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한국 건설史에 획을 그은 ‘디지털 다리’
2009년 10월 19일. 인천대교는 52개월 간의 기념비적 대공사를 마무리하고 개통했다. 이보다 앞선 10월 11일2009 국제마라톤대회가 다리 위에서 열려 3만여 명의 마라토너가 모였다. 이날 인천대교를 왕복한 참가자들은 사실상 42.195㎞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달렸다. 이는 인천대교의 총 길이가 21.38㎞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연결로다. 제2경인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와도 연계된다. 서울, 경기 남부, 충청권에서 기존 인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보다 13㎞ 이상 단축되고, 통행 시간도 최대 40분 줄어든다. 이렇게 개선된 공항 접근성을 무기로 인천공항은 주변 국가와의 허브 공항 경쟁에서 한걸음 앞설 기회를 확보한 셈이다.
인천대교는 규모와 사업 수행, 재원 충당 방식 등에서 보여준 다양한 기록과 상징성으로 인해 국내 건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또 해외 초고층 빌딩 건설과 더불어 인천대교 완공은 한국 건설 기술의 역량을 대외적으로 과시한 사건이었다.
■건설 기술 역사의 새 전기
인천대교는 12.34㎞는 민간 자본으로 건설했고, 나머지 9.04㎞는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사업은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으로 추진됐다. 사업시행자인 인천대교㈜가 민간 자본을 투자해 다리를 건설한 후 소유권을 국가에 귀속시키되 30년 간 운영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총 사업비는 민자 1조6000억원, 국고 8000억원 등 약 2조4000억원 수준이다.
인천대교의 웅장한 규모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인천대교는 양쪽 주탑에서 케이블(cable)로 상판을 비스듬히 매달아 지탱하는 방식인 사장교(斜張橋·Cable-stayed Bridge)로 설계됐다. 해상 사장교로 설계한 이유는 인천항을 드나드는 대형 선박들이 다리 아래로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사장교를 지지하는 주탑과 주탑의 사이 거리가 800m로 국내 최장(最長)이며 세계 5위급 규모를 자랑한다. ‘Y’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주탑 높이는 230.5m로 63빌딩(249m)에 버금간다.
인천대교는 위풍당당한 외관에 걸맞게 안전성 측면에서도 탁월하다. 초속 72m의 폭풍과 진도 7의 지진을 견딜 수 있다. 선박 충돌 보호 장치가 2개의 주탑과 주변 교각 곳곳에 총 38개 설치됐다. 최대 10만t급 화물선이 인천항 주항로를 이용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런 세계 최대 규모의 충돌 방지공은 항공모함급인 10만t급 대형 선박이 10노트의 속도로 충돌해도 안전하게 다리를 보호해 준다.
■획기적 工期 단축…수많은 위험과 싸워
인천대교는 과거 교량 건설 공기(工期)에 비해 획기적으로 짧은 52개월에 완공됐다. 총 7.3㎞의 서해대교를 건설하는 데 72개월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21.3㎞의 인천대교는 서해대교 대비 4배 이상 빠른 엄청난 공정률을 기록한 것이다. 공기 단축을 위해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적용해 압축된 공정 진행을 시도했다. 조립식 콘크리트 교량 상부 1경간 전체를 육상에서 미리 제작한 후 해상 크레인을 통해 이동시킨 뒤 교각 위 목표 위치에 거치하는 방식의 FSLM(Full Span Launching Method) 공법도 채택했다. 총 336개가 들어간 단위 상판 1개 크기는 길이 50m, 폭 16m, 두께 3m에 무게는 1400t으로 레미콘 트럭 100여대분의 콘크리트가 투입된 대형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의 이동과 설치를 위해 3000t급 해상 크레인이 동원됐다.
인천 송도 앞바다에서 진행된 공사 여건상 건설인들은 바람, 안개, 풍랑, 추위, 더위, 조수 간만의 차에 의한 빠른 유속 등과 싸워야 했다. 건물 60층 높이의 주탑에서 이루어지는 케이블 연결과 같은 고소(高所) 작업은 숙련된 기술자에게도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공 과정에서 실제 긴박한 순간도 있었다. 크레인을 이용해 15m 소블록을 1개씩 조립해야 하는데 크레인이 고장나 소블록이 해상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장교 주경간 밑은 인천항 주항로다. 10만t급 대형 화물선과 민간 여객선이 빈번하게 입출항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의 VTS센터와 해양경찰 협조로 선박 운항 상황을 수시로 모니터링해가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IT 접목한 ‘첨단 디지털 다리’
인천대교의 교통 운영과 교량 유지관리 체계도 첨단이다. 그야말로 최신 IT(정보기술)가 도입된 ‘디지털 다리’이다. 인천대교의 교통관리 시스템(FTMS)은 각종 자동화 정보 수집 장치를 통해 교통, 기상, 도로 정보를 수집하고 그 분석된 교통 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리자와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이를 위해 주행하는 차량의 간격, 속도, 대기 행렬 등 교통 정보를 수집하는 영상·레이더 차량 검지기(VDS)와 폐쇄회로장치(CCTV)를 설치했다. 도로 노면 상태, 온습도, 가시거리, 풍량, 풍속 등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시스템(RWIS)도 갖췄다. 실시간 도로교통정보제공 표지판(TSD/LCS)과 사고 발생시 이용할 차로 정보를 알리는 차로제어표지(LSD) 등도 도입됐다.
어느 구조 역학 서적의 서문에 이런 문구가 있다. “Build bridges instead of walls, and you will have a friend(담 대신에 다리를 만들어라. 곧 친구를 갖게 될 것이다).” 교량 건설 사업은 물리적 개발 이상의 사회·문화·경제적 교류와 소통이라는 총체적 의미를 갖는다. 실로 인천대교는 해당 지역의 지리적 고립을 극복하는 방편을 넘어 국제화 시대의 동북아 경제 네트워크 인프라의 초두(初頭)에 위치한 상징성을 갖는다. 세계 건설 선진국에서는 국가 대표격 교량을 저마다 하나 이상씩은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당당히 들어섰다고 자부할 수 있다. 미국에는 금문교가, 일본에는 아카시대교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인천대교가 있기 때문이다. ‘월드 클래스’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을 알리는 거대한 마케팅 구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