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파리에 착륙한 우주선'으로 불리는 기묘한 건물

뉴스 장유진 서울대 박사
입력 2017.09.10 09:30 수정 2017.09.10 12:41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파리의 현대 문화를 창출하는 전당

1977년 개관한 파리의 명물 '퐁피두센터'. 마치 우주선이 착륙한 모양처럼 보인다. /게티이미지


프랑스 파리의 마레지구가 전통 보존에 주력하고 있다면, 살아 있는 현대 프랑스 문화를 창출하는 데 가장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은 다름 아닌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이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등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파리의 명소로 꼽히게 된 것은 단지 우주선이 착륙한 듯 보이는 독특한 외관이 가져온 우연의 결과만은 아니다.

■문화의 전당을 넘어 대중적 시설로

1967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이 당선될 무렵 파리에는 대표할 만한 문화센터나 현대미술관, 대규모 개가식 도서관이 없었다. 퐁피두 대통령은 이런 문화적 현실 속에서 프랑스의 미술사적 위상을 굳건히 유지하고 대외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미국과 북유럽 도전에 직면해 파리가 19세기까지 향유했던 세계문화센터로서의 기능을 재확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퐁피두 대통령은 이 건축물의 구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파리시가 박물관인 동시에 창작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할 문화의 전당을 갖게 되기를 열망한다. 이 문화의 전당에서는 시각예술, 음악, 영화, 문화 등이 공동의 광장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는 복합 용도의 문화센터를 요구하면서 ‘문화의 전당’을 넘어 ‘대중적인 시설’을 만들려고 했다.

1971년 파리에서는 제1회 국제건축설계경진대회가 열렸다. 50개국에서 681개의 프로젝트가 접수됐고, 참가 번호 493번이 9명의 심사위원중 8명의 찬성으로 당선작이 됐다. 단순성과 변화 가능성, 확장된 외부 공간으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은 당선팀은 바로 이탈리아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영국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였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왼쪽)와 리처드 로저스. /조선DB


이들에게 실시설계권이 주어지고 1972년 3월 공사가 시작됐다. 1974년 퐁피두 대통령이 사망하자 공사가 취소될 위기도 있었지만 공사 시작 6년여 만인 1977년 마침내 퐁피두센터가 문을 열었다. 마치 우주선 하나가 파리 시내에 착륙한 형상이었다.

■유연성을 발휘한 내부 공간

퐁피두센터의 내부 공간은 최대한의 자유로운 활동을 목표로 하는 융통성 있는 유니버셜 스페이스다. 각각의 내부 공간은 한 층에 여러 공간이 나열돼 연결되는 일반 전시장과는 달리 단일한 공간이 쌓여 높은 층으로 돼 있다.

그러나 최대한의 내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데 있어 구조적 시설과 기능적 시설을 조화시키는 것이 문제였다. 넓은 전시 공간을 만들려면 재래식 강철 골조 기둥과 서까래, 중앙 기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퐁피두센터는 외부 기둥과 버팀대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센터 내 13개의 높은 횡단 골조는 12.8m 간격으로 배치돼 바닥 골조와 수직 기둥 역할을 한다.

바닥의 콘크리트판 밑에는 쌍으로 된 제르베레트(한 덩어리로 주조된 강철 로커암)의 넓은 바닥 골조를 놓았다. 두 개 층마다 있는 수평적 설비들과 얇은 봉으로 된 대각선 격자는 건물의 실내 모습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강풍을 막는 보조 기능을 한다. 건물 귀퉁이를 보면 건물 전체의 구조가 북쪽 파사드와 남쪽 파사드의 트러스와 같은 복합적인 교차 지지 방식을 취하고 있다.

퐁피두센터는 기능에 따라 건물 외부로 드러난 시설물 색깔이 모두 다르다. /조선DB


퐁피두센터는 170m×50m의 장방형 건물로서 단일하고 장대한 공간이 6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는 형태적·구조적으로 테크놀로지가 강조된 이미지인데, 이는 건물의 내측을 개방하기 위해 모든 설비나 동선 코어들을 건물 밖에 배치한 탓이다. 구조물은 흰색, 승강기와 도관은 붉은색, 물은 파란색, 전기는 노란색, 냉난방 설비는 파란색과 흰색을 사용해 건물 외관을 장식했다. 이는 공업적 색깔 분류법에 의해 각 시설의 기능에 따라 다른 색깔을 입힌 것이다.

■소통과 역동성의 광장

파리 역사 중심부인 4구의 보부르광장을 부지로 선정했을 때, 가장 큰 비난은 주위의 오래된 환경과 현대적 건물의 부조화였다. 공모 당시 서쪽 레알(Les Halles)지구에는 대규모 상업시설 개발과 환승 역사(驛舍)가 세워지고 있었다. 서쪽 레알지구의 흐름을 받아주고, 동측에 면한 르나르(Rue de Renard)가의 소음과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퐁피두센터는 전체 배치에서 대지의 절반 정도를 광장으로 구성했다.

광장은 서커스나 시장, 옥외극장, 카페 등 광범위한 이벤트 공간으로 사용된다. 관람객들은 각 층 서쪽의 승강기나 계단으로 들어오면서 독특한 서쪽 파사드를 감상하고 아래쪽 광장을 볼 수 있다. 퐁피두센터의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간간이 유리벽을 통해 파리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광장과 퐁피두센터가 서로 소통하듯 열려있는 것이다. 특히, 스트라빈스키광장은 장 팅겔리(Jean Tinguely)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alle)이 만든 스트라빈스키 분수로 유명하다. 이처럼 퐁피두센터와 광장은 역동성과 소통성을 동시에 지니면서 센터 건립 당시 제기된 전통과 현대의 단절, 부조화와 같은 우려들을 말끔하게 사라지게 했다.

퐁피두센터 옆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설치된 분수. /조선DB


■시대에 부합하는 문화 인프라

퐁피두센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정체성이다. 이 건축물은 현대 예술이라는 내용물과 하이테크 건축이라는 그릇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것이다. 추진 과정의 투명성과 국제성 또한 배워야 한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 건축가를 물리치고 설계를 국제 현상 공모로 진행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공모는 그 자체가 세계 건축계의 이벤트가 됐고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건축물을 위해 프랑스는 철골 트러스를 독일에서 수입했고 불과 30대의 이탈리아와 영국 출신 무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퐁피두센터는 1962년부터 구상해 1971년 결정됐고 1977년 개관하기까지 15년간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특히 주목해야 될 부분은 센터의 건설과 병행해 운영을 위한 계획안이 전문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197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센터의 조형미술부와 산업창작센터, 공공도서관, 음향연구센터 등 4개 부서로 개관을 준비해 왔다. 다양한 전문성 확보는 조각과 회화를 소장하고 전시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연극 등을 위한 연구와 전문 도서관을 갖춘 동시대의 문화 복합 공간으로서의 신화를 실현할수 있는 근원이 될 수 있었다.

인공위성에서 본 퐁피두센터. /구글 지도


■파리, 또 하나의 상징

1977년 1월 개관 이후 퐁피두센터는 세계 각지로부터 대중들의 관심과 방문을 끌어들이는 데 대성공했다. 연간 700만명에 달하는 방문객으로 인해 너무 빨리 노후화되면서 1997년 10월부터 27개월 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2000년 1월 1일 재개장했을 때 대중들의 압도적인 환호는 퐁피두센터가 파리 시민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가늠하게 해주었다.

비판의 대상이던 공사 중인 듯한 외관은 오히려 파리의 현대적 비전과 감각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됐다. 퐁피두센터는 현대 건축이 담고 있는 다양함과 복합성을 정형적인 틀 속에 가두기보다는 변화하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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