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조선일보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현대판 만리장성’이 된 세계 최대 샨샤댐
세계 최대 규모의 댐, 세계 최대 발전량을 가진 수력발전소 등 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는 싼샤(三峽)댐은 아시아에서 가장 긴 양쯔강 중상류인 중국 후베이성 이창의 세 협곡을 잇는 댐으로, 오랜 시간 많은 논란 끝에 1994년 착공 후 2006년까지 13년에 걸쳐 건설됐다.
싼샤댐 완공으로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는 연간 200억위안(약 3조4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연간 발전량은 847억㎾로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로 불리던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의 이타이푸댐을 제치는 토목 시설물로 등극했다.
■‘뜨거운 감자’, 세계 최대 싼샤댐 논란
싼샤댐 건설까지 많은 찬반 논쟁이 있었다. 찬성 측에서는 홍수 피해를 줄이고 부족한 전력 확보는 물론 물류비 절감, 주민 고용 촉진 등 긍정적인 효과를 주장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댐 건설로 인한 이재민 발생, 생태계 파괴 등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댐 건설로 수많은 주민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지역에 남아 있던 소수 민족들과 지방 문화의 전통은 영원히 사라졌다. 게다가 중국 내 환경 전문가뿐만 아니라 외국의 수많은 환경 전문가들이 댐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예상보다 클 것이라고 주장해 완공 이후에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싼샤댐이 건설된 양쯔강은 중국에서 창강(長江)으로도 불리며, 아시아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긴 강이다. 이러한 양쯔강에서는 약 10년 주기로 홍수가 발생해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를 가져왔다. 1930년대 대홍수 당시에는 무려 15만명이 숨졌고 1954년 홍수에도 3만명이 사망했다.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댐 건설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중국 혁명의 지도자인 쑨원(孫文·1866~1925)으로 그 또한 홍수 피해를 직접 경험한 인물이었다.
1944년 장제스(蔣介石·1887~1975)의 중화민국 정부가 미국의 엔지니어인 싸판치의 제안에 따라 댐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1947년 내전으로 중단됐다. 공사 자체가 너무 크고 결정적으로 돈이 없었다. 1954년 홍수로 3만명이 숨지자 중국 공산당도 댐 건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많은 경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중단됐다.
이후 30여년이 흐른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싼샤댐 건설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1990년 7월 국무원 산하에 ‘싼샤댐 심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1992년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찬성 1767명, 반대 177명, 기권 664명으로 싼샤댐 건설 안건이 통과됐다. 댐 건설에 가장 적극적이던 인물은 국무원 총리를 역임한 리펑(李鵬)으로 그는1987년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면서 댐 건설을 강조했고 이후 국무원 총리에 오른 1994년 12월 14일 착공을 발표한다.
공사는 크게 3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물막이 제방과 수문 건설 공사로 1997년 11월 완공되고, 2단계는 주요 공정인 본댐 공사로 2006년 5월 준공했다. 마지막 단계인 운하 건설과 발전시설 설치 공사는 당초 2009년에서 1여년 앞당겨 2008년 마무리됐다. 완공된 싼샤댐은 길이 2309m, 높이185m, 너비 135m, 최고 수위 175m, 제방 두께 15m, 최대 저수량 약 390억톤, 담수호 넓이 1084㎢에 이르는 거대한 시설물로, 댐이 완공까지 투입된 공사비만 약 25조원에 이른다.
한국 소양강댐과 비교하면 저수량은 약 13배, 길이는 4배 정도 크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댐을 건설하면서 많은 자재와 인력이 투입됐다. 댐 건설에 투입한 인력이 하루 평균 1만여 명, 피크시 최대 3만여 명에 달했다. 투입 자재 규모는 시멘트 투입량이1610만㎥, 콘크리트 사용량이 약 2790만㎥로 공사 초기 수심 60m에 설치하는 코퍼댐(coffer dam) 건설에만도 1030㎥가 투입됐다. 강화강철 35만4000톤, 기타 금속이 26만 5000톤이 투입됐다. 댐 하류의 발전소 2곳에는 총 26기의 발전기를 설치했다. 이 발전기들을 통한 전력 생산량은 연간 847억㎾/h규모로 이 댐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은 매년 5000만톤 이상의 석탄을 태워 얻는 에너지와 비슷하다.
홍수 조절을 위해 주요 댐에 낮은 문들을 설치했다. 즉, 홍수시 침전물이 하류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댐 아래쪽에 23개의 문을 달아 매년 홍수 시작 전에 문을 열어 저수지 수위를 낮추고 홍수가 시작되면 그 물을 다시 저수하도록 했다. 발전소 옆에 마련된 수로에는 5개의 갑문을 설치해 남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로 사용하고 최고 1만톤급 선박까지 운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현대판 만리장성의 신화 창조인가, 재앙인가
중국에서는 싼샤댐이 “인류와 자연의 조화로운 개발”의 결과로서 댐 완공이 가져올 여러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중국 정부에서 주장하는 효과는 크게 3가지. 우선 10년 주기로 발생하던 홍수가 100년 주기로 늦춰지면서 수십 억, 수백 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 손실은 물론 수많은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로 70만㎾급 발전기 26기를 통해 하루에 생산하는 전력량이 1820만㎾로 중국 전체 사용량의 10%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력량은 국내에서 가동 중인 20기의 원자력 발전소 용량 1772㎾보다 더 많은 양으로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량의 40%와 동일한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싼샤댐을 활용한 해운 물류의 활성화로 인구 3800만명의 충칭까지 1만톤급 선박이 운항하면서 고속도로 4~6개가 동시 개통하는 효과를 얻는 것은 물론 댐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돼 21세기 중국의 지도를 바꾸게 될 것으로 중국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댐 건설로 인해 13개 도시, 1500여 개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이주민만 115만명에 이른다. 댐 착공을 앞두고 작성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의 유물과 유적지가 모두 2300여 곳인데, 이 중 이미 수몰된 문화재만도 12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6300㎞에 이르는 양쯔강의 허리를 가르는 싼샤댐 완공으로 중국은 홍수를 조절하고, 연간 200억위안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3000년 중화민의 염원을 이뤘다고 자축했다. 이런 축제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 세계 각국의 시선이 세 협곡에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