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의 중심’ 조선일보 땅집고가 실패하지 않는 집짓기로 가는 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을 개설했습니다. 좋은 집은 좋은 건축주가 만든다는 말처럼 건축주 스스로 충분한 지식을 쌓아야 좋은 건축가와 시공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땅집고는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 1기 과정을 이끌 교수진을 만나 그들이 가진 집짓기 철학과 노하우를 들어봤습니다.
[집짓기 멘토] ⑤조성익 교수 “집안 10%에 모험을 걸면 좋은 집이 되죠”
“사진으로 예쁜 집이 꼭 좋은 집일까. 매일매일 눈뜨고, 잠자고, 밥먹기 편안한 느낌일까. 세련된 디자인은 꼭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일까.”
조성익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는 최근 국내 인테리어 열풍에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조 교수가 인테리어라는 말 대신 ‘집꾸밈과 집가꿈’이라는 개념을 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인테리어라는 말은 한번에 몰아치기로 집안을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다는 개념”이라며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가족에 맞는 것을 갖춰간다는 뜻을 강조하려고 집꾸밈, 집가꿈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
조 교수는 이번 조선일보 건축주대학에서 ‘집꾸밈, 집가꿈’에 대한 노하우를 풀어놓는다. ‘우리집에 딱 맞는 스타일 연출법’과 ‘예쁜 인테리어를 넘어, 의미있는 가족 공간 만들기’ 강연에서 가족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의 공간 꾸미기에 방점을 찍었다. 물론 최신 트렌드도 소개한다.
그는 서울대 건축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하고 서울대에서 박사를 받았다. 미국 SOM설계사무소에서 프리덤타워 등 초고층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일했다. 최근 조 교수를 만나 인테리어와 건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잘된 실내 인테리어란 무엇인가요.
“집을 설계할 때 내부 공간의 느낌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건물 특징도 반영해야죠. 인테리어와 스타일링은 재료, 가구, 조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 공간의 크기가 집 안을 채우는 물건과 잘 만나면 질 좋은 공간이 나옵니다. 벽을 진한 색으로 칠해도 아침에 햇빛이 강하게 비치면 흰색벽보다 훨씬 밝아 보이기도 하거든요. 안팎을 떼어놓지 말고 통합적으로 봐야죠.”
-실내 스타일링도 직접 하시는데.
“연예인에게 옷, 장신구, 메이크업이 어우러져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듯이 집안을 꾸밉니다. 책상 위에 작은 화병만 놓아도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책상 색깔만 중요한게 아니라 그 위에 놓인 장식품까지 중요합니다.”
-세심한 부분까지 다루는 느낌입니다.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알토는 조명, 작은 의자에서부터 나이프, 포크까지도 그 집에 가장 어울리는 디자인을 했다고 해요. 요즘 상업건축에서는 스테이징이란 개념도 나왔어요. 무대장치를 꾸미듯 일관된 톤으로 보이도록 한다는 건데요. 그 정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눈을 돌리고 있어요.”
-집꾸밀 때 건축주에게 어떤 제안을 하나요
“누가 봐도 아름다운 가구도 좋지만 여행가서 사온 토산품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거든요. 추억도 집꾸미기에서 중요한 요소죠. 디자인적으로 매치, 미스매치의 개념이 아니라 가족이 편한하게 느끼면서도 개성도 드러난다면 최고의 공간이겠죠. 예비 건축주들은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어요. 지식,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길을 잃습니다.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가려낼지 도움을 드리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보는 눈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딱 일주일만 해외 사이트 둘러보면 유행하는 트렌드를 금방 알 수 있어요. 따로 시간을 내서 배우지 않더라고 마음에 드는 사진에서 비슷한 조명을 사고, 비슷한 색깔의 페인트를 칠하면 얼마든지 셀프인테리어도 할 수 있죠. 오히려 이 정보가 나에게 맞는 것인가를 의심하는 자기만의 시각을 가져야 해요. 그런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간을 함께 쓸 가족을 고려하는 겁니다.”
-집 꾸밀 때 조명이 유용하게 쓰입니다.
“조명이 가성비가 좋아요. 조명은 너무 중요한데, 실수를 가장 많이 하죠. 내부수리를 하지 않은 아파트를 생각하면 방의 한가운데 천장에 조명을 달아요. 머리꼭대기에 조명이 있죠. 왜 그럴까요.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전기 절약할 수 있고, 전구 갯수를 아끼구요. 그런데 이게 가장 아늑한 방법이냐고 물으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대낮 같은 집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떤 조명디자이너는 조명은 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공간을 만드는 거라고 했습니다.”
-설계에선 어디에 주안점을 두나요.
“공간의 90%는 보편적인 사항을 넣어요. 사람들은 편안하고 안전하고 가족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보편적인 집을 기대하죠. 다만, 10% 공간 정도에 모험을 걸어보자는 거죠. 재미를 줘요. 재료가 독특하다던가, 공간이 갑자기 높다던가, 앗! 하는 느낌이랄까.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다던가, 재미와 의외의 요소를 감춰둡니다. 10%의 독특함을 넣으면 아주 좋은 집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요.
“인기척을 느낄 수 있도록 해요. 아파트 50평에 살던 분이 같은 50평의 단독주택으로 옮기면 계단도 있고 공간도 높아지기 때문에 70~80평 정도 느낌을 받는거 같아요. 사실 집에 혼자 있다는 느낌은 두려운 거에요. 가족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기척을 느끼도록 작은 발소리, 기침소리, 부시락거리는 소리를 들리게 하죠. 옥상에서 햇빛쬐는 남편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도 해요.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합니다.”
-주방은 어떤가요.
“주방을 집의 중심에 오도록 하죠. 관제탑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 전부를 보는 것처럼 주방에 서면 사방에서 가족이 보이게끔 설계합니다. 보통 주방은 벽을 보고 서게 되잖아요. 자녀들이 엄마 등을 보면서 식사할 수밖에 없구요. 이걸 바꾸자는 겁니다. 가족이 아침식사를 함께 할 수 있게 동선을 짜고 시선을 고려해요. 아침에 눈 뜨면 잠깐이라도 마주치도록, 바쁜 아침시간에 10~15분 잠시 마주쳐서 걸터앉아 식사하면서 얘기할 수도 있구요.”
조 교수는 주택 설계에서 동네 경관과의 조화도 중시한다. 하나의 예쁜 집도 중요하지만 모여있는 주택들의 매력도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그는 “필지를 피자조각 나누듯이 분양하고 집을 짓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집 한채는 명작인데 모아놓으면 마을이 못 생겨 보이는게 문제”라고 했다. 단독주택단지를 전체적으로 디렉팅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집 짓는데 동네 경관까지 고려해야 하나요.
“이제는 동네 이미지가 땅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도 하죠. 주택가 경관 자체가 중요한 자산이 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집을 살 때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거에요. 해외에서 다들 느끼잖아요. 유럽 마을에 가보면 개별 건물은 굉장히 평범한데 마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살고 싶은 경우 많아요.”
-외관이 아니더라도 동네에 기여한 사례는요.
“(서울 광진구) 능동 하늘집 같은 경우는 반지하 부분에 5평짜리 작은 가게를 뒀어요. 큰 수익이 나오진 않지만. 조그만 꽃가게, 공방이 들어가면 마을길에 가로등 역할을 하는거에요. 밤에 이 사람들이 불을 밝힐거구요. 아주 깜깜했던 골목이 불빛때문에 안전한 느낌을 받을 거에요. 그 집을 오르락 내리락할 때 어두컴컴한 계단실에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어요. 기여가 아니라 오히려 건축주나 거주자가 이익을 얻게 됩니다. 아파트 1층 입구에 수위실 두고, 자전거만 놓으니까 그 공간이 중요하다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집주인 설득은 잘 되나요.
“의외로 높습니다. 취지를 자세히 설명드리는게 중요합니다. 단독주택을 지으시려는 분은 주거에 대한 의식이 높아요. 이분들은 아파트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느끼시는거에요. 당장은 천장의 높이, 내가 가꿀수 있는 정원, 가족의 내부 이슈에 눈을 돌리실거에요. 아주 천천히 변화할거에요. 판교 단독주택단지에 가보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그런 가치를 구현하는 설계가 중요할 거라고 봅니다.”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요.
“좋은 집은 시간이 걸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래된 집들도 당시에 건축주와 건축가가 고심 끝에 설계 한 새 집일 거에요. 세월을 보낸 후에도 좋아보인다면 지을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숨겨진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세대를 넘어 보편적으로 집에 기대하는 가치가 건축물의 공간, 재료, 형태에 들어있기 때문이겠죠. 편안함, 안전, 추억 같은 가치 말입니다. 만약 건축주의 아들, 딸이 '아빠, 엄마, 꼭 이 집 저 물려주세요. 저도 여기서 살꺼예요.' 한다면 좋은 집일겁니다.”
-예비 건축주에게 당부의 말씀을 한다면.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지으세요. 건축사, 시공자, 제품업자…. 집 하나 지으려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선택해야 해요. 이 사람들과 1년 넘게 얼굴 보고 의논하며 지내야하거든요. 살면서 전에는 한번도 만나 본적 없는 분들을 만날 거에요. 집 짓다가 늙는다는 말은 집을 설계하고 꾸미는 일이 어렵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콘크리트를 치고, 철근을 연결하고, 창문을 설치하는 일을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즐거운 일도 있지만 갈등도 있게 마련이죠. 그럴때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 좋은 집 짓기 위해 조금만 더 힘내자'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꼭 있어야 합니다. 모든 건축은 희망, 낙관을 갖고 시작하고 목표는 행복에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이 어그러지고 힘들어지면 많이 괴롭습니다. 좋은 재능도 필요하지만 무한 긍정의 힘으로 해나가야 하는 것이 집짓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