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조선일보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사막에 뿌리내린 산업 수도
주베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산업 수도나 다름없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아주 각별한 도시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건설엔지니어라면 상식처럼, 아니 자랑스러운 무용담처럼 익히 들어온 도시이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주베일 산업항 공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 해외건설의 태동기나 다름없던 그 시절, 현대건설이 사우디에서 공사 금액 9.3조원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수주액이 당시 우리나라 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이어서 한동안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현대건설은 5년 여에 걸쳐 엄청난 모험과 도전을 감행한 끝에 당초 예정 공기(工期)를 8개월이나 앞당겨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로써 국내 업계가 세계 굴지의 건설업체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게 됐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건설인들은 척박한 사막에서 불굴의 신화를 이룩한 진정한 개척자들이었다.
■거대한 사막의 산업도시
초창기 한국 해외건설의 신화같은 존재인 주베일 산업항은 앞으로는 페르시아만을 끼고, 뒤로는 광대한 사막을 등진 항구 도시다. 그렇다면 그 개발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석유화학, 철강 공장, 비료 공장 등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주베일 산업도시가 조성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주베일 산업항은 이 산업도시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수출하고, 필요한 공산품 수입을 위한 관문으로 건설된 것이다. 비유컨대, 산업도시가 거대한 모자이크라면 산업항은 이 모자이크를 채우는 조각들 중에 가장 큰 조각이다.
주베일은 옛날 페르시아만의 한적한 항구였다. 돛단배 다우(dhow)선이 정박하던 항구이자, 사막을 가로질러 홍해 쪽으로 가던 대상(隊商·caravan)들의 역참이었다. 주베일 산업도시는 사우디 정부의 야심찬 국가 프로젝트로 아라비아반도 동부의 항구 도시인 주베일을 서쪽 도시 얀부(Yanbu)와 함께 석유화학 중심의 첨단 산업도시로 개발하려는 전략 도시였다.
주베일 산업도시는 크게 5개 단지로 계획했다. 첫째, 산업단지(Industrial Zone)는 19개의 주공장과 136개의 부속 공장들로 구성된다. 철강, 알루미늄, 플라스틱, 비료 공장들이 차지하고 있다. 둘째, 주거단지(Residential Area)는 9개 지역으로 구성되며 연안 지역과 부속 섬들을 연결해 최대 37만5000 명을 수용한다. 셋째, 공항 지역(Airport Area)은 항공기, 화물 수송기 등 모든 종류의 항공기 서비스가 가능하다. 면적은 250㎢다. 넷째, 위락단지(Picnic Zone)는 산업단지 서쪽에 있고 시의 상주 인구를 위한 운동장, 수영장, 놀이공원 등 각종 위락 시설을 갖췄다. 다섯째, 알 바트와 섬(Al-Batwah Island)은 낚시, 요트 등을 즐길 수 있는 해양 스포츠 위락단지이다.
■산 하나를 통째로 메운 주베일 산업항
‘50대 이상 건설 기술자 세계에서 중동 건설현장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는 것은 남자들 세계에서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건설 기술자라면 대체로 동의하는 이야기다. 필자 역시 1980년대 중반 사우디 담수 플랜트 현장에서 근무할 당시 선배들의 무용담을 자나 깨나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1976~1980년)는 20세기 최대의 프로젝트(9.3억 달러)로 우리나라 현대건설이 수주해 갖가지 건설 신화를 만들어냈다. 산업항 공사는 난관의 연속이었지만 한국인 특유의 뚝심과 지혜로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당시 섭씨40도를 오르내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무려 3500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는 돌관 공사를 해 당초 예상 공기보다 훨씬 앞당겨 준공을 이뤄냈다.
당시 산업항 공사는 1, 2단계를 나눠 먼저 수심 10m 얕은 바다를 길이 8㎞, 폭 2㎞로 매립해 일반 항구와 기반시설을 조성했다. 해발 300m의 산 하나가 통째로 바다로 들어가는 매립 공사였다. 그 뒤 수심 30m 바다에 길이 3.6㎞의 30만t급 유조선 4대를 접안하는 시설(OSST)을 건설해야 했다. OSST는 유조선 정박 시설로 바다 위에 세우는 장대한 철구조물. 그 기초가 된 철구 구조물(자켓)만도 단위 중량 500t짜리 89개가 필요했다. 자켓은 직경 1~2m의 파이프를 가로 18m, 세로 20m, 높이 36m로 만들었다. 높이만도 지상 10층 빌딩과 맞먹는 규모였다. 당시 현대건설은 바다 바닥을 종(鐘) 모양으로 굴착, 철근을 삽입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한 뒤 거기에 자켓을 세우는 세계 최초의 공법을 고안해 마지막 난관을 성공적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설 프로젝트의 변화 측면에서 본다면 30년이 지난 오늘의 여건은 분명 천양지차가 날 것이다. 단순 노무를 지양하고 턴키 프로젝트와 같은 고부가가치로 옮겨간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때의 패기와 뚝심은 과연 여전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 최대 담수 플랜트
사막에서 생존을 위해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물이다. 연 평균 강수량이 40㎜ 전후인 사우디로서는 물의 확보는 곧 생존이자 번영의 약속인 것이다. 물과 관련한 사우디 정부의 정책 과정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부족한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남극 대륙의 빙하를 운반해 오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 물론 검토로만 그쳤던 일이었고 실제로는 동서 양쪽의 바닷가(페르시아만과 홍해)에서 모두 27개의 담수 플랜트를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 이들 담수 플랜트에서 생산한 음용수가 전체 상수도 공급량의 70%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주베일의 담수 플랜트(2004년 준공)는 세계 최대 규모다.
‘문명의 앞에는 숲이 있었고, 문명의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 프랑스의 작가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이 남긴 말이다. 아라비아반도는 인접한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과 함께 인류 문명의 찬란한 여명을 열었던 곳이다. 하지만 13세기 이슬람제국 압바스 왕조를 이후로 내리막을 걸었다. 이후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불모의 사막으로 치부되던 대륙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돈다. 그 사막이 다시금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오늘날 아라비아사막은 무한한 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막 밑은 석유를 비롯한 광물의 보고이고, 사막 위는 청정에너지의 대명사로 꼽히는 태양열이 무진장이다. 따라서 샤토브리앙의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사막 아래에는 광물의 노다지가 있고 사막 위에는 청정 에너지의 노다지가 있다.’ 그 사막의 주인, 사우디는 세계 2위 종교인 이슬람 세력의 맹주이며, 중동 산유국 연합 OPEC의 수장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우디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교역의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주베일을 보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사막 위에 뿌리내린 산업도시를 넘어 이미 사우디의 지속 가능한 산업수도의 위상을 굳혀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도시의 뿌리는 우리 건설인 선배들이 땀 흘려 심고 가꾼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