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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5분내 병원'… 日 고령자는 30%, 한국은 6%뿐

뉴스 장상진 기자
입력 2017.05.11 00:40

[노인이 살기 불편한 나라] [下] 집·병원·일터 하나로 모으는 日

日, 정부 주도로 도시 재개발
단지 한가운데엔 병원 짓고 마트 등에선 노인 고용 의무화
입주민 위한 산책·재활훈련도

한국, 노인 위주 도시계획 전무… 임대주택도 청년·신혼부부 중심

일본 지바(千葉)현 가시와(柏)시 JR(일본 국철) 가시와역에서 10분쯤 걸어가면 '도요시키다이(豊四季台)'라는 주택 단지가 나타난다. 이곳에선 노인들이 여기저기에서 바퀴가 달린 보행 보조 기구나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단지 한가운데에는 병원이나 대형 마트 같은 편의 시설을 배치했다. 대형 마트에 들어서자 점원 태반이 노인이었고 고객들도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카트에 생선을 싣고 진열대에 펼쳐놓던 점원 가와고에(85)씨는 "일주일에 세 번, 5시간씩 일하는 게 삶의 활력소"라면서 "일 자체가 운동이 되고, 손님으로 온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즐겁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2년부터 고령화 시대 새로운 도시 모델로 '의(醫)·직(職)·주(住) 근접화 도시'를 제시하고 현재 전국 4개 도시에서 실험하고 있다. 의료·노인 복지 시설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 노인 일터 등을 한곳에 집약적으로 배치하는 것. 특히 의료·복지 시설을 노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 기능을 재편하는 게 핵심이다. 도요시키다이 단지는 그중 하나다.

반면 한국은 갈 길이 멀다. 올해부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화 사회(7% 이상)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도 이런 도시계획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시도 자체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일자리·병원 모두 5분 거리

도요시키다이 단지는 말하자면 '노인을 위한 나라'다. 당초 1964년 32만6000㎡ 부지에 103개 동 4666가구로 지었는데 지금은 의·직·주 근접화 모델에 맞춰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재개발이 끝난 1432가구에서 노인 인구 비율은 41.4%. 시 전체 노인 인구 비율(20%) 두 배가 넘는다.

지난달 14일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市)에 있는 임대주택단지 ‘도요시키다이’ 내 운동장에서 ‘입주민 걷기 행사’에 참가한 노인들이 체조를 하고 있다(위). 같은 날 단지 내 주민자치센터 사무실에서 단지 입주민인 직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아래). /이동휘 특파원

재개발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의료·노인 복지 전문가들이 참여해 노인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핵심은 늙고 병든 다음 낯선 곳으로 옮겨가 입소·입원하는 대신 '일하며 살던 곳에서 그대로 늙어가고, 치료받다가 편안히 세상을 뜨도록 해주는 것'에 있다.

일단 모든 주택은 노인 친화형으로 지어졌다. 벽면에 안전봉을 달았고, 문이 넓으며, 실내에 턱이 없다. 집 근처엔 일자리가 있고, 단지에 입주하는 마트·어린이집·요양원 등 상업 시설은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노인을 고용해야 한다. 노인 230여명이 단지 내에 시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거동에 지장이 없는 노인들이 가벼운 노동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가 프로그램도 있다. 건강 유지를 위해 주 1회 모여 5.5㎞쯤 되는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기구 운동을 통해 근력을 유지하는 '건강 재활 모임'도 운영된다.

둘레가 약 5.5㎞인 단지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은 6층짜리 병원 빌딩이다. 단지 내 가장 외진 곳에 사는 노인도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1층에 내과·소아과 등 병원과 약국, 방문 간호 업체들이 들어와 있고 2~5층은 요양병원이다. 일본 정부는 도요시키다이와 같은 의·직·주 근접화 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5분 내 병원 한국은 6%, 일본 32%

2026년 초고령 사회(노인 인구 비율 20% 이상)로 진입하는 한국은 어떨까. 도요시키다이처럼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운영하는 공공 실버주택은 위례신도시 등 전국에 2개 단지 294가구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내에 안전장치 정도가 갖춰진 '노인형 주택'에 머물 뿐 단지 또는 도시계획 차원에서 노인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임대주택 정책도 사실 청년·신혼부부가 중심이고 노인만을 위한 공공임대는 아직 없다"며 "각종 임대주택을 10% 정도 노인에 공급할 뿐 노인 동선을 고려한 병원 배치 등 단지·도시계획 차원의 접근은 솔직히 아직 없다"고 했다.

통계도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전국 65세 이상 노인 1만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병원이나 보건소가 걸어서 5분 미만"이라고 답한 노인 비율은 6.3%였다. 범위를 '10분 이내'로 넓히면 35.1%. 반면 일본 노인은 성인 남성 기준 도보 3분 거리인 '250m 이내'가 32.5%, '500m 이내'까지 넓히면 60%였다. 15분을 넘는 '1㎞ 이상'은 18.8%에 불과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이런 노인 복지 주거 시설을 정비하는 작업은 장기적으로 의료비나 추가 복지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정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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