 묻는 질문에 “노코멘트”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투표 직전 만났던 현대건설 관계자는 “GS건설이 이사비 논쟁에서 국토교통부까지 끌고 들어와 여론전을 펼친 것이 오히려 독(毒)이 된 것 같다”면서 “덕분에 내부적으론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경기도 과천주공1단지 수주전에서 아깝게 졌던 만큼, 방심하면 안된다”면서도 “OS 요원(주부 도우미)을 통해 사전투표 결과를 추산해보니 우리가 6대 4 정도로 이기는 것으로 나왔고, 이길 것으로 자신한다”고 했다. 앞서 조합원 2294명 중 1893명(82.5%)이 총회 전날인 26일 사전투표를 했다.

양사 지휘부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승리를 확신한 듯, 연설을 마친 뒤 곧바로 체육관을 떠났다. 김정철 현대건설 부사장 등 임원들은 체육관 근처 벤치에 둘러앉아 미소띤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1시간 넘게 이어진 개표를 기다리던 중 지루했던지 “막걸리나 한잔하러 가자”는 말도 나왔다.

반면 GS건설 수뇌부는 줄곧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임병용 사장은 체육관 주차장에 고속버스 2대를 대절해 놓고 버스에 머무르면서 굳은 표정으로 체육관 주변을 서성였다. GS건설 관계자들도 “긴장된다”며 말을 아꼈다.

결과는 장외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부동산 업계에선 현대건설이 승리한 요인을 크게 3가지로 꼽았다.

먼저 이사비 7000만원 카드가 결정타였다는 것이다. 이때 사실상 승부가 났다고 지적했다. 한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이사비 7000만원은 조합원들이 거부할 수 없을 만한 달콤한 조건이었다”면서 “그런데 GS건설이 중간에서 이걸 가로막는 형국이 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미운털이 박혔다”고 했다. 실제 이날 총회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GS건설은 지네들이 줄 것도 아니면서 왜 현대건설이 주겠다는 것을 막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위법성 여부를 떠나 현대건설의 ‘파격 조건’에 대응하는 GS건설의 대응 전략이 실패한 셈이다.

시공사 발표가 끝난 후 부둥켜 안고 기뻐하는 현대건설 직원들. /심기환 인턴기자


반포주공1단지의 경우 조합원 대다수가 현대건설과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대한 향수가 있어 이를 파고든 현대건설의 전략이 효과를 봤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도시정비사업체 관계자는 “반포주공1단지에는 현대그룹 OB 출신들도 제법 살고 있다”면서 “초반에 GS건설이 젊은 층을 공략해 승기를 잡았지만 이후 현대건설의 아낌없는 퍼주기 전략과 감성적 접근법이 먹혀든 것 같다”고 했다.

현대건설이 상대적으로 GS건설보다 신용등급이 우량하다는 점에서 향후 사업비 조달 측면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했던 것도 표심을 좌우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수주전을 둘러싼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건설사들의 출혈 경쟁이 결국 재건축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이번 수주전에서 양사가 각각 100억원 넘는 비용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건설사들이 결코 손해보고 끝나겠느냐, 결국 나중에 분양가에 반영되고 고스란히 청약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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