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노란방 지나 초록방, 그 옆엔 빨간방…파격 가득한 이탈리아 대사관저

뉴스 이윤정 기자
입력 2017.07.12 07:15

[대사관저 인테리어 들여다보기] ③ 원색의 파격이 가득한 이탈리아 대사관저


“이탈리아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주인의 ‘좋은 취향(good taste)’ 입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탓에 이 좋은 취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변과의 조화, 그것이 지닌 의미 등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가 좋은 취향의 관건이라는 것은 확실하죠. 이탈리아의 집들, 특히 대사관저 같은 중요한 집들은 방문객에게 특정한 의미를 전달해야 합니다. 여기서 성공했다면, 그 집주인은 좋은 취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고급빌라촌에 자리잡은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저. 겉보기엔 다른 집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외관은 다소 오래된 인상을 줬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화이트톤의 깨끗함이 요즘 인테리어 트렌드라면, 이탈리아 대사관저는 이와 정반대였다.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등 원색의 파격적인 벽으로 가득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은 응접실. 세타 대사가 대사관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이 방의 대부분이 그의 개인소장품이라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소파는 그가 중국에 주재하던 시절 구입한 것이다. /이태경 기자


이곳에 살고 있는 마르코 델라 세타 주한 이탈리아 대사를 조선일보 땅집고(realty.chosun.com)가 최근 만났다. 세타 대사는 멕시코·아르헨티나·중국 등을 거쳐 2015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지금의 대사관저는 1984년부터 이탈리아 정부가 세들어 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행사 개최에 충분한 크기, 교통 요건 등을 고려해 골랐다고 한다.

세타 대사는 “전 세계 대사관저의 인테리어는 외교부가 담당하는 것이 규칙이지만, 나의 경우엔 달랐다. 일부는 이탈리아 외교부 도움을 받았지만, 대부분 인테리어는 내가 직접 결정했다”고 했다. 직접 쓰던 소품과 가구 모두 컨테이너 박스에 실어 한국까지 가져왔다는 세타 대사. 그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그의 인테리어에 담겨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세타 대사는 주말에 시간이 나면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서울 마포구 홍대. 한국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특히 '삼국시대'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이태경 기자


■대사가 직접 결정한 인테리어 컬러

“방마다 다른 컬러를 입히면 방의 기능을 강조할 수 있다. 방의 기능이 변하는 것을 색으로 알아차릴 수 있으니 방문객은 자신이 다른 장소로 옮겨간다는 사실 또한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 내에서는 굉장히 오래된 인테리어 아이디어다. 이탈리아의 많은 공공장소에서 ‘블루홀’, ‘레드홀’ 등 각 방의 색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타 대사는 대사관저의 각 방이 지닌 고유한 기능을 강조하고 싶어 이런 아이디어를 활용했다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응접실. 방문객들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이자 가벼운 다과를 즐기는 곳이다. 세타 대사는 이 방의 컬러로 ‘노란색’을 선택했다. 방문객들에게 따뜻한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사관저의 컬러는 이 노란색에서 시작해 초록색, 빨간색 등으로 흘러간다. 초록색 방은 소규모 인원이 식사할 때 이용하는 곳으로, 어두울수록 친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빨간색 방은 많은 인원이 연회를 즐길 때 사용한다. 세타 대사가 어릴적 살았던 이탈리아 밀라노 저택의 다이닝룸을 본떴다.

응접실 '노란 방'을 지나면 나오는 '초록 방'. 이 곳은 소규모 인원이 식사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곳이다./이태경 기자


여러가지 색이 펼쳐져 있다보니 집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세타 대사는 “최근 이탈리아에서도 적은 가짓수의 색을 이용해 미니멀리즘한 인테리어를 선택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이것은 트렌드일 뿐이지, 모두가 그 트렌드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 대사관저에도 한 가지 컬러만을 사용했다면 지루하고 차가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타 대사의 과감한 컬러 선택은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평생 약 4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즉 4년마다 내가 사는 공간, 내 물건을 다시 배치하고 꾸밀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러한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이라면 결국엔 자신만의 취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밤, 세타 대사를 포함한 15명이 이 방에서 만찬을 즐겼다. 사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두 개의 항아리는 중국 북경에서 만들어졌다. 세타 대사는 이 곳의 소품에 특히 공을 들였다며 "대사관에서의 식사는 방문객들의 기억에 남아야 한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이태리인들의 뛰어난 ‘취향’은 교육의 산물”

세타 대사는 이사가 잦은 사람일수록 개인 취향이 확고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특히 미적 관점에 대해 나름의 견해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견해를 ‘좋은 취향’이라고 표현했다. 좋은 취향이란 개인마다 성향이 다른 탓에 그 의미를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과의 조화, 그리고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 등이 좋은 취향의 관건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집주인의 취향이다. 세타 대사는 “포크, 꽃병 등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 의자, 소파 등 대형 가구까지 집안의 모든 것은 실용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미적으로도 뛰어나야 한다”며 “그래야 이탈리아에서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인들의 뛰어난 미적 취향은 자국의 가구 디자인 산업을 정상에 올렸다. 현재 세계 가구 디자인의 흐름은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실제 밀라노가구박람회는 세계 최고의 박람회 중 하나로 꼽힌다.

이탈리아 국가 문양이 새겨진 그릇과 포크. 모두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고, 소유권 또한 이탈리아 정부에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들은 모두 같은 식기를 사용한다고 한다./이태경 기자


그렇다면 이탈리아인들의 취향은 어디에서 올까. 세타 대사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은 아니다”라며 “환경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먼저 이탈리아인들은 어릴 때부터 자국 예술 역사에 대해 교육받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전세계 예술의 부흥을 이끈 이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미적 지식을 습득한다. 또 이탈리아 곳곳은 이들이 남긴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다. 세타 대사는 “이탈리아인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이러한 교육을 통해 좀 더 나은 미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며 “다른 나라에 비해 이 과정이 더 자연스럽다”고 했다.

대사관저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그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그림 선택 기준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없다. 미리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하지 말라. 좀 더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다. 집에 무언가를 걸 때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공간을 망쳐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시회에서 감명받은 작가를 직접 만나 그림을 사기도 하고, 인사동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기도 한다. 세타 대사는 “미리 알아보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작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응접실 길목에 걸려있는 김수강 작가의 '보자기 001' 작품. 세타 대사는 박물관에서 김수강 작가의 작품을 본 뒤 흠뻑 빠져 그녀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직접 만났다. 그렇게 구매한 작품이 바로 이것. 사진이지만 얼핏 보면 직접 그린 것처럼 보이는 점이 매력적이다./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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