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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고령자를 위한 주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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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09 23:23

[노인이 살기 불편한 나라] [上]

- 실버타운 한국 31곳, 일본 1만여곳
낙상 피해 72%가 집에서 발생… 65세 이상 95% "노인 배려 안해"

- 부실 실버타운이 불신 초래
임대형外 분양 금지 '땜질 처방'… 기존 주택에 편의시설 늘려야

#1. 서울 중랑구에 사는 이모(78)씨는 2015년 말 집 안방 문턱에 걸려 넘어져 척추가 부러졌다. 곧바로 병원에 한 달가량 입원해야 했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통원 치료를 받는다. 이씨는 "내 집에서 이런 봉변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집 안에 문턱을 없애고, 화장실에 안전 손잡이만 달아도 노인 낙상(落傷) 환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위례신도시의 한 공공(公共) 실버주택. 복도는 물론 화장실 등 집 안 곳곳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 보행(步行)을 돕는 안전봉이 달려 있었다. 9층에 사는 조모(83)씨 집에는 전화기 옆에 커다랗게 '119'라고 쓰인 비상 호출 버튼이 있었고, 부엌엔 켠 지 20분 지나면 자동으로 가스레인지 가스를 차단하는 '안전밸브'가 눈에 띄었다. 그는 "화장실에는 손잡이가 있어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

고령자 맞춤형 공공실버주택은 이렇게 편한데… - 경기 성남시 '성남위례공공실버주택' 복도에서 한 할머니가 벽면에 설치한 안전봉을 잡으면서 걷고 있다. 공공실버주택은 노인을 위한 안전 시설, 건강상담실, 사회복지관 등을 연계한 고령자 맞춤형 주택이다. /이진한 기자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고령자를 배려한 주거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3~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접수한 고령자 낙상 피해 중 72%는 집에서 당한 사고였다. 노인에겐 집이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전국 65세 이상 1만451명을 대상으로 한 '노인실태조사'에선 "주거 구조가 고령자를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95.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엔 노인들을 배려한 주거 시설 규모가 일본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노인 맞춤형 주택 공급을 늘리고, 기존 주택에도 노인 편의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간 고령자 주택, 일본의 1.3% 불과

올해 1월 기준 국내에 65세 이상은 70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6%를 차지한다. 통계청은 지난달 "가구주(主)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가 2015년 366만4000가구에서 2045년엔 1065만3000가구로 늘어 전체 가구의 47.7%를 차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2026년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할 전망이지만, 고령자를 위한 주거 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저소득층 노인을 위해 운영 중인 공공 실버주택은 현재 전국에 294가구뿐이다. 올해 초 정부는 2022년까지 공공 실버주택 5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흔히 '실버타운'이라 부르는 민간 노인복지주택은 2015년 기준 31곳 5376가구에 불과하다. 2010년 4746가구에서 5년 동안 고작 630가구 증가했다. 이웃 일본은 국내 실버타운과 비슷한 '유료노인홈'만 1만651곳이고, 입소 정원은 42만4828명에 달한다. 국내 실버타운 전체 규모는 일본의 1.3%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민간 노인복지주택 활성화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수급 여건을 활성화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내놓지 못했다. 진미윤 LH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엔 아주 비싼 실버타운이나 저소득층 노인주택만 있어 '중간 모델'이 없다"며 "정부와 민간 기업 파트너십을 통해 고령 인구 증가에 대비하는 주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1년 이른바 '서비스 포함 고령자 주택'을 도입하면서 노인들이 집에서 건강 상태나 생활 습관에 따라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서비스 포함 고령자 주택'은 일본 내에서 2012년 2772동(棟) 8만2809가구에서 2015년엔 5885동 18만8595가구로 급증했다.

◇부실 실버타운 피해에 '땜질 처방'

국내에 고령자를 위한 민간 주택이 적은 이유로는 허술한 법령, 허위·과장 광고에 따른 소비자의 불신 등이 꼽힌다. 노인복지주택은 일반 아파트와 달리 노인복지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주택 분양 때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분양 보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과거 적지 않은 업체가 분양만 하고 시설 운영은 나 몰라라 하거나 재정난에 휩싸이면서 불신을 키웠다. 2009년 경기도 성남에서 분양한 '더헤리티지'는 시행사 측이 자금난에 시달리다 경매에 부쳐졌다.

(위 왼쪽부터)높이 조절 세면대 - 노인들이 쉽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세면대. 가스 차단 자동밸브 -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스를 차단하는 안전밸브. (아래 왼쪽부터)안전봉과 비상벨 - 화장실 안전봉과 24시간 관리사무소로 연결되는 비상벨. 벽면 센서등 -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저절로 켜지는 벽면 센서등.

일본에서도 과거 비슷한 피해 사례가 많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99년 '유료노인홈 설치운영 지도지침'을 개정, 사업자 부도에 따른 도산 방지, 간병 서비스 등을 입주 계약에 명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대신 아예 공급을 막는 '땜질 처방'을 했다. 2015년 7월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임대형을 제외한 분양 방식으로는 노인복지주택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임대형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 앞으로 노인복지주택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리 대비해야 재정 부담 줄어"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인 1955년생이 70대가 되는 2025년이 되면 고령자 주거 문제가 '쓰나미'처럼 한국 사회를 덮칠 것"이라며 "의료·간호 서비스와 연계한 주택 공급을 늘리고, 기존 주택에 노인 편의 시설을 만들어 놔야 복지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요양원·양로원 같은 대규모 시설에서 노후를 보내는 건 주거비·의료비 등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많이 드는 반면 정작 복지 혜택 효과는 떨어진다"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빈곤 노인이 많고, 주택 비용이 비싼 구조에선 고령자 주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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