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모(39)씨는 지난해 한 인테리어 업체에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맡겼다. 2400만원의 견적을 받아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총 2040만원을 지급했다. 공사가 끝나고 잔금을 치르려던 차에, 거실 확장 벽이 갈라지고 도배지가 들뜨는 걸 발견했다. 엄씨는 보수를 요구했지만, 업체는 차일피일 미룬 채 오히려 잔금 지급만 독촉했다.
지난해 7월엔 위례신도시에서 아파트 발코니 확장 등을 해주겠다며 공사비를 받아 챙긴 뒤 잠적한 인테리어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위례신도시 입주자10여명이 에어컨 설치, 발코니 확장 등 인테리어 공사를 맡긴 A업체가 공사 당일 연락을 끊고 사라진 것. 피해자들은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대 공사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무면허 인테리어 업체에 공사를 맡겼다가 이처럼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대기업 운영 인테리어 브랜드 역시 실제 시공은 무면허 협력업체에 맡기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이달까지 인테리어 설비 관련 소비자 상담은 매년 4000여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실제 피해구제 신청까지 이어진 경우는 모두 355건으로, 이 중 57.3%(192건)가 ‘부실 시공으로 인한 하자 발생’이 신청 사유였다. 심지어 계약금과 공사 대금을 일부 받고도 공사는 하지 않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일명 ‘먹튀’ 피해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인테리어 관련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면허 업체의 난립 탓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인테리어 시장 규모는 약 19조8000억원. 이 가운데 주거용 인테리어 시장 규모는 절반이 넘는 11조원에 달한다. 무면허 업체들이 주로 주거용 인테리어 시장에 난립하는 이유다.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에 따르면 인테리어 공사 비용이 1500만원을 넘으면 면허가 있는 시공업체에 공사를 맡겨야 한다. 무면허 업체의 시공은 불법이다.
그러나 실내건축공사업협의회 관계자는 “홈 인테리어 사업에 진출한 대형 건설자재업체들의 협력 시공사는 대기업인만큼 면허를 보유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사업주 면허 여부를 조회하면, 검색 결과는 ‘없음’이 대부분이라는 것. 실내건축공사업협의회 관계자는 “대형 건설자재업체들이 무면허 업체에 불법 시공을 조장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대기업 브랜드 파워를 믿고 해당 협력업체에 인테리어 공사를 맡겼다가 공사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져 입주가 늦어지고, 주문과 다른 자재를 사용하거나 날림 시공으로 하자가 발생하는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하자 보수를 요구하면 업체는 추가 수리비를 요구하고, 본사는 대부분 자사 제품이 아니라며 발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건산법을 알고 있는 소비자가 거의 없어 피해를 입어도 구제받을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 건산법에 의하면 공사가 끝난 후 발생한 하자는 1년간 보증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소비자는 이를 몰라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김주만 실내건축공사업협의회장은 “홈인테리어 시장은 진입장벽이 낮아 소위 ‘업자’들이 선금만 받고 먹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부실 공사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소비자들이 소규모 공사라도 가급적 면허를 보유한 업체인지 확인한 후 공사를 맡기고, 계약서도 꼼꼼히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