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국 입주물량 38만가구, 내년엔 '역대 최대' 43만가구
5년 전 물량의 2배 수준
경기도에 입주물량 집중, 화성·김포·시흥 등서 쏟아져
전세금 급락세로 '역전세난' 우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A41 블록 한 대형 아파트 단지. 단지 안팎에 ‘입주를 환영합니다’ ‘구경하는 집’ 등 다양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 초 입주 직전만 해도 전세 시세가 전용면적 84㎡ 기준 2억50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날 지역 중개업소에는 1억7000만원짜리 전세 물건도 나와 있었다. 매매 가격이 3억6000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이 47%까지 내려간 셈이다. 이 단지에서만 16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쏟아진 탓이다. 하이텍부동산 염필웅 대표는 “전체 집주인 중 실거주자는 30~40%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며 “전세를 받지 않으면 잔금을 치르기 어려운 집주인들이 전체 시세를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아파트는 매물을 중복 등록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 부동산 코너에 전체 가구 수보다도 많은 1715건의 매매와 전·월세 매물이 올라와 있다.
하반기 들어 수도권 곳곳에서 이른바 ‘입주 물량 폭탄’이 본격화하고 있다. 2015년 분양시장 활황 초기에 분양한 단지들의 입주가 줄지어 시작되면서 전세 시세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집을 비워두거나, 새 세입자를 구하더라도 낮아진 전세 시세로 인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다 돌려주지 못하는 ‘역(逆)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 입주가 예정된 아파트는 37만8765가구로 역대 최다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전 기록은 1999년 36만9541가구였다. 올해 기록도 내년에 곧바로 깨진다. 내년에는 43만4399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5년(2012~2016년) 연평균 입주량은 24만50가구였는데 거의 2배 가까운 규모다. 이현수 부동산114 연구원은 “2014년 8월 대출 규제가 완화됐고 2015년에는 청약제도가 개편되면서 분양시장이 활황을 보였는데, 당시 분양 단지들의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입주 물량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심각한 지역은 경기도다. 경기도의 지난 5년 연평균 입주량은 6만4743가구였는데, 올해는 입주량이 그 두 배로, 내년에는 2.5배까지 치솟는다. 올해~내년 사이 5만4000가구가 입주하는 화성시, 2만5000가구가 입주하는 김포시, 2만4000가구가 입주하는 시흥시 등이 집중적으로 입주 대란 우려가 있는 지역들이다.
화성 동탄2신도시 일대는 다 지어진 아파트와 현재 건설 중인 아파트가 뒤섞인 ‘아파트 숲’을 방불케 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입주 폭탄’의 여파는 도미노처럼 이웃 지역으로 퍼져 나간다. 동탄2신도시 중심부에서 약 8㎞ 떨어진 동탄1신도시 L아파트는 전용 87㎡ 아파트 전세 시세가 작년 9월 정점(頂點) 대비 3000만원 이상 하락했다. 인근 롯데골드공인중개사무소 김명아 대표는 “문제는 2동탄 입주가 이제 겨우 시작이고 장기간 이어진다는 점”이라며 “입주가 피크를 이루는 내년 7~8월까지 전세 시세가 얼마나 내릴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화성, 김포, 남양주 등에서 역전세난이 시작됐으며, 6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가격도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수도권 전체의 주택보급률이 98%에 머물고 있어 집값이 전세금 아래로 내려가는 ‘깡통 주택’ 사태까지 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