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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돈 5억 필요한데도 34대1, 주택시장 '부자들의 리그'로 변하나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17.08.18 10:45

[심층 분석]8·2대책 이후 서울 첫 분양아파트 경쟁률 34대1, 주택시장 부유층 ‘그들만의 리그’로 변하나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역 초역세권에서 분양된 ‘공덕 SK리더스뷰’ 아파트가 17일 진행된 1순위 청약 모집에서 평균 34.6대 1의 경쟁률로 모든 주택 형이 마감됐다. 195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총 6739명이 청약을 넣었다. 가구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8·2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양도세 등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된 마포구에서 여전한 수요자들의 청약 열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공덕 SK리더스뷰가 분양되는 마포는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청약조정지역까지 3겹의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다. 그럼에도 청약성적이 좋았던 것은 일반 분양 물량이 200여 가구 수준으로 적은 편이었고, 분양 가격이 주변 시세에 비해 다소 낮게 책정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8·2대책의 영향으로 ‘현금 5억원’을 대출없이 마련해 잔금을 치러야 하는 높은 장벽이 있었음에도 이처럼 높은 경쟁률을 기록 한 것은 서울 주택시장이 소위 ‘실탄(자금)’이 넉넉한 부유층 중심의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대출 없이 5억원 있어야 잔금 치를 수 있어…서울 주택 시장 부유층 ‘그들만의 리그’로 바뀌나

“당첨만 되면 ‘로또’라고 누구나 생각했어요. 돈 많은 사람만 청약할 수 있으니 문제지.”

이날 청약 결과를 보고 공덕역 인근 공인 K 부동산 이기봉 대표는 “강북 지역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입지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가를 생각하면 예상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공덕동은 광화문·여의도·용산·서울역 등 강북 주요 업무지구와 가까운데다 이 아파트로부터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공덕역은 지하철 5·6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등 4개의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다.

11일 강남구 개포동 SK VIEW 갤러리에 마련된 '공덕 SK 리더스뷰'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방문객이 몰려 있다./주완중 기자


'공덕 SK리더스뷰'의 분양가(84㎡)는 3.3㎡당 평균 2358만 원으로 저층이 7억4000만 원, 고층은 8억 원이었다. 대로 건너편에 있는 공덕 역세권 주상복합 아파트 ‘공덕 파크자이’의 같은 면적은 매물 가격이 최저 9억원부터인 것을 감안하면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아파트가 보인 이 같은 청약 열기는 서울 시내 인기 아파트 청약 시장의 수요층 변화를 나타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아파트를 분양한 분양대행사 ‘청연’의 송길준 부사장은 “모델하우스 상담 등에서는 대책 전과 비교해 30~40대나 분양권 단타를 생각하는 수요는 줄었고, 대신 여윳돈이 많은 40~50대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앞으로 청약 시장에도 여윳돈 가진 사람들만 뛰어들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 아파트의 경우 입주 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불가능하고, LTV가 40%로 제한돼 있어 입주 시점에 집값 60%와 중도금 후불이자·확장비 등을 합쳐 전용 84㎡ 기준 약 5억원의 현금을 가진 수요자들만이 무리 없이 잔금을 치를 수 있다.

공덕역 인근 S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마포구에 중산층 맞벌이 부부 등이 많이 살긴 하지만, 부모 도움 없이 5억원을 현금으로 마련할 수 있는 젊은 층이 몇이나 있겠느냐”며 “분양 상담을 하던 예비 청약자들 중에서도 당첨 되면 자식을 입주시키겠다는 50~60대가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전용 59㎡, 대책 후 8억원 첫 돌파… “매물 안 내놓는다”

서울 강북의 인기 주거지역인 마포 공덕·아현동 일대 주택 시장의 상황은 '8·2 대책'에도 불구하고 인기 지역의 아파트 수요가 여전했다.

8·2 대책 발표 후 2주가 지난 16일 현재, 마포구 아현동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공덕 자이’ 등 신축 대단지 아파트들은 거래가 급감했지만 매물 호가는 조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대책 발표 후 간혹 1000만~2000만원 정도 가격이 내린 급매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매수자들의 문의가 오면 다시 원래대로 가격을 높여 부르는 상황도 벌어진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의 모습./심기환 인턴기자


실거래 매매 가격은 오히려 대책 전보다 더 오른 경우도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아현동에서는 8·2 대책 이후 17일 현재까지 신고 기준으로는 한 건이 거래됐는데,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전용 59㎡(15층)가 이달 11~16일 사이 8억원에 매매됐다. 이는 이 아파트 전용 59㎡ 거래 가격 중 역대 최고가다.

대책 발표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이같은 30·40 주택 수요자 층의 매수 문의가 뚝 끊겼다는 것이다. 래미안 푸르지오 단지 내 R 부동산 중개업소는 “대책 발표 전 매수 문의가 하루에 10건씩 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 통도 안 오는 날이 많다. 그야말로 파리가 날리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이번 대책이 '투기를 막고 실수요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를 살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오히려 집값을 잡지도 못하고, 3040 맞벌이 세대 등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입만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다.

LTV·DTI가 40%로 내려가면서 자산 형성 기간이 50대 이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30~40대의 자금 마련이 어렵게 됐다. 또 청약 제도 조정에 따라 서울 시내 투기과열지구에서는 100% 가점제만으로 당첨자를 뽑기 때문에 무주택 기간 등에서 불리한 3040세대는 청약 당첨을 노리기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여유 있는 다주택자들은 이같은 거래 절벽 상황을 오히려 좋은 입지의 주택을 구매할 기회로 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공덕S 부동산 관계자는 “8·2대책 이후 강남에 산다는 자산가들이 ‘공덕동에 아파트를 사고 싶으니 가격이 떨어지면 알려달라’는 전화를 종종 해온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의 영향으로 서울 주택시장의 ‘빈부 격차’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시장의 전문가는 “대통령은 길어야 5년이고, 집값은 언젠가는 오르게 돼 있다”며 “결국 집값이 좀 떨어졌을 때 자기 돈으로 집을 마련해 놓은 부유층들이 시간이 지나면 집값 상승의 수혜자가 될 것이고, 어중간한 중산층, 젊은층의 내집마련 꿈은 더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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